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보게 하는 꽃, 닻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9. 12>

 

용담과의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풀. 학명은 Halenia corniculata (L.) Cornaz.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져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살찌도록 분부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따뜻한 날씨를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이 들도록 하여 주소서.“(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에서)  

 

흰 구름이 머무는 높은 산 정상 바로 아래 풀밭에 피어난 닻꽃.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뀔 즈음 피어나 정상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높은 산 정상에서 하늘을 찌를 듯 휘날리는 닻을 보며, 그토록 ‘위대했던’ 여름이 저 멀리 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릴케가 노래했듯, 봄부터 여름까지 힘차게 달려온 긴 여정이 하늘은 높고 볕은 따가운 가을을 맞아 결실을 보고, 곧 닥쳐올 길고 긴 겨울 저마다의 보금자리에서 닻을 내리고 정주(定住)에 들어갈 것임을 꽃들이 먼저 알아차리는 듯합니다. 해서 닻 모양의 꽃을 난데없이 산 정상 구름바다 위에 띄워놓고 이제 하던 일 갈무리하고 긴 휴식에 들어갈 채비를 하라고 일러 주는 듯합니다.

 

꽃 모양이 배를 정박할 때 쓰는 도구인 닻을 똑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는 닻꽃. 실제 보면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가을과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하여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꽃이 바로 닻꽃입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게 하는 묘한 꽃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정말로 배가 산에 정박한 것일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있듯이 닻이 산으로 온 까닭은 무엇일까 등등.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한 본향으로 불리는 시베리아. 그 시베리아 한복판 바이칼 호수 인근 자임카 자연휴양림에서 2015년 7월 만난 닻꽃. 우리나라보다 한 달 가까이 일찍 핀 때문인지 꽃 등 전초에서 녹색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청마 유치환의 ‘깃발’에서)

   

깃발 하나를 보고 이런 시를 남긴 유치환 선생이 온 산에 널린 닻을 보았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꽃의 모양이 배를 멈춰 세울 때 사용하는 닻을 닮았다고 해서 닻꽃으로 불리는데, 실제로 보면 더 실감이 납니다. 8~9월 햇볕이 잘 드는 고산 풀밭에서 한두 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뿌리까지 고사해 사라집니다. 봄철 피는 삼지구엽초도 꽃 모양이 닻을 닮았다고 해서 닻풀로도 불립니다.

 

금강초롱꽃과 나란히 피어난 닻꽃. 저 깊은 바다 밑에 들어가 배를 고정하는 데 쓰여야 할 닻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과거 남한의 대표적인 고산인 설악산과 지리산에서도 자랐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있는 화악산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자생해 수도권에서도 손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외 강원도 대암산과 한라산에도 자생하는데, 한라산에서는 그 수가 크게 줄어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아무튼 남한의 고산에만 일부 자생한다는 건 북쪽을 고향으로 둔 북방계 식물이라는 뜻인데, 실제 지난해 7월 중순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하는 안가라 강 변의 유명 관광지인 자임카 자연휴양림 오솔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있는 닻꽃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분류하고 각별한 관심을 쏟는 닻꽃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저 홀로 피고지고 있었습니다. 동토(凍土)의 시베리아가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한 본향(本鄕)이라는 말을 눈으로 실감한 셈이지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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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만에 한 번 보는 꽃, 가시연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9. 05>

수련과의 한해살이 수초. 학명은 Euryale ferox Salisb.

참으로 여러 번 보는 이를 놀라게 하는 식물이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큰 이파리에 놀랍니다.

누구나 첫 대면 때에는 물 위에 떠 있는 동그란 이파리부터 보게 되는데, 그 이파리가 마치 연못을 가득 메우기라도 할 듯 널찍합니다. 작은 것은 지름이 20cm 안팎에 불과하지만 큰 것은 무려 2m에 달하니 우리나라 식물 중 가장 큰 잎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시가 촘촘한 이파리 한가운데를 뚫고 올라온 가시연꽃의 꽃송이가 파란 하늘과 무성한 연잎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보랏빛 꽃잎을 열고 서 있다.

두 번째는 이파리는 물론 줄기와 뿌리, 그리고 꽃받침 등 전초에 얼핏 보아도 확연히 눈에 들어올 만큼 많은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는 것에 놀랍니다. 보통 한 포기에 10개 정도 달리는 밤톨 같은 열매에도 밤송이처럼 가시가 송송 나 있는데, 가시 없는 부위는 열매 속에 가득 찬 완두콩 모양의 씨앗과 보랏빛 꽃잎 둘뿐입니다.

