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바닷가 지키는 둥근바위솔!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7년 11월호>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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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 고이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 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 중


당신이 정녕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이후 ‘브라보 세대’)가 맞는다면 찬바람 휑하니 부는 늦가을 저도 모르게 ‘소리 없는 사랑의 노래’를 주절주절할 겁니다. 송창식, 1960년대 말 통기타 하나 들고 불쑥 나타나 1970~1980년대 대중가요계의 한 봉우리를 차지했던 가수.

개인적인 선호의 차이는 다소 있겠지만 당신이 50대에서 70~80대 사이 ‘브라보 세대’에 속한다면 누구든 그의 노래 한두 곡쯤은 부지불식간에 웅얼거리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입가에 맴도는 그의 노래 하나가 바로 ‘철 지난 바닷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의 감각에 비춰 봐도 세련됐으면서도 서정적이며, 더없이 예쁜 노랫말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스러지고 이지러진 가을의 바닷가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첫 세 음절 ‘철 지난’은 이 노랫말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원색 비키니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과 터질 듯 검게 그을린 근육질의 사내들이 뒤엉킨 한여름의 뜨거운 바닷가가 아닌, 가버린 청춘과 사랑의 쓸쓸함과 애잔함, 애수만이 남아 있을 법한 철 지난, 늦가을의 바닷가에는 그러나 상상 외의 극적인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산에 가봤는데 도통 꽃이 없던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텅 빈 숲 마른 나무 사이로 의외로 여러 꽃이 남아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망초, 개쑥부쟁이, 서덜취, 이고들빼기, 마타리, 미역취, 달맞이꽃 등등. 그런데 이들은 새로 핀 게 아니라 봄여름부터 피고 지고 했건만 너무 흔하거나 평범해서 주목받지 못했을 뿐입니다. 못생긴 소나무가 뒷동산을 지킨다 하듯, 장삼이사 꽃들이 가장 늦게까지 산과 들을 빛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철 지난 바닷가에는 가을에 비로소 피는 꽃이 있습니다. 대개 10월부터 피지만, 곳에 따라선 11월은 물론 12월 초에도 새로 꽃대를 밀어 올려 싱싱한 꽃송이를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철 지난 바닷가의 수호신’이란 찬사가 절대 과하지 않은 둥근바위솔이 주인공입니다.

저 멀리 수평선부터 달려온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혀 스러지는 바닷가 절벽 위. 그 위 기나긴 오솔길을 거닐며 지나간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흐느끼지만 말고, 척박한 바위 겉에 뿌리를 내리고 기운찬 생명력을 보여주는 둥근바위솔을 찾아볼 일입니다. ‘한 송이의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던 18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처럼, 스산했던 마음에 작은 위안이 찾아들 것입니다. 큰 것은 30cm까지 솟아오른, 촛대에 꽂힌 초 모양의 길쭉하고 뾰족한 꽃차례에 자잘한 꽃송이를 다닥다닥 단 채, 짙푸른 바다와 을씨년스런 하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둥근바위솔.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닷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추선 둥근바위솔에선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을 듯한 굳건함과 의연함, 당당함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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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is it?

둥근바위솔은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 하여 와송(瓦松) 또는 순수한 우리말인 지붕지기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바위솔을 필두로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좀바위솔 등 국내에 자생하는 10여 종의 바위솔 속(屬) 식물의 하나다. 북으로 강원도 고성에서 삼척을 거쳐 부산, 거제 등 남해 도서까지 동·남쪽 바닷가에 폭넓게 자생한다. 잎이 가늘고 뾰족한 바위솔에 비해 넓고 둥글어서 둥근바위솔이란 이름을 얻었다. 주로 바닷가 바위 겉이나 모래 더미 사이에서 자란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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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면 가을 오고, 지면 가을 간다는 구절초

 저 너머 한탄강 북녘에도 포천구절초 폈을 텐데…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0.13>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Dendranthema zawadskii var. latilobum (Maxim.) Kitam.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김용택의 ‘구절초꽃’에서)

역시 시인은 천재입니다. 보통사람에겐 없는 통찰력과 직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진 위대한 천재입니다. 나아가 범인들의 정신과 의식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이기도 합니다. 구절초 꽃 피면 가을 오고 구절초 꽃 지면 가을 간다고 시인이 말하는 순간, 보통 사람들의 머리에선 구절초와 가을은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가 되고 맙니다.

