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우리 꽃2

 쌍잎난초, 유령란, 대송이풀, 큰송이풀… 백두평원은 우리 꽃의 화수분!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8.17>

‘거부할 수 없는 유혹’과 ‘해소할 수 없는 갈증’

[논객닷컴=김인철] 백두산은 늘 새롭습니다. 늘 새로운 꽃으로 탐방객을 기쁘게 합니다. 9월이면 눈이 내리고 그 눈이 이듬해 5월까지 녹지 않아, 5월 말에야 뒤늦게 봄이 시작되고 8월이면 이미 가을이 무르익는 곳. 해서 6월부터 8월 사이 수백 종의 북방계 고산식물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며, 보통 보름에서 한 달 간격으로 늘 새로운 꽃을 피워 식물 탐사에 나선 이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선사합니다.

백두산 해발 1400m 지점에 펼쳐진 왕지(王池) 초원. 참취와 민박쥐나물, 큰엉겅퀴 등 가을꽃들이 만개해 ‘야생화 초원’이란 말이 실감 난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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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5일부터 일주일간 탐사 후 돌아와 ‘백두산의 우리 꽃’을 게재한 지 딱 13개월 만인 2018년 8월 4일부터 5박 6일간 백두산과 그 일대를 찾았는데, 역시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야생화들이 탐방객을 반깁니다. 특히 천지를 굽어보는 2750m 정상 능선을 비롯한 고산 백두평원에는 두메양귀비와 구름송이풀, 노랑만병초와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들쭉나무, 월귤, 홍월귤, 가솔송 등 노랗고 붉게 피었던 봄꽃들은 어느덧 스러져 검붉은 열매만 익어가고, 대신 바위구절초와 큰송이풀, 산용담, 비로용담, 염주황기, 각시투구꽃 등 가을 야생화들이 빈자리를 차지하며 산중은 이미 짙은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백두산 일대 숲속에 피어난 쌍잎난초. 학명은 Listera pinetorum Lindl. 마주 난 잎 사이에 올라온 12~20cm의 줄기에 연한 녹갈색 꽃이 여럿 달렸다. ⓒ김인철

국가 공인 식물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에 ‘우리나라 북부에 분포한다’고 소개된 산용담은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해발 1700~2500m 고산초원에서 10~25cm 크기로 자란다는 설명대로 정상 바로 밑 드넓은 평원에 잔디처럼 깔려 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유령처럼 사라진다는 유령란. 학명은 Epipogium aphyllum Sw. 잎도 없이 돋아난 7~20cm의 줄기에 연한 갈색 꽃이 2~8개 달린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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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그 일대 삼림에서는 운 좋으면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난초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난초가 따듯한 지역에서 주로 자생할 것이라는 상식과 달리, 추위를 좋아하는 북방계 난과 식물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만난 유령란과 쌍잎난초도 그런 종류입니다. 유령란은 국생종에 ‘부전고원에서부터 백두산 지역까지 북부지역 침엽수림 밑에서 자란다’고 나와 있고, 쌍잎난초는 ‘백두산 지역에서 자란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난초를 만난 것은, ‘한반도에 자생한다’고 전해오는 ‘도감 속 우리 꽃’의 실체를 확인해보겠다는 백두산 식물 탐사의 본래 취지를 완벽하게 달성한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방풍. 학명은 Ledebouriella seseloides (Hoffm.) H.Wolff. 갯방풍, 갯기름나물 등 산형과의 다른 유사 종과 달리 북부지역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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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란은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유령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그 독특한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정말 손가락 크기의 노란 꽃대가 아무런 이파리도 없이 파란 이끼 위에 불쑥 돋아나 있고 거기에 연한 갈색 꽃이 이삭 형태로 여럿 달려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송이 보이더니, 찬찬히 살펴보자 대여섯 송이가 뭉쳐서 피어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쌍잎난초는 콩팥 모양의 다소 넓은 한 쌍의 이파리가 마주 달린 모습이 춤추는 발레리나를 연상케 하며, 울창한 숲속 이끼 위에 연한 녹갈색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역시 하나의 줄기에 여러 개의 꽃이 달렸는데, 꽃마다 깊게 2갈래로 갈라지는 입술모양꽃부리를 밑으로 내뻗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이번에 처음 만난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실쑥. 학명은 Filifolium sibiricum (L.) Kitam. 솔잎쑥이라는 다른 이름이 딱 어울릴 만큼 가느다란 잎이 특징이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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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생종에 모두 백두산 지역에서 자란다고 소개된 큰송이풀과 대송이풀, ‘북부지방에 다소 생산되나 중·남부지방에서는 별로 볼 수 없다.’는 방풍, ‘서흥(황해도), 회령(함경도) 및 경성(〃) 근처에서 자란다’는 실쑥도 이번에 처음 만난 ‘도감 속 우리 꽃’입니다.

남한에서는 모두 만날 수 없는 북방계 습지식물 큰송이풀과 대송이풀. 학명은 각각 Pedicularis grandiflora Fisch., Pedicularis sceptrumcarolinum L. 큰송이풀은 붉은색, 대송이풀은 흰색 꽃을 피운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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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갈 때마다 새로운 꽃을 처음 만나기에 백두산 탐사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지만, 모든 게 꿀맛처럼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1947m 한라산을 가장 높은 산으로 안고 사는 우리로선 경험하지 못한 변화무쌍한 기후가 가장 큰 변수입니다. 해발 2000m를 훌쩍 뛰어넘는 2750m의 백두산은 6월에서 8월 사이 하루에도 몇 번씩 폭우와 비바람, 심지어 눈보라까지 쳐서 툭하면 입산이 금지되는 등 접근을 불허합니다.