특히 찌를 듯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힌 창 모양의 봉우리가 역시 가시투성이의 두꺼운 진녹색 이파리 한가운데를 뚫고 올라와 보랏빛 꽃잎을 반쯤 열어젖힌 모습은 한마디로 ‘경이롭다’고 할 정도입니다.

 
지름 4cm 안팎의 꽃. 꽃받침은 4조각이며 끝이 날카롭다. 수술은 많아서 8겹으로 돌려난다. 꽃봉오리가 맺혔다고 해도 수온과 수심, 기후와 일조량 등이 맞아야 열리기 때문에 활짝 핀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수백 년 전 씨앗에서 싹이 텄느니, 백 년 만에 꽃이 피었느니 하는 이적(異蹟)의 이야기들도 위에 열거한 것들에 못지않게 듣는 이를 놀라게 합니다.

바로 가시연꽃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뿌리는 물밑 땅속에 내리고, 잎은 수면에 띄우고 살아가는 부엽(浮葉)식물인 가시연꽃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면서 알게 되는 사실들입니다.

 

검붉은 보라색 잎 아래에 가시연꽃의 꽃송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개화에 적정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이파리가 뒤집혀 검붉은 뒷면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먼저 가시연꽃의 넓은 이파리와 어른 엄지손가락보다도 굵은 줄기 등 전초가 불과 한두 달 만에 자란 결과라는 점입니다. 때가 되면 씨앗만 남긴 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전형적인 한해살이 수초이기 때문입니다. 발아된 씨앗에서 처음 나온 화살 모양의 작은 잎이 최대 지름 2m의 넓고 둥근 잎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하루에 무려 20cm씩 자라기도 한다니 크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닐 정도입니다.

 

잎이 크고 꽃 색이 진한 보라색인 통상적인 가시연꽃과 달리,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잎과 꽃이 작고 꽃 색도 연한 분홍색을 띠는 것도 아주 드물게 눈에 띈다. 가시연꽃의 꽃은 보통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이면 오므리기를 사나흘 되풀이하다 물속으로 들어가 씨앗을 생성한다.

수십 년 만에 싹을 틔우고 백 년 만에 꽃을 피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바로 한해살이풀의 특성에 기인합니다. 뿌리도 줄기도 이파리도 사그라지고 남은 것은 씨앗이 유일한데, 그 씨앗은 쉽게 발아하지도 않고 또 쉽게 썩지도 않는 신비의 생명체입니다. 즉 가시연꽃의 씨앗은 한두 해 안에 발아가 안 되면 물속에서 그대로 썩어버리는 다른 식물의 씨앗과 달리 수년이든 수십 년이든 발아력을 유지한 채 땅속에서 쉬고 있는 매토종자(埋土種子)입니다. 휴면 상태에서 때를 기다리던 씨앗은 수압과 수온, 기후 등이 최적의 조건이 되면 발아해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치고 꽃을 피웁니다. 바로 가시연꽃이 보여주는 생명의 신비입니다.

중부 이남의 주로 오래된 연못에서 자생하는 가시연꽃. 이름과 달리 꽃핀 풍광이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실제 수년 전 강원도 경포호에서 50년 만에 가시연꽃이 등장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2010년 경포호 배후 습지에서 난데없이 가시연꽃이 개화한 연원을 추적한즉슨 1960년대 농경지 개간 이후 휴면 상태에 있던 가시연꽃의 매토종자가 습지 복원사업으로 생육조건이 맞자 반세기 만에 다시 발아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발아만 까다로운 게 아니고 꽃을 피우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예민해서 수온과 수심, 기후, 일조량 등이 맞지 않으면 아예 꽃을 피우지 않고 그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꽃을 피우지 않고도 자가수분을 통해 종자를 만들 수 있는 폐쇄화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때문에 ‘백 년 만에 피는 꽃’이라거나, ‘백 년 만에 한 번 볼 수 있을 만큼 보기 어려운 꽃’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대에게 행운을’이라는 꽃말을 가진 가시연꽃의 꽃을 지난여름의 불볕더위가 남긴 축복인양 지난 8월 말 반갑게 만났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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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탁한 웅덩이가 아닌, 

물 맑은 강가에서 본 자라풀이 생각이 나서 외장하드를 뒤져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아냈습니다.

하늘이 높고 푸르던 어느 가을의 초입, 남한강 가에서 만난 자라풀 군락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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