구절초와 가을, 그저 낱낱의 낱말이었던 2개의 단어가 숙명처럼 만나 인과관계를 형성합니다. 10월 중순, 통상 9월부터 일컫는 가을이 끝나지 않았으니 구절초가 아직 피어있으리란 시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피기 시작했을 구절초가 미처 가을을 떠나보내기 싫은 듯 채 지지 않고 하얀 꽃 무더기를 달고 선 걸 보았습니다.

북에서 60km, 다시 남에서 80km를 흐르는 한탄강. 강원도 철원 한탄강 직탕폭포 주변에 지난 10월 2일 한반도 특산식물인 포천구절초가 만개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절초에 비해 가는 잎이 특징인 포천구절초가 물길 따라 북녘에도 피었겠지만, 인적은 끊겨 안타깝기만 하다. ©김인철

지금은 거의 상식이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들국화란 이름의 식물은 없습니다. 들국화란 특정 식물을 일컫는 게 아니라 구절초를 비롯해 쑥부쟁이, 개미취, 산국, 감국 등 가을철 산과 들에 피는 국화과 식물을 두루 망라해서 부르는 추상명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중 전국의 산과 들, 강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구절초가 대표적인 들국화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 이름의 유래와 관련해 예로부터 음력 9월 9일 꽃과 줄기를 잘라 귀한 부인병 약재로 썼다고 해서 구절초(九折草)라 불렸다고도 하고, 5월 단오 즈음 다섯 마디이던 줄기가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로 자라면서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해서 구절초(九節草)라 불렸다고도 합니다.

경남 합천군 오도산에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9일 순백의 구절초가 한 무더기 피어 산 정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김인철

그런데 이 구절초가 피는 시기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꽃을 피우는 쑥부쟁이가 있어 또 다른 시인의 천재성 일갈이 터져 나옵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무식한 놈’ 전문)

북한산 정상에 만개한 구절초. 1천만 서울시민의 허파 같은 산인 북한산에도 가을이면 곳곳에 구절초가 피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김인철

얼마나 닮았기에 시인의 입에까지 올랐을까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실제 ‘외형적인 유사성’을 화제로 삼자면 끝도 한도 없습니다. 구절초만 해도 꽃이나 이파리 등의 모양, 색 등 작은 차이로 인해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서흥구절초, 울릉구절초, 낙동구절초, 제주구절초로 나뉘고, 쑥부쟁이는 가는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민쑥부쟁이로 갈라집니다. 쑥부쟁이는 다시 벌개미취, 좀개미취 같은 개미취류와 비슷해 이 모두를 구별하기란 전문가도 쉽지 않습니다.

경남 산청 황매산 정상에 쏟아질 듯 가득 핀 구절초. 가을이면 흰 눈이 내린 듯 펼쳐졌던 구절초 꽃밭이 최근 크게 줄어, 야생화가 애써 지키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김인철

해서 이 대목에서 시인의 일갈에 슬며시 어깃장을 놓아봅니다. “그깟 꽃이 무엇이관대 절교 운운하느냐”고요. 그런데 가만 시를 들여다보면 멋진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나여,’에서 힐난의 대상인 ‘너’가 오늘 이전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하지 못했던 바로 ‘나’였음이 읽히니까요. 역시 시인은 위대한 천재입니다.