백두산 정상 바로 아래 고산초원지대에 핀 산용담. 학명은 Gentiana algida Pall. 국내서 만나는 다른 용담류와 달리 흰색 꽃이 핀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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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산에 들어 정상을 밟는다고 해도 안개가 좀처럼 가시지 않아 천지의 푸른 물을 아예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지정된 통로 외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통제는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탐사 기간 내내 계속되는 이런 불확실성과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은 우리의 백두산을, 우리 땅을 밟고 오를 날이 한시바삐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으로 이어집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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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우리 꽃

두메양귀비·하늘매발톱·털복주머니란… 여름 백두평원은 천상의 화원!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7.17>

백두산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고산식물의 하나인 두메양귀비가 천지 바로 아래 해발 2600m 둔덕에 한가득 피어 있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학명은 Papaver radicatum var. pseudoradicatum (Kitag.) Kitag. ©김인철

[논객닷컴=김인철] 여행은 설렘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보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들로 꽃을 만나러 가는 여행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떠날 때마다 앞선 길에서는 만나지 못한 새로운 들꽃 산꽃을 봅니다.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숲을, 들판을 독차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로 꽃이 쉬 짐을 아쉬워하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열흘이면 새로운 꽃들에 아낌없이 자리를 내주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한에서 멸종위기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털복주머니란이 백두산 고산평원에 호젓하게 피어 있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ypripedium guttatum var. koreanum Nakai. ©김인철

멀리 백두산으로 꽃 찾아가는 여행은 더없이 설레고 더없이 각별합니다. ‘우리 꽃’이되 우리 땅에서 볼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꽃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식물학자와 야생화 동호인 등이 연길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선봉령 습지에서 작은황새풀과 제비붓꽃, 세잎솜대 등 고산 습지식물을 탐사하고 있다. ©김인철

분단으로 남과 북의 길이 막힌 지 어언 70여 년. 그리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으로 다소 트일 듯싶던 숨통이 다시 막힌 지 10년. 대립과 대치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각종 식물도감에 ‘북부 지역에서 자란다’거나 ‘백두산 등 북부 고산지대에 자란다’고 기재된 수많은 우리 꽃들이 실물을 확인할 수 없는, 박제된 그림으로만 전해질 뿐입니다.

낭림산 이북에서 자생한다는 하늘매발톱이 백두평원에서 진한 잉크색 꽃을 가득 달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quilegia japonica Nakai & H.Hara ©김인철

그런 ‘북녘 우리 꽃’에 대한 갈증을 다소나마 풀 수 있는 곳이 바로 백두산입니다. 북위 42도에 위치한 높이 2750m의 백두산. 7월 5일부터 일주일간 만나본 백두산은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花園)이었습니다. 특히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위 해발 1000m 이상에서 나타나는 툰드라지대는 남녘에서는 아예 만날 수 없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북방계 식물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산천은 의구(依舊)하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백두산 천지(天池)의 변함없는 모습. 천지 넘어 개마고원 등 북녘으로 우리 꽃을 만나러 갈 수 있기를 빌었다. ©김인철

여기저기 노란색 꽃을 한가득 피우고 있는 두메양귀비와 하늘매발톱, 구름송이풀 등 고산식물과 노랑만병초와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들쭉나무, 월귤, 홍월귤, 가솔송 등 키 작은 관목들. 특히 남한에서는 함백산 내 2곳에 철책을 두른 채 보호 중인 멸종위기야생식물 털복주머니란이 고산평원 여기저기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모습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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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란(自生蘭)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병아리난초!

가뭄과 태풍, 폭염도 아랑곳 않고 홍자색 꽃 가득 피워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7.16>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mitostigma gracile (Blume) Schltr.

[논객닷컴=김인철] 산과 들에서 피는 그 어느 꽃 한 송이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겠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저절로 피는 자생난초를 보면 더더욱 그 힘찬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산과 계곡의 바위나 풀숲, 바닷가의 아슬아슬한 절벽, 이런 척박한 환경도 모자라 장대같이 키 큰 고목의 줄기나 가지 겉에 겨우겨우 뿌리를 내리고, 희거나 붉거나 노란, 때론 연초록이거나 검은, 그야말로 형형색색의 진기하고도 청초한 꽃들을 피워내는 걸 보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곤 합니다. 미끈하게 구워진 도자기에 담긴 원예종 난초만을 봐온 도시인들에겐 더욱더 그러합니다.

자생난초란 화단이나 화분 등에서 일부러 심거나 가꾼 게 아니라 자연에서 절로 자라난 난초를 말하는데, 우리 국토가 자생난초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전국 각지의 숲속 땅은 물론 바위나 나무 등지에 뿌리를 내리고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는 자생난초가 무려 100종이 넘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핀다고 해서 지생난(地生蘭)이라 구분하는 춘란과 한란, 은대난초, 은난초, 새우난초, 금난초 등이 주를 이루지만, 풍란과 석곡, 지네발란 등처럼 나무나 돌에 착근해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가는 착생난(着生蘭)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7월 4일 서울 인근 서해의 작은 섬 바닷가 바위 위 절묘한 곳에 병아리난초가 활짝 피어 있다. 태풍 ‘뿌라삐룬’이 지나간 직후여서 평상시 황토색이던 바닷물은 물론 하늘까지 파랗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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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가뭄이 극에 달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태풍이 불고, 장맛비가 며칠씩 쏟아지고, 또는 때 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등 기후 변화가 요동을 치는 6~7월 우리 땅에서 자라는 100종이 넘는 자생난초 중 하나가, 변덕스러운 세상사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초연한 모습으로 깜찍하고 앙증맞은 꽃을 피웁니다.

치마난초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귀하디귀한 광릉요강꽃이나 복주머니란처럼 아주 제한된 자생지에서 드물게 피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꽃을 피웁니다. 높은 산 깊은 숲에 몰래 숨어 피는가 하면, 바닷가 솔숲 모래밭은 물론 바닷물이 드나드는 바위 겉에서 나 보란 듯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많은 이들이 손쉽게 오르는 관악산이나 북한산 등 수도 서울의 친숙한 산의 바위에도 손바닥만 한 이끼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웁니다.

