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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깨고 피어난 봄의 전령사, 노루귀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20>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epatica asiatica Nakai.

자연은 부지런합니다. 풀과 나무들은 부지런합니다. 여전히 외투의 깃을 올리고, 저 멀리 흰 눈이 쌓인 산을 바라보며 언제 봄이 오나, 언제나 봄이 오나 되뇌는 사이, 이미 봄꽃은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은 저절로 따라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봄꽃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부지런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왔어요.” 외치는 진홍색 노루귀. 2017년 2월 15일 전북 부안의 한 자생지에서 만났다.-

이미 1월 초순부터 제주도 들녘 곳곳에는 수선화가 피었고, ‘곶자왈’에선 백서향이 상아색 꽃을 활짝 터뜨리며 짙은 향을 온 숲에 뿜어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뭍에서도 강원도와 울산, 변산 등지에서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화신(花信)이 전해진 지 보름여가 지났습니다. 양지바른 길섶에서 광대나물과 큰개불알풀의 꽃을 찾아보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2월 15일 낙엽 더미를 헤치고, 돌무더기를 비집고, 나무 밑동 사이로 불쑥 올라온 노루귀의 앙증맞은 꽃송이들. 마치 루비나 사파이어 등 보석이 메마른 산비탈에 점점이 박힌 듯 황홀하고 매혹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봄보다 먼저 피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지척에 다가와 있음을 알리는 봄꽃의 하나인 노루귀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눈과 얼음을 깨고 핀다고 해서 파설초(破雪草), 또는 설할초(雪割草)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말이 사실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엄동설한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중순 눈이 덮인 변산반도의 한 산비탈에 몇몇 개체가 핀 사진이 야생화 동호인 사이트에 올라와 보는 이들이 안쓰러워했던 일도 있습니다. 우리의 국명(國名)인 노루귀는 꽃이 핀 뒤 뒤늦게 고깔모자처럼 둘둘 말린 채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었는데, 서양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장기의 하나인 간(肝)을 닮았다고 여겨졌나 봅니다. 해서 학명 중 속명은 간을 뜻하는 헤파티카(Hepatica), 영어 이름은 비슷한 의미의 아시안 리버리프(Asian liverleaf)로 불리고 있습니다.

노루귀란 이름을 낳은 이파리가 꽃이 핀 뒤 줄기 아래서 둘둘 말려서 나오는 모습.

전초(全草)라고 해야 키 10cm, 잎 5cm, 꽃 1.5cm 정도에 불과해 유심히 살펴봐야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작은 풀꽃이라고 말하는 게 합당하지만, 다양한 꽃 색과 깜찍하고 앙증맞은 생김새는 ‘이른 봄 야생화의 대표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환상적이고 매혹적입니다. 먼저 꽃 색은 흰색에서부터 홍색과 청보라색에 이르기까지 그 변이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노루귀의 솜털들. 홍색과 청색의 꽃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홍색도 연분홍에서부터 진홍색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 청보라색 역시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색에서부터 코발트블루까지 다양합니다. 단순한 하얀색도 있지만, 미색에 가까운 흰색도 있습니다. 꽃 색 못지않게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드는 건 꽃줄기와 총포(꽃대 끝에서 꽃 밑동을 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 등에 난 무수한 잔털입니다. 볕 좋은 봄날 강렬한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노루귀의 하얀 솜털을 한 번이라도 바라본 이라면 ‘노루귀’의 황홀한 매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청색, 아니면 청보라색, 또는 코발트블루라고 해야 할까. 어느 화가의 물감이 이보다도 매력적일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노루귀의 청색 꽃들.

야생화 노루귀의 또 다른 큰 장점의 하나는 그 어떤 꽃보다도 개체 수가 풍부하고, 또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자생지 또한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강원·경기 접경지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어 누구든 관심을 가지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르면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에도 꽃이 필 만큼 개화 시기도 깁니다. 한두 송이가 피기도 하지만, 많게는 수십 송이가 한데 뭉쳐서 나기도 하고, 산비탈 여기저기에 붉은색 루비나 파란색 사파이어가 박힌 듯 많은 개체의 노루귀가 보석처럼 피어 있기도 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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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본 변산반도의 꽃 잔치가 너무 요란했기에, 서울 인근 용문산을 찾아갔습니다.