강원도 양구 도솔산 정상을 가득 메운 구절초와 쑥부쟁이. 분홍색 꽃이 구절초이고, 보라색 꽃(오른쪽 중앙)이 쑥부쟁이이다. ©김인철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우선 꽃 색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구절초는 대부분 순백의 꽃을 피웁니다. 간간이 옅은 붉은색이 감도는 흰색이나 분홍색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쑥부쟁이는 연한 보라색 꽃을 피웁니다. 얼핏 흰색으로 보이지만 순백은 아니고 옅더라도 보랏빛이 확연합니다. 구절초는 하나의 줄기에 많아야 서너 개의 꽃대, 그리고 꽃대마다 역시 서너 개의 꽃이 달리는 데 반해 쑥부쟁이는 하나의 줄기에 10여 개의 꽃대가 나오고 꽃대마다 역시 10여 송이의 꽃이 풍성하게 달립니다. 이파리도 구절초는 가늘고 잘게 갈라진 고사리손처럼 생긴 데 반해, 쑥부쟁이는 가늘고 긴 타원형 모양입니다. 얼핏 도회적 멋쟁이를 느낀다면 구절초, 반면 친근한 동네 친구 같다면 쑥부쟁이라고 생각하면 열에 아홉은 맞을 겁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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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뭐니?'

'너 몇 살이니?'

누군가 초면의 후배를 만나면 이렇게 물어본다지요.

앞산에 올랐다가 느닷없이 여기저기 피어난 할미꽃을 보고

그처럼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너 정체가 뭐니? 가을에 피는 할미꽃이라니

아예 그런 종이 따로 있는 거니"라고 말입니다.

보다시피 따스한 봄날 피어나듯 할미꽃이 피었습니다.

아무래도 제철 핀 게 아니어서 그런지

대개 키가 작고, 

땅에 바싹 붙은 채 고개를 들고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좀 더 자란 할미꽃들도 있었지만,

암튼 양지바른 곳에서는 가을 햇살도 봄날 못지않게 따사로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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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비열도.

동쪽 끝에 독도가 있고.

남쪽 끝에 마라도가 있습니다.

서쪽 끝에는 백령도가 있고, 남북한을 합해서는 평안북도 신도군의 마안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격렬비열도는 뭘까,

찾아보니 태안반도서 55km 떨어진 충남 서쪽 끝 섬으로,

인근 해역이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등으로 주목받으면서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얼마 전 한 방송국과 태안군이 개최한 결렬비열도 방문 행사에 운 좋게 참여했습니다.

북격렬비도, 동격렬비도,서격렬비도 등 3개 섬으로 이뤄진 격렬비열도.

등대가 있는 동격렬비도 외 두 개 섬은 무인도인데

등대섬에 내려 서너 시간 머무는 동안 찾아낸 꽃이라곤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아슬아슬 매달려 핀 감국과,

갯고들빼기, 유채, 참빗살나무 열매가 전부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석양으로 달려가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길게 누운 격렬비열도가,

높다란 바위 끝에 내려앉은 갈매기가 유독 애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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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귀한 계절이어서 그런지 

좀바위솔을 찾는 벌이 유난히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들렀다 가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빨대를 박고 정신없이 꿀을 빠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절실한 심정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작은 건 1cm 정도에 불과하고 길어봐야 10cm 안팎에 불과한 좀바위솔의 꽃송이에

얼마나 많은 꿀이 숨겨져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찌 됐건 엄동설한이 시작되기 전 열심히 꽃을 피우는 좀바위솔이나

그곳에서 사력을 다해 꿀을 빠는 벌이나 모두가 분주한 만추의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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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른 절벽에 사는 친구들....

가을 바닷가에 피는 국화 해국이 그렇고,

봄날의 동강할미꽃과

가을 깊은 산 계곡의 둥근잎꿩의비름,

가는잎향유,

좀바위솔을 비롯해 둥근바위솔, 정선비위솔, 연화바위솔 등.

그 어느 꽃이든 바위 겉에 자리 잡고 꽃을 피우는 탓에

접근이 쉽지 않을뿐더러

햇살을 맞는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처음 만난 변산향유 또한 그러했습니다.