태풍이 불고 장맛비가 내리는 악천후가 지나간 뒤인 지난 7월 7일 경남 김해의 불모산 중턱에 수백 촉의 병아리난초가 피어나 야생난초의 강인한 생명력을 웅변했다. 한두 촉에서, 많으면 수십 촉이 피는 게 고작인 다른 자생지와 달리 수백 촉이 군락을 이뤄 장관을 연출했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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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원예종 난초처럼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비 오면 뿌리가 썩을세라, 가뭄 들면 말라 죽을세라 애지중지하지 않아도 해마다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이, 이번에 소개하는 야생난초가 가진 최고의 특징입니다. 또한 다른 이름난 자생난초에 비해 너무 귀하지 않고 너무 먼 데 서식하지 않아서 일부러 멀리 찾아가지 않더라도 조금만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 만날 수 있다는 접근의 용이성이 또 다른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 색이 온통 흰색인 병아리난초. 대개는 옅은 홍자색이지만, 드물게 흰 꽃을 피우는 개체가 있다. 단 한 촉이지만, 백마 탄 왕자의 기품이 난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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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에 분포하며 반 그늘진 계곡의 바위나 자갈밭 등에 생육한다.’고 국가생물종정보지식시스템에 소개된 병아리난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너비 1~2cm, 깊이 3~8cm의 타원형 잎이 한 장 땅바닥에 깔리고, 그 위로 8~20cm 정도 높이로 꽃대가 올라와 작게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20개가 넘는 꽃송이가 한쪽으로 치우쳐 층층이 달리는데, 꽃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핍니다.

이파리 하나에 8~20cm가량의 꽃대를 올려, 많게는 20개가 넘는 꽃을 촘촘히 달고 선 병아리난초. 척박한 바위 위 이끼에 뿌리를 내리고 자생한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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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cm 크기의 자잘한 꽃을 촘촘히 달고 바위 위에 오뚝 선 모습을 보면, 특히 수십 수백 송이가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병아리난초’란 이름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학자들이 새로 작명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 이름인 ‘ヒナ(병아리)ラン(蘭)’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꽃 색은 옅은 홍자색인데, 간혹 흰색으로 피는 개체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같은 병아리난초속 식물로 구름병아리난초와,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점박이구름병아리난초도 고산지대에 희귀하게 자생하고 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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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절벽에 붙어 승천(昇天)하는, 벌깨풀

석회암에서 보랏빛으로 피는 ‘바위용(龍)머리’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6.12>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Dracocephalum rupestre Hance

[논객닷컴=김인철] 국립수목원이 발표한 국가표준식물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의 수는 모두 4129종. 이중 대다수는 동네 뒷산이나 들, 저수지나 강, 평상시 오고 가는 길의 가장자리 등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지만, 일부는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 섬이나 강, 바닷가 등 특정한 곳에서만 서식합니다. 이 중 동물 뼈나 조개껍데기 등이 쌓여 만들어진 강원도 석회암 지대는 오랜 세월에 걸친 단층운동과 풍화·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석회동굴 및 기암절벽 등 천혜의 비경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박쥐나 육서 무척추동물,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 등 특정 동식물의 피난처, 나아가 최후의 서식처라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탄산칼슘이 풍부한 석회암지대에 잘 적응해 사는 식물들을 호석회 식물(calcicole plants)이라 부르는데, 회양목을 비롯해 꼭지연잎꿩의다리와 아마풀, 개아마, 참골담초, 정선황기, 복사앵도, 시베리아살구나무, 외대으아리, 삼수개미자리, 산서어나무, 왕느릅나무, 나도국수나무, 비슬나무 등의 호석회 식물이 숨겨진 보물처럼 강원도 석회암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구자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석회암 바위 절벽에 붙어 길이 20~30cm까지 자라서 6월부터 8월 사이 보랏빛 꽃을 층층이 피우는 벌깨풀. 심장형 이파리와 줄기에 흰 털이 촘촘히 나 있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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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며 여름을 향해 치닫는 6월 초·중순, 키 작은 풀꽃이 자취를 감추면서 산과 들의 식물들이 잠시 꽃 피기를 멈춘 채 휴지기에 접어드는 듯싶을 때 강원도 석회암지대의 높고 험준한 산에는 특별한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호석회 식물의 하나인 들깨풀이 그 주인공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절벽 한가운데에 뿌리 내린 벌깨풀. 남한에서는 자생지가 몇 안 되는 희귀 북방계 식물로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의 보호책을 마련한 듯싶어 안쓰럽지만, 살풍경한 절벽에 최고의 멋을 더한 듯해 고맙기 짝이 없다. ©김인철
©김인철

수직으로 치솟은 덕항산의 석회암 수직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어 보랏빛 꽃 여러 개를, 마치 손가락 펴듯 하늘을 향해 내뻗고 있습니다. 학명 중 속명은 그리스어로 dracon(용)과 cephale(머리)의 합성어인데,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꽃이 마치 상상 속 동물인 용의 머리처럼 보였나 봅니다. 종소명 rupestre는 ‘바위에 자생하는’이란 뜻을 가진 단어로,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벌깨풀의 특성을 아주 잘 반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오히려 꽃이나 잎 등 전초가 전국의 산과 숲에서 흔히 만나는 벌깨덩굴과 비슷하다고 보고 벌깨풀이란 국명을 붙였는데, 길이는 2.8cm 정도로 입 벌린 뱀 같은 모양의 꽃이 같은 꿀풀과 용머리속 식물인 용머리의 꽃과도 닮았다고 해서 ‘바위용(龍)머리’란 별칭도 함께 얻었습니다.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6월의 연녹색 숲 한가운데서 벌깨풀의 보랏빛 꽃을 바라보면 누구나 자연의 황홀경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김인철
©김인철

벌깨풀은 호석회 식물이자 희귀 북방계 식물의 하나이기도 한데, 이는 곧 현재 확인되고 있는 몇몇 자생지가 곧 북방계 식물인 벌깨풀의 남방 한계 지역으로, 벌깨풀이라는 식물자원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훼손되지 않도록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서식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가생물종정보지식시스템에 따르면 벌깨풀은 중국에도 분포하며, 남한에서는 삼척과 정선, 부안 등 석회암지대 100여 곳 미만의 자생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벌깨풀을 사진에 담아온 야생화 동호인들에 따르면 삼척의 덕항산, 강릉과 정선 경계에 있는 석병산 등 2곳에서 6월과 8월 사이 꽃 핀 것을 보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에서)