혹시나 꽃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곳은 아직 한겨울이었습니다.


간밤 새로 눈이라도 내렸는지, 산 정상의 나뭇가지에 소복이 눈이 쌓인 것은 물론 


계곡은 겨우내 내린 눈이 쌓인 듯 두껍게 얼어붙었습니다.


최소한 열흘 넘게 기온이 올라야 새싹이 나올 수 있겠다 싶습니다.


돌아오는 길 한강 변에 꾸며놓은 공원에서 멋진 '도형 꽃'을 만났습니다.


'자연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데, 예술가는 또 다른 완성을 꿈꾼다' 던가요.


묵은 연줄기가 만들어낸 세모 네모 물고기 등 수많은 기하학적 도형이 참으로 볼만했습니다.


연꽃을 달고 섰던 꽃줄기, 또는 커다란 연잎을 하늘로 올렸던 줄기가 시들어 꺾이면서 만든 숱한 무늬들,


짙은 청색으로 흐르는 겨울의 강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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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진홍색의 노루귀를 만나고 온 다음 날,  


몇몇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믿기지 않겠지만 봄은 이미 와 있습니다. 어제 산에서 노루귀란 야생화를 만나고 왔습니다."라며 느닷없이 봄소식을 전했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꽃 보러 다녔지만, 2월 중순이라는 아주 빠른 시기에 만난 노루귀의 강렬한 색감에 흥분하고 놀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 참으로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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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260km 떨어진 거리,

자동차로 3시간 정도 운전하면 닿을 수 있는 남녘, 

그곳에선 벌써 봄꽃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등등.

차로 3시간여 떨어진 경기 · 강원의 산에 같은 종류의 꽃이 피려면 최소한 2주일 정도는 지나야 합니다.

남과 북, 봄의 거리는 의외로 멀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2017년 처음 만난 황금색 복수초,

언제 보아도 역시 휘황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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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0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7.02.21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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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벌써....

맞습니다.

변산아씨들이 2017년 봄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멀리 남으로 제주에서부터, 북으로는 강원도 설악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폭넓게 자생하건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얻게 된 변산바람꽃이란 '국명의 고향'' 변산반도에서 

딱 사진 올리기에 적당한 수의 변산아씨들이 달덩이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 걸 보았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니 고맙기 그지없는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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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 이름으로 찾아보면,

"자료가 없습니다. 다른 검색조건을 선택해주세요."라는 대답이 전부인 이른바, '솔잎해란초'입니다.

또 다른 검색 사이트 등을 찾아보니, 

'국명 솔잎해란초, 학명 Nuttallanthus canadensis (L.) D.A. Sutton, 현삼과, 분류 일년생초보'라는 좀 더 상세한 정보가 뜹니다. '한국미기록 귀화식물 : 솔잎해란초와 유럽광대나물'이라는 참고문헌 정보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수 년 전부터 제주도 남쪽 표선 일대를 중심으로 잡초처럼 번지는 미기록 귀화식물입니다. 실제 사진을 담은 곳도 표선해수욕장 인근 올레길입니다. 

무릎 높이까지 타래난초처럼 호리호리하게 자라는데,

바닷바람에 흔들리니 화면에 잡아두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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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깊은 계곡에서 저 홀로 피고 지는 산꽃들꽃.

오고 가는 이도 많지 않지만,

어쩌다 지나치는 이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눈길 한 번 주지 않기 일쑤입니다.

따스한 눈길로 봐주는 이 하나 없지만, 그들은 늘 해왔던 대로 싹 틔워서 꽃 피우고 열매 맺고....

그런데 어쩌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이 있어 반갑다 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며 예쁘다 감탄하는 이 있어 반갑다고 했는데,

그 또한 그때뿐이고, 다시 또 잊히는 신세가 되기 일쑤입니다.

지난 사진 파일을 들추다 보니 2013년 5월 중순 담은 벌깨덩굴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즈음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라색 벌깨덩굴의 꽃이지만,

그중 흰색이 돋보여서 아마도 몇 커트 담았으되 

귀한 꽃이 아니라고,

희귀종이 아니라고... 모른 척 외면했던 게 틀림없습니다.