시기적으로 늦긴 했지만 그래도 활짝 핀 몇 송이는 만나리라 자신했는데,

정작 문제는 눈부신 가을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내 겨우 찾았으니,

해가 비추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절정기에 다시 오겠노라 다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직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국내 식물학자들이 몇 해 전 꿀풀과 향유 속의 신종으로 발표한 변산향유.

바닷가 암벽에 자생하는데 

꽃향유에 비해 몸집이 작고 줄기가 자주색이며 잎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특징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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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가을을 단풍보다 더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7년 10월호>

열흘간의 황금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0월입니다. 연휴와 함께 계절도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면서, 산과 들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단풍을 찾아 강원도로, 설악산으로, 높은 산으로 너나없이 줄지어 떠나는 광경이 안 봐도 눈에 선합니다. 그 와중에 비할 데 없이 붉게 타오르는 가을을 만나려면 남도로 가야 한다고 길을 잡는 이들이 있습니다. 단풍보다 붉게 타오르는 진홍의 축제를 보려면 남으로, 남으로 가야 한다고 속삭이는 이들이 따로 있습니다. 꽃무릇을 만나려는 이들입니다. 고창 선운사 등 남도의 절집 마당에 펼쳐진 수천, 수만 평의 꽃무릇 군락이 선홍으로 붉게 물드는 그 장관을 놓칠 수 없다며, 강원도 단풍을 제쳐놓고 남도행을 고집합니다.

▲수선화과 상사화속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ycoris radiata (L’Her.) Herb.(사진 김인철 )원본보기
▲수선화과 상사화속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ycoris radiata (L’Her.) Herb.(사진 김인철 )

비늘줄기가 돌 틈에서 자라는 마늘을 닮았다고 해서 석산(石蒜)이란 국명을 얻은 꽃무릇은 상사화나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 제주상사화, 백양꽃과 마찬가지로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즉 잎과 꽃이 나는 시기가 달라 서로를 애타게 그린다는 국내 상사화속 7개 식물의 하나입니다. 다만 다른 상사화들이 대개 6월에서 8월 사이 노란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을 피우고 일찍 지는 데 반해, 꽃무릇은 9월 초순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해 중순부터 진홍색 꽃을 피우다가 추석 즈음에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고 꽃이 시들면 그때부터 잎이 새로 돋기 시작해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이 되면 사그라듭니다.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만/이 무렵//

그래선 안 된다고/그러면 안 된다고//

안간힘으로 제 몸 활활 태워/세상,

끝내 살게 하는//

무릇, 꽃은 이래야 한다는/무릇,

시는 이래야 한다는//

―오인태 시인의 ‘꽃무릇’

석산보다 꽃무릇이란 우리말 별칭이 더 친숙한 꽃. 그 또한 본래는 야생화였겠지만, 지금 우리가 흔히 만나는 것은 선운사 등 유서 깊은 사찰에서 일부러 가꾼 조경용, 원예종입니다. 불교와 함께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꽃무릇이 남도 지역의 사찰에 널리 번진 것은 알뿌리에 방부제 효능이 있어 경전을 묶거나 단청이나 탱화를 그릴 때 즙을 내 풀에 섞어 바르면 좀이 슬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예로부터 일부러 심어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늘줄기로 풀을 쑤면 경전을 단단하게 엮을 수 있다고 해서 사찰에서 상사화를 많이 심어온 것과 같은 이치로 보입니다.

(사진 김인철 )원본보기
(사진 김인철 )

Where is it?

고창 선운사와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가 예로부터 대규모로 꽃이 피는 3대 꽃무릇 군락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숲’으로 천연기념물 154호로 지정된 경남 함양의 상림공원도 길이 1.6km 물길을 따라 꽃무릇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운치 있게 피어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서울 시내 사찰들도 경내에 꽃무릇을 대거 심고 있는데, 강남의 봉은사와 강북의 길상사가 볼 만하다. 충남 보령의 성주산 자연휴양림도 꽃무릇 수십만 송이가 진홍색 꽃을 피워 많은 이들이 찾는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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