벌깨풀과 벌깨덩굴의 닮은꼴 꽃. 꽃이나 잎이 비슷하게 생겼으나, 벌깨덩굴은 덩굴식물로 줄기가 옆으로 뻗는다. ©김인철
©김인철

지난 7일 오로지 수직으로 올라가거나 수직으로 내려가는 길밖에 없을 성싶은 등산로를 오른 뒤, 천 길 낭떠러지 중간에 발 딛고 서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채 보랏빛 꽃을 삐쭉삐쭉 내민 벌깨풀을 올려다보며 떠올린 한 구절이었습니다. 솜털 가득한 연둣빛 심장형 이파리를 날개 삼아 하늘로 오르려는 작은 용(龍), 아니 무수한 미꾸라지를 보며 “사람의 손을 피해 이리도 높이 올라왔구나, 더 이상 승천하지 말고 이곳에 영구히 뿌리내려라.”라고 빌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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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울리는 오월화, 은방울꽃!

은은한 향 종소리에 담겨 번지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5.15>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onvallaria keiskei Miq.

혼자서 산길을 헤매다가 나도 모르게 음습한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진하면서도 고상한, 환각이 아닌가 싶게 비현실적인 향기에 이끌려서였다. 그늘진 평평한 골짜기에 그림으로만 본 은방울꽃이 쫙 깔려 있었다.

5월의 숲은 ‘계절의 여왕’이란 말답게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이따금 봄비까지 내렸기 때문인지 신록은 더욱 푸르고, 온갖 야생화는 제철을 잊지 않고 풍성하게 피어납니다. 지난 13일 강원도 철원의 야트막한 산에 오르자 끝물의 연분홍 철쭉꽃과, 순백의 매화말발도리꽃과 고추나무꽃이 번갈아 나타나, 가는 봄을 후회 없이 즐기라고 인사를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울울해진 풀밭에선 벌깨덩굴과 는쟁이냉이, 미나리냉이, 나도냉이, 산괴불주머니, 알록제비꽃, 둥굴레, 각시붓꽃 등 키 작은 풀들이 희거나 노랗거나 붉은, 색색의 꽃을 피우며 절정의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즈음은 고사리, 곰취, 참취 등 산나물 채취 시기이기도 해서 순수한 등산객은 물론 꽃 찾아다니는 사람, 나물 하러 다니는 사람 등 적지 않은 이들이 해발 923m에 불과한 명성산을 바삐 오갑니다. “여기 좀 보세요. 이파리가 넓고, 밥풀 같은 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이게 뭔가요?” 초보 나물꾼 한 분이 인솔자에게 소리쳐 묻습니다. 키 작은 잡목들 사이 무심히 밟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그늘진 평편한 풀밭에 그야말로 이파리가 넓고 무성한 풀이 쫙 깔렸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무심코 밟은 게 미안해 물어봤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꽃대마다 알알이 달린 꽃은 막 벌어지기 직전이어서 아쉽게도 그 향기를 실감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5월에 피는 야생화가 한둘이 아님에도,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월화’란 별칭으로 불리는 꽃이 바로 은방울꽃입니다. 아마도 은방울을 똑 빼닮은 앙증맞은 꽃의 생김새뿐 아니라, 순백의 꽃 색, 그리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진한 꽃향기 등의 3박자가 은방울꽃을 계절의 여왕 5월을 대표하는 꽃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종 또는 방울 모양의 순백의 자잘한 꽃송이가 매력적인 은방울꽃. 살랑 봄바람이라도 불면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질 듯하다. ©김인철
©김인철

아니, 꽃이 깔려 있다기보다는 그 풍성하고 잘생긴 잎이 깔려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밥풀만 한 크기의 작은 종이 조롱조롱 맺힌 것 같은 흰 꽃은 잎 사이에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앙큼하도록 농밀한 꿀샘을 가지고 있었다.

은방울꽃은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데, ‘계곡의 백합(lily of the valley)’이라는 영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배수가 잘 되는 산골짜기에서 잘 자랍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구(詩句)처럼, 은방울꽃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자세히 살피고 오래 관찰해야 합니다. 특히 넓고 긴 초록색 이파리가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탓에, 꽃을 알아차리고 감상하기 위해선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채 1cm도 안 되는 작은 은방울꽃이 눈에 들어오고, 그리고 꽃줄기마다 10개 안팎씩 달린 ‘방울꽃’에서 울려 퍼지는 잔잔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양편으로 시원하게 뻗은 이파리 사이 꽃대마다 10송이 안팎의 꽃송이를 앙증맞게 매달고 선 은방울꽃. 작지만 온 숲을 제압할 듯 당당한 모습이 ‘오월화’로 꼽힌 이유를 말해주는 듯하다. ©김인철

그뿐 아니라, 가까이 다가서야만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비현실적인 꽃향기를 맡고, 고급 향수의 재료로도 쓰인다는 은방울꽃의 매력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은방울꽃은 ‘화냥년속고쟁이가랑이꽃’이니 ‘바람난며느리속고쟁이’와 같은 발칙하면서도 기발한 옛 이름을 갖고 있는데, 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날렵하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진초록 이파리 두 장이 꽃대 양편에 길게 마주 선 모습이 마치 여인이 속고쟁이를 입은 채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6개로 갈라진 꽃잎 끝 부분이 살짝 보랏빛으로 물든 은방울꽃. 최근 강원도 홍천의 한 야산에서 이른바 ‘분홍 은방울꽃’으로 불리는 변종이 발견돼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실제 은방울꽃은 키가 20~35cm에 불과하지만, 이파리는 길이 12~18cm, 폭 3~7cm로 넓고 풍성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반면 순백의 꽃은 6~8mm로 매우 작으며,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있는데, 여기에 비를 피해 종을 이어가려는 절실한 본능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즉 종족 보존과 직결되는 꽃가루와 꿀을 보호하는 ‘우산 역할’을 하기 위해 꽃잎이 땅을 보고 동그란 원형을 그리고 있다는 설명이지요.