미안하다 사과하며, 뒤늦게나마 세상에 밖으로 내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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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갈수록 존재감이 드러나는 '겨우살이'

겨우살이과의 상록 활엽 관목. 학명은 Viscum album var. coloratum (Kom.) Ohwi.

▲붉은겨우살이(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붉은겨우살이(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겨울나무 사이로 바람이 붑니다.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찬바람이 붑니다. 지난여름과 가을 무성했던 숲에 대한 기억은 날로 희미해져 가는데, 꽃 피는 봄날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이라고는 하지만 2월의 창밖은 여전히 황량합니다. 겨울, 날이 차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다는 걸 알게 된다는,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낳은 계절 겨울에 소나무와 잣나무 못지않게 존재감이 드러나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겨우살이입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시인의 외침에 호응하듯 무성하던 ‘나무껍데기’가, 이파리들이 우수수 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무 꼭대기에 웅지를 튼 겨우살이가 겨우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이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니라 늘 푸른 잎과 줄기, 그리고 연노랗거나 붉은 열매입니다. 이 시기 짙푸른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겨우살이 열매를, 흰 눈이 겨우살이 위에 가득 쌓인 멋진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야생화 동호인들은 강추위를 무릅쓰고 겨울 산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정작 봄이 한창인 4월경 가지 끝에 노랗게 피는 겨우살이의 꽃은 크기가 자잘한 데다, 숙주인 큰 나무의 이파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야생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조차 주목받지 못합니다.

다른 나무와 풀이 동면(冬眠)하는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 겨우살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다른 나무에 기생해 겨우겨우 살아가는 나무란 뜻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다른 나무에 뿌리를 박고 흡기(吸器)라는 기관을 통해 물이나 영양분을 빼앗아 생장하는 반기생식물. 땅까지는 뿌리를 내려보지 못하고 사시사철 공중에 뜬 채 살아가는 가련한 식물입니다. 하지만 한겨울 저 홀로 푸름을 자랑하는 특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등의 능력을 갖춘 영초(靈草)라 불리며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겨우살이의 번식은 새를 통해 이뤄집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높은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겨우살이의 열매는 새들에겐 최상의 먹잇감이 됩니다. 그런데 그 열매엔 끈적끈적한 점액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새들은 열매를 먹을 때 부리에 달라붙는 점액을 한사코 다른 나무의 껍질에 비벼서 닦습니다. 이때 끈끈한 점액에 묻어 있던 씨앗이 나무껍질에 달라붙어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되는 것이지요.

▲꼬리겨우살이(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꼬리겨우살이(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 Where is it?

국내에 자생하는 겨우살이는 모두 5종.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겨우살이는 한겨울 참나무나 밤나무, 팽나무, 물오리나무 등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까치집 모양으로 등장한다. 겨우살이의 열매는 연노란색이다. 반면 붉은겨우살이는 이름 그대로 붉은색 열매가 돋보이는데, 눈 덮인 한라산을 비롯해 내장산, 덕유산 등을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 상록수인 여느 겨우살이와 달리 꼬리겨우살이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겨울이면 잎은 지고 샛노란 열매만 주렁주렁 달린다. 태백산과 구룡령, 소백산 등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희귀종이다. 가는 줄기가 모여 작은 선인장의 모양을 한 동백겨우살이는 숙주인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남쪽 바닷가와 섬, 제주도에서 볼 수 있다. 참나무겨우살이는 참나무보다는 동백나무나 후박나무 등 제주도 서귀포 일대 상록수에 주로 기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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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고원(高原)에 펼쳐진 붉은 카펫, 담자리참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06>

진달래과의 상록소관목, 학명은 Rhododendron lapponicum subsp. parvifolium var. alpinu (Glehn) T.Yamaz.