발밑에 쫙 깔린 은방울꽃 무더기. 전국의 산골짜기와 그늘진 산기슭에서 잘 자란다. 무성한 이파리 사이에 올망졸망 달린 ‘방울꽃’은 몸을 낮춰야 종소리와 향을 느낄 수 있다. ©김인철
©김인철

진한 향이 난다고 해서 향수란(香水蘭), 방울처럼 생긴 난초라고 해서 영란(鈴蘭)으로도 불리는 은방울꽃은 ‘행복’이란 꽃말 때문인지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결혼식 부케 꽃다발로 사용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고 박완서 선생이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한 묘사가 그 어느 식물도감보다도 실감나기에 다시 인용, 소개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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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탐매(新探梅) 1번지’, 광양 매화마을

 춘삼월 섬진강변에 매화 꽃구름 피어오르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3.16>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학명은 Prunus mume Siebold & Zucc. for. mum

[논객닷컴=김인철] 예로부터 문인화의 소재로 사랑받은 사군자(四君子). 그중에서도 가장 앞에 위치하며 ‘지조의 상징’으로 추앙받아온 매화. 옛 선비들은 겨울과 봄 사이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를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이를 이른바 심매(尋梅), 또는 탐매(探梅)라 하지요. 그리고 눈 속에 핀 매화, 즉 설중매(雪中梅)를 묵화로 그리고,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고 칭송하며 그 자신 아무리 곤궁하더라도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저 멀리 앞산에 해가 떠오르자 섬진강변에 가득 찬 매화 꽃밭이 한겨울 흰 눈에 뒤덮인 듯 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해마다 3월이면 광양과 하동 일대 섬진강변에 희고 붉은 매화 꽃물결이 일렁여 가만 바라만 보아도 꽃 멀미가 날 정도다. ⓒ김인철
ⓒ김인철

경남 양산 통도사의 370년 된 홍매(紅梅)인 자장매(慈藏梅)를 필두로, 수령 600년을 넘었다는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 등이 옛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고매(古梅)입니다. 선암매와 고불매 등과 함께 ‘호남 5매’로 꼽히는 담양 계당매(溪堂梅)와 전남대 대명매(大明梅), 고흥 수양매(水楊梅), 그리고 김해의 와룡백매(臥龍白梅),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 산청의 남명매(南冥梅) 등 전국에 산재한, 수령 100년을 넘은 200여 그루의 오래된 매화나무가 각기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대개 유서 깊은 고택이나 오래된 사찰에 뿌리내린 이들 고매는 전통 가옥의 예스러운 정취와 어우러져 오늘날에도 고아한 멋을 풍기고 있습니다.

수령 370년이 넘었다는 통도사 자장매. 동지섣달 눈 속에서 핀다고 해서 설중매라고도 불리는 홍매인데, 혹한 탓인지 올해는 2월 24일 현재 가지 끝에 겨우 몇 송이 분홍색 꽃잎을 여는 데 그쳤다. ⓒ김인철
ⓒ김인철

그런데 최근에는 고매 한두 그루에서 묻어나는 수백 년 묵은 청향(淸香)을 쫓아 유유자적 유랑하던 탐매에 더해, 수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한 장관’을 즐기는 ‘신탐매(新探梅) 여행’이 인기입니다. 열매인 매실 수확 등을 목적으로 심은 수만 그루의 매실나무가 연륜이 쌓이면서 봄마다 농원 일대가 거대한 매화꽃동산이 되고, 이를 즐기려 수만, 수십만 인파가 운집하는 매화 축제가 열리는 것이지요. 전남 광양과 경남 양산의 매화 축제가 대표적입니다.

전남 광양 매화마을과 더불어 해마다 3월 대규모 매화 축제가 열리는 경남 양산의 원동 매화마을.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무릉도원 같은 매화 꽃밭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멋진 장면을 포착할 수 있어 인기다. ⓒ김인철
ⓒ김인철

특히 전남 광양과 하동 일대 30만여㎡에 심어진 10만여 그루의 매실나무에 희고 붉은 매화꽃이 피면 물비늘 반짝이는 섬진강을 따라 거대한 꽃구름이 뭉실뭉실 피어나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동틀 무렵 광양 매화 축제의 중심인 다압면 도사리 청매실농원 매화 동산에 올라, 서서히 어둠이 걷히면서 섬진강과 나란히 흐르는 거대한 매화꽃의 장강(長江)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광경을 바라보면 “아~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 바로 예로구나.”라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섬진강 시인’은 봄날 섬진강변 매화의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이렇게 노래했지요.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의 시 ‘봄날’)

붉다 못해 검붉어 흑매라고도 불리는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 수령 300년이 넘었으니 탐매에 나선 옛 선비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았을 고매(古梅)임이 분명하다. ⓒ김인철
ⓒ김인철

광양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경남 양산의 원동 매화마을 또한 봄바람에 휘날린 매화 꽃잎이 물비늘 반짝이며 흐르는 낙동강에 곱게 내려앉아 저 멀리 흘러가는 정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낙동강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이곳은 무릉도원 같은 매화 꽃밭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멋진 순간을 포착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희고 붉은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춘삼월, 절정의 봄이 강물 위에 떠 있는 매화 꽃잎과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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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여행 1번지’, 제주

수선화·백서향 향(香) 봄 재촉하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2.14>

수십 년 만의 강추위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단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싶습니다. 2월 중순, 예년 같으면 여기저기서 복수초가 황금색 꽃을 피웠느니,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느니 요란을 떨 시기이건만 올해는 아직 잠잠합니다.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봄은 아직 멀리 있는 듯합니다.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록적인 폭설과 강추위로 항공기 운항이 일시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동시에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란 명성답게 뭍보다는 두어 발 빠른 화신(花信)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미 작년 12월 겨울의 문턱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제주의 겨울을 붉게 수놓는 동백과 여기저기서 밭떼기로 피어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유채, 그리고 매화와 갯국, 광대나물, 개별꽃, 큰개불알풀 등등.