해발 2,750m 백두산. 한반도의 지붕인 그곳은 지금 초속 40m의 강풍이 불고 기온이 섭씨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등 남한의 웬만한 곳에선 체험하기조차 힘든 혹한이 몰아치고 있을 겁니다. 칼바람이 불고 기온만 낮은 게 아니라 천지를 비롯해 거의 모든 봉우리가 잔뜩 흰 눈에 뒤덮여 있겠지요. 높은 산을 뒤덮고 있는 눈, 바로 이 눈 덕분에 백두산 고원 지대에 자라는 식물들이 2~3개월에 불과한 짧은 해빙기 동안에 꽃을 피우고 수분까지 끝내는 ‘생명의 눈’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키 작은 담자리참꽃이 백두산 고원 툰드라 지대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최고봉의 하나인 천문봉이다.

얼어붙은 눈이 부도체(不導體)여서 열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오히려 고산 식물들이 혹한기에 얼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대략 해발 1,000m 이상 수목 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서 자라는 백두산의 고산 식물들이 바로 그런 ‘눈 이불’ 아래서 오늘도 살을 에는 강풍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따듯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붉은 카펫이 깔리듯 펼쳐진 담자리참꽃. 6월 중순 백두산 고산 평원 한편엔 분홍색 꽃 더미가, 또 한편엔 흰색의 눈 기둥이 물결치는 듯하다.

노랑만병초·시로미·가솔송·담자리꽃나무·월귤·들쭉나무·백산차·콩버들 등 소관목류와, 두메양귀비·두메자운·숙은꽃장포·구름범의귀·구름송이풀·바위구절초·돌꽃 등 초본류가 그들입니다. 물론 천지 주변 등 가장 높은 화산암 지대에는 지의류나 이끼류 등 암표 식물만이 주로 자라고 있을 뿐입니다.

 
담자리참꽃은 키 10~15cm로, 참꽃이라 부르는 진달래보다 전초는 훨씬 작지만, 꽃 모양은 진배없는 분홍색 꽃을 탐스럽게 피운다. 해발 2,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암벽에 붙어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백두산 툰드라 지대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고산, 고위도 식물이지만, 그중에서도 남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담자리참꽃을 들 수 있습니다. 2016년 6월 운 좋게도 꿈에 그리던 백두평원을 실컷 걸었습니다. 녹색의 잔디가 깔린 듯 끝없이 펼쳐지는 툰드라 초원에 들자, 이 봉우리 저 봉우리마다 한쪽에는 거대한 잔설(殘雪)이, 또 한쪽엔 불이 붙은 듯 붉게 타오르는 넓은 꽃 더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봄철 남한의 산에 진달래와 철쭉이 한가득 피듯 백두평원을 광활하게 붉게 물들이는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담자리참꽃이었습니다.

 
담자리참꽃의 피기 전 꽃봉오리와 개화한 모습.

상상 이상 규모의 꽃의 바다를 만들던 담자리참꽃은 꽃 모양은 흔히 참꽃이라 불리는 진달래 또는 철쭉을 닮았으되, 키는 10~15cm 정도로 훨씬 작았습니다. 또 가을이면 잎이 지는 진달래·철쭉과 달리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합니다. 노랑만병초와 마찬가지로 잎에 부동 물질이 들어 있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분홍의 꽃색은 선명한 데 반해 잎은 퇴색한 듯 칙칙해 보이는데, 그만큼 북풍한설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평안북도와 함경북도는 물론 시베리아에 분포한다는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의 설명에 미뤄볼 때,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로서 이후 한반도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남한에서는 절멸했고 백두산 등 북한의 고산 지대에서만 겨우 살아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담자리참꽃이 활짝 핀 백두평원. 그 넓은 품속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남한에서는 보지 못하는 낯선 식물이다 보니 아직은 도감마다 담자리참꽃, 담자리참꽃나무, 담자리꽃나무 등으로 달리 표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고산식물로 설명돼 있는가 하면, 낙엽 활엽관목, 상록소관목 등 세세한 소개도 중구난방입니다. 백두산 툰드라 지대 같은 장소에서 백색의 꽃을 피우는 담자리꽃나무가 담자리참꽃과 한데 엉켜 자라고 있기도 한데, 장미과의 상록소관목인 담자리꽃나무는 담자리참꽃보다도 전초나 꽃의 크기가 작아서, ‘담자리’는 작다는 뜻의 지역 사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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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담채화에 찍힌 한, 두 방울의 빨간 점이 그러하듯,

눈 내린 겨울 산사에서 만난 배풍등의 빨간 열매가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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