그중 겨울에 피어나 그윽한 향을 풍기며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에 꽃향기가 가득하니 어서 와서 함께 즐기시라”며 손을 내미는 제주만의 특별한 야생화가 있습니다. 바로 수선화와 백서향입니다. 이 둘은 새해 ‘들꽃여행 1번지’로 제주를 찾는 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임을 확인시켜줍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해변에 핀 수선화. 왼쪽에는 산방산이, 가운데 멀리로는 눈 덮인 한라산이, 오른쪽에는 용머리 해변과 짙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에 뿌리내렸다.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Narcissus tazetta var. chinensis Roem. ©김인철

이미 160여 년 전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정월 그믐에서 2월 초 피기 시작한 수선화는 3월이 되면 산과 들, 밭두둑에 흰 구름이 깔린 듯, 흰 눈이 장대하게 쌓인 듯”하다며 “마을마다 동네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다. (제주의)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라고 격찬한 바 있습니다.

추사가 사랑한 제주 몰마농꽃. 꽃대 하나에 꽃이 여러 송이 달리고, 속 꽃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게 금잔옥대라 불리는 지중해 연안 원산의 수선화와 형태가 크게 다르다. ©김인철

제주 전역에서 피는데, 특히 추사가 8년 3개월 동안 유배 생활을 했던 서귀포시 대정 들녘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생지가 특별히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변은 물론 밭둑이나 돌담 아래, 바닷가 언덕 등지에 흔히 자랍니다.

추사가 유배 생활을 했던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한 도로변에 잡초처럼 피어난 수선화. 추사가 이 수선화를 보며 작으나마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김인철

제주도에 피는 수선화는 두 종입니다. 하나는 꽃이 크고(몰) 속 꽃잎이 마늘(마농) 뿌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제주 토속어로 ‘몰마농꽃’이라고 불리는 수선화입니다. 또 다른 수선화는 흰색 꽃받침 위에 황금색 부화관(副花冠)이 동그랗게 자리한 게 마치 흰 쟁반(옥대)에 금잔이 앉은 것 같다고 해서 금잔옥대(金盞玉臺)라 불리는 것입니다. 황금색 부화관은 물론 꽃받침 잎까지 온통 노란색인 원예종 수선화도 종종 눈에 띕니다. 추사는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가지가 많게는 10여 송이에 화피 갈래 조각이 8~9개에 이른다”는 설명과 함께 노란색 부화관과 속 꽃잎이 여럿으로 갈라지는 그림을 남겨 당시 제주도에 자생하던 수선화가 몰마농꽃이었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순백의 겨울꽃’ 백서향. 그윽한 향기가 “봄이여 어서 오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팥꽃나무과의 상록 활엽 관목으로, 학명은 Daphne kiusiana Miq. ©김인철

민가 주변에 피는 수선화와 달리 백서향(白瑞香)은 제주만의 독특한 지형인 곶자왈에서 자랍니다. 숲과 자갈을 뜻하는 제주 토속어 ‘곶’과 ‘자왈’이 합쳐진 곶자왈은 용암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요철(凹凸) 지형으로,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 콩짜개덩굴 등 양치류 등이 공존하는 원시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 백서향은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제주의 봄을 재촉하는 꽃으로, 제주의 봄은 곶자왈에 번지는 그윽한 백서향의 향기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김인철

꽃은 키 1m 안팎의 늘 푸른 활엽 관목 가지 끝에 다닥다닥 달리는데, 애초 자주색 꽃이 피고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는 중국 원산의 서향(瑞香)에 비해 흰색 꽃이 핀다고 해서 백서향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백서향은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 그리고 일본에도 자생하는데 최근 제주에서 자라는 백서향은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M. Kim)이란 별도의 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제주백서향은 꽃받침통과 열편(꽃잎이 펼쳐진 부분)에 털이 없고 긴 타원형 잎을 가지며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에서 자생하는 반면, 백서향은 꽃받침 통과 열편에 털이 있고 도피침형 잎을 가지며 남해 해안에서 자란다는 점에서 두 종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요. 2013년 우리나라 식물분류학회지에 실린 이 주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제주백서향은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 됩니다.

백서향이 한겨울 꽃송이를 가득 달고 곶자왈 숲에 서 있다. 꽃은 3월까지 긴 기간 피어 진한 향기가 곶자왈 숲에 가득 번진다. ©김인철

하나의 가지 끝에 수십 송이씩 달리는 제주백서향은 보통 1월 중순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해 만개하기까지 한 달 넘게 소요됩니다. 이 때문에 백서향이 자생하는 제주 곶자왈은 2월에서 3월까지 긴 기간 찾는 이의 오감을 행복하게 하는 힐링의 숲이 되고 있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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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놓아 울던 청춘의 피꽃, 동백꽃

툭 떨어져 ‘대중의 꽃’으로 다시 피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1.12>


차(茶)나무과의 상록 활엽 소교목으로 학명은 Camellia japonica L.

[논객닷컴=김인철] 한파 경보까지 발령되는 등 맹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립니다. 땅도 얼고 강도 얼고 호수도 얼어붙으니, 산도 얼고 나무도 얼어 모든 생명의 맥박이 멈출 듯싶은 한겨울입니다. 이런 와중에 늘 푸른 이파리를 풍성하게 간직한 채 사이사이 진홍색의 꽃망울을 터뜨리니, 가히 ‘겨울왕국의 프리마돈나’라 일컬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한겨울에도 잣나무나 측백(側柏)나무처럼 잎이 푸르다고 해서 ‘동백(冬柏)’, 또는 ‘동백(棟柏)’이란 한자어가 이름의 앞머리에 붙는 동백나무가 장본인입니다.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 옆 작은 못에 핀 동백꽃. “나그네 근심 덜 일 하나 있으니/ 산다(山茶·동백나무)가 설 전에 벌써 꽃을 피웠네.(다산의 ‘객중서회(客中書懷)’에서)” 유배 온 다산이 바라보며 타향살이의 근심 하나를 덜었다는 동백꽃이 바로 저 꽃이었을까 궁금하다. ©김인철

학명의 종명에 일본을 뜻하는 ‘자포니카(japonica)’가 쓰일 만큼 일본 전역이 주요 원산지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타이완에서도 폭넓게 자생하는, 동아시아의 대표 식물이라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를 비롯해 오동도와 거문도 등 남해 섬과, 동해의 울릉도, 서해의 대청도와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섬 지역에 널리 자생합니다.

©김인철

뭍에서는 고창 선운사와 강진 백련사, 충남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숲 등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합니다. 이름난 군락지는 아니어도 충청 이남의 웬만한 산사(山寺) 주변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방화림(防火林)에 적합한 상록활엽수로서 활용됐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11월 하순 꽃망울을 터뜨린 부산 해운대 동백섬의 동백나무.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으로 시작하는 불후의 명곡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김인철

흰 눈이 쌓인 푸른 이파리 사이로 붉게 핀 ‘겨울 꽃’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는 건 늦가을부터입니다. 지난해 11월 하순 만개한 둥근바위솔을 만나러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 갔다가 혹시나 하고 고개를 들곤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꽃을 제법 여럿 보았습니다. 덕분에 1972년에 발표돼 지금까지 국민가요의 하나로 꼽히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첫 대목인 ‘꽃 피는 동백섬’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 올레길에서 만난 동백꽃.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국민가요’란 말이 결코 과하지 않은 ‘동백 아가씨’의 노랫말대로 금지곡 지정으로 가수 이미자는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울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야만의 세월’이었을 뿐이다. ©김인철

참 일찍이 청마 유치환이 시 ‘동백꽃’에서 노래했듯 ‘목 놓아 울던 청춘의 피꽃’으로 피었다가 절정의 순간 통째로 미련 없이 툭 지는 처연한 특성 때문일까, 동백꽃은 고답적인 문학작품뿐 아니라 대중문화에서도 크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1964년 발표돼 무려 35주 동안이나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가 왜색풍(倭色風)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이나 금지곡으로 지정됐었는데, 일본만이 동백나무의 자생지라고 오해한 무지가 빚은 폭정의 과거사를 보는 듯해 헛웃음이 나옵니다. 동백꽃은 이후 송창식의 ‘선운사 동백꽃’이 되어, 정태춘의 ‘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기에’가 되어 다시 또 대중의 사랑을 받습니다.

©김인철

동백꽃의 통속적 이미지는 서양인들에게도 비슷하게 느껴졌던 듯싶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8년 ‘동백 아가씨(La Dame aux Camelias)’란 제목의 연애소설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고, 이를 토대로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1855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작곡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요즘도 국내서 종종 일본식 한자 표기인 ‘춘희(椿姬)’란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바로 그 오페라입니다.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 피어 있는 흰 동백꽃. 한라산에 자생하는 동백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고 한다. ©김인철

한겨울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은 아마 제주도일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올레길이 한겨울 동백꽃을 완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숲과 골짜기, 마을과 골목길을 찬찬히 걷다 보면 키 10m 넘는 자생 동백나무는 물론, 수십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룬 군락, 나지막한 현무암 담장 위에 올라앉은 분재형 동백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동백나무와 붉은 꽃송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선 한라산에 자생하는 동백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 흰 동백꽃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처럼 후드득 통째로 떨어진 둥백꽃. 절정의 순간 툭 떨어져 바닥에 가득 쌓이는 때문일까, 흔히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다시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김인철

동백나무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입니다. 벌·나비가 거의 없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 꽃이 피기에, 곤충보다는 새들에 의지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지요. 특히 새는 사람의 눈처럼 붉은색을 붉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새들도 붉은색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동백꽃은 이런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붉게 더 붉게 타오른다고 합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농밀한 꿀을 빨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 새들의 하나인데, 그 이름도 동백나무에서 따왔습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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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야청청(獨也靑靑) 겨우살이!

한겨울 황금빛 열매를 잉태하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2.07>

겨우살이과의 상록 활엽 관목. 학명은 Viscum album var. coloratum (Kom.) Ohwi.

삶이 고단한 그대여 하루하루
겨우 산다고 말하지 마라
나목 앙상한
참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혹독한 겨울밤 의연히
지새는 겨우살이를 보라 (원영래의 시 ‘겨우살이’에서)

12월로 접어들자 순식간에 바람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어느 순간 바람에 날이 서고, 그 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옷깃 속으로 파고듭니다. 아,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걸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더니, 울긋불긋 물들었던 단풍이 낙엽이 되어 땅 위에 나뒹구는 시절이 되니 과연 늘 푸른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소나무, 잣나무, 측백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등등. 그리고 소나무나 잣나무와 같은 침엽수인 일본잎갈나무가 왜 낙엽송(落葉松)이라 불리는지도, 뾰족한 잎이 갈색으로 변했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나니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바로 이런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 등 상록수에 못지않게 그 존재감이 드러나는 또 다른 식물이 있습니다. 겨우살이입니다.

화려했던 단풍이 지고 난 뒤 앙상한 가지 사이에 보석처럼 빛나는 노란색 열매를 치렁치렁 달고 나타난 꼬리겨우살이. 상록수인 다른 겨우살이와 달리 낙엽 활엽 관목의 희귀종이다. ©김인철
©김인철

‘껍데기는 가라’던 시인 신동엽의 외침에 호응하듯 무성하던 이파리가 우수수 지고 난 뒤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겨우살이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냅니다. 물론 이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니라 늘 푸른 잎과 줄기, 그리고 연노랗거나 붉은 열매입니다. 칼바람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치열한 꿈을 간직한 겨우살이가 미래를 위해 잉태한 황금빛 찬란한 열매입니다. 봄이 한창인 4월경 가지 끝에 노랗게 피는 겨우살이의 꽃은 작을뿐더러, 숙주인 큰 나무의 이파리에 가려 거의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방사상으로 뻗은 숱한 가지와 무성한 잎, 그리고 풍성하게 달린 연노랑 열매. 멀리서 보면 까치집을 닮은 겨우살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김인철

모든 풀·나무가 동면(冬眠)하는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겨우살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다른 나무에 기생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뜻도 담겼다고 합니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다른 나무에 뿌리를 박고 흡기(吸器)라는 기관을 통해 물이나 영양분을 공급받는 반기생식물. 땅까지 뿌리를 내려 보지 못한 채 평생 공중에 떠서 사는 가련한 식물입니다. 하지만 한겨울 저 홀로 푸르른 특성으로 인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등의 능력을 갖춘 영초(靈草)라 불리며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돼 왔습니다.

숙주인 참나무의 무성한 푸른 이파리에 둘러싸여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겨우살이. 한여름인 8월 중순 경기도 국립수목원에서 담았다. ©김인철

겨우살이의 번식은 새를 통해 이뤄집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높은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에겐 최상의 먹잇감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엔 끈적끈적한 점액이 가득 담겨있어 새들이 열매를 먹을 때 한사코 부리에 달라붙습니다. 결국, 새들은 점액을 다른 나무에 비벼서 닦게 되는데, 이때 끈끈한 점액에 묻어 있던 씨앗이 나무껍질에 달라붙어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이지요.

눈 내리고 강풍이 불어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고 얼음이 어는 와중에도 겨우살이는 겨우 산다고 투덜대지 않고 연노랑 열매를 가슴에 품고 있다. ©김인철

국내에 자생하는 겨우살이는 모두 5종.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겨우살이는 한겨울 참나무나 밤나무, 팽나무, 물오리나무 등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까치집 모양으로 등장합니다. 열매는 연노란색입니다. 반면 붉은겨우살이는 이름 그대로 붉은색 열매가 돋보이는데, 눈 덮인 한라산과 내장산, 덕유산 등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진홍색, 또는 황적색 열매가 한눈에도 겨우살이나 꼬리겨우살이 열매와 차이가 드러나 보이는 붉은겨우살이. 진홍색 열매는 한라산 중턱에서 담았는데, 내륙의 같은 붉은겨우살이 황적색 열매와도 비교가 된다. ©김인철
©김인철

상록수인 겨우살이와 달리 꼬리겨우살이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겨울이면 잎이 지고 샛노란 열매만 주렁주렁 달립니다. 태백산과 구룡령, 소백산 등지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입니다. 가는 줄기가 모여 작은 선인장 모양을 한 동백겨우살이는 숙주인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남쪽 바닷가와 섬, 제주도에서 볼 수 있고, 참나무겨우살이는 동백나무나 후박나무 등 제주도 서귀포 일대 상록수에 주로 기생합니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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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 속 오뚝 선 작은 거인, 좀바위솔

장엄하게 물드는 가을 풍경화에 화룡점정(畵龍點睛) 하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7.11.08>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Orostachys minutus (Komar.) A. Berger.

[논객닷컴=김인철] 온 산을 가득 채운 풀·나무들이 아낌없이 마지막 선물을 내놓습니다. 눈 녹고 얼음이 풀리자 새싹과 새순을 돋아내며 봄에서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감싸 안았던 풀·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이파리를 떨구기 전 울긋불긋 물들며 황홀한 만추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지요.

달력의 절기로 9월부터 11월까지를 가을이라 일컫습니다. 그러니 11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지금부터는 만추(晩秋)를 절감하며 빠르게 가는 세월 앞에 연신 한숨만 내쉬어야 할 터이지만, 불과 수일 전 만산홍엽의 숲에서 있었던 좀바위솔과의 환상적인 만남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으니 올가을은 아주 오랫동안 곁에 머물러 있을 성싶습니다.

속살까지 울긋불긋 물든 가을 숲에서 집채만 한 바위 겉에 엄지손가락만 한 꽃대를 곧추세운 채 연분홍 또는 순백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좀바위솔 군락. ©김인철

가을, 그중에서도 초입인 9월부터 10월 말까지 경기·강원·충북·경북 등 꽤 넓은 지역에서 꽤 많은 개체가 꽃을 피우는 좀바위솔. 산이나 계곡의 바위 겉에 붙어서 자라며, 잎이 가늘고 끝이 뾰족한 게 막 싹이 튼 어린 소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통칭 바위솔이라 불리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의 한 종(種)입니다.

꽃잎 5장과 수술 10개의 꽃이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붙은, 좀바위솔의 앙증맞은 이삭꽃차례. ©김인철
©김인철

바위솔은 오래된 기와지붕 위에서도 자란다고 하여 와송(瓦松)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대표 종인 바위솔을 비롯해 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진주바위솔·둥근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 등 모두 10여 종이 국내에 자생합니다.

옥색의 강물과 짙푸른 가을 하늘, 형형색색의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그려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군락.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번지면서 무분별한 채취로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 됐다. ©김인철

바위솔은 보통 30cm까지 자라지만 좀바위솔은 잎과 줄기, 꽃까지 다 합해도 전초가 15cm 이하로 작아서 ‘좀’이란 접두어가 붙었습니다. ‘좀스럽다’거나 ‘좀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인간사에선 ‘좀’ 자가 그냥 작은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얕잡아 보고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세상을 호령할 듯 당당한 모습의 좀바위솔. 작은 거인의 힘이 느껴진다. ©김인철

그러나 자연계에선 ‘좀’ 자는 말 그대로 그저 작거나 왜소할 뿐 결코 모자라거나 못 미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걸 좀바위솔이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만산홍엽의 대자연을 뒷배 삼아 오뚝 서서 천하를 호령하는 일이 결코 버겁지도, 감당 못 할 게 아니라는 걸 좀바위솔이 멋지게 보여줍니다.

오색의 단풍이 그리는 가을 풍경화에 화룡점정 하는 좀바위솔. ©김인철
©김인철

비늘 모양의 녹색 잎 수십 개가 빙 둘러 난 정중앙에 길어야 어른 손가락만 한 이삭꽃차례를 곧추세우는 좀바위솔.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해마다 연분홍색 또는 순백의 꽃을, 벼나 보리 등 곡식의 이삭처럼 다닥다닥 피우게 됩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각종 바위솔이 암 치료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암암리에 뿌리째 남벌 되는 수난을 겪는 게 우려스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실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 불이라도 붙을 듯 붉게 물든 단풍 등 3박자와 어우러져 최고로 꼽히던 한탄강 변의 일부 좀바위솔 자생지가 몇 해 전 괴멸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불가사의한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하나둘씩 좀바위솔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 또다시 못된 손을 타지 않으면 수년 내 집채만 한 바위를 가득 덮었던 장관이 재현될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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