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들에게 세배하는, 복수초!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12월 28일>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복수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복수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기해년(己亥年) 새날이 밝았습니다. 오행(五行)에서 ‘기(己)’ 자는 흙의 기운을 표현하며 색으로는 노란색이기에, 기해년은 곧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각별하고 신명 나는 일만 벌어질 것 같은 황금돼지해를 맞아, 노란색 야생화가 황금색 술잔을 높이 들고 원숙미(圓熟美)를 더해가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애독자들에게 경배하며 새해 인사를 건넵니다.

“만복을 받으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지만 엄동설한의 추위는 여전한데 무슨 꽃 타령이냐고 타박하실 애독자들께는 선조들의 옛 말씀을 전합니다.

“동짓날 밤 자시부터 새봄, 새해가 시작된다.”

즉 매년 12월 22일이나 23일, 가장 짧았던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 밤 자시(밤 11시~새벽 1시)에 이미 새봄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봄의 전령사’ 한두 송이쯤은 새해와 함께 핌 직하다고 말입니다. 북풍한설 중에 잉태되어 겨울의 한복판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는 야생화가 알고 보면 하나둘이 아닙니다. 동백꽃이 그중 하나이고, 매화가 또 다른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런가 하면 수선화·갯국도 뒤질세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복수초도 노란색 꽃술을 반짝이며 귀티 가득한 금잔을 하얀 눈밭 위에 살짝 올려놓습니다.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복수초란 이름 외에 원단화(元旦花)나 원일초(元日草)라고도 불리는데, 원단·원일이란 곧 새해 첫날을 의미하니 새해 가장 먼저 피는 꽃으로 인식되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강원도 동해시 냉천공원 산비탈에는 제주도보다도 이른 1월 초부터 복수초가 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석회암 동굴지대의 따뜻한 지형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와 냉천공원을 빼고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곳은 완도수목원. 1월 중순이면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1보가 전해집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500여 km 떨어진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서는 일러야 2월 말에나 복수초가 피니, 결국 봄은 하루 15~20km의 속도로 아장아장 북상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른 곳에선 1월 초 피기 시작하는 복수초가 경기·강원의 깊은 산에선 5월 초까지도 피니, 개화 기간이 5개월 가까이 됩니다. 참으로 긴 기간 피고 지는 봄 야생화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얼음과 눈 속에서 핀다는 뜻의 얼음새꽃이나 눈색이꽃이란 예쁜 우리말로도 불리는 복수초는 마치 형광 물질을 뿜어내는 듯 강렬합니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 해서 설련(雪蓮)이라고도 부릅니다. 실제 활짝 핀 복수초 꽃 속의 온도는 바로 옆 50cm 떨어진 곳보다 7℃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복수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하는 복수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Where is it?

학명 중 종명 아무렌시스(amurensis)는 헤이룽강(黑龍江)이라 부르는 러시아 아무르 강변에서 처음 채집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시베리아와 중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남단 제주도에서 함경도까지 폭넓게 자생한다. 다만 꽃과 잎, 가지 등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서너 종으로 나뉘는데, 제주도에 자생하는 꽃은 잎이 가늘게 갈라진다고 해서 세(細)복수초로 불린다. 남부와 서해 도서지역의 복수초는 가지복수초라 부르는데, 경기·강원 등지에서 만나는 복수초에 비해 꽃의 크기가 갑절 이상 크고 화려하다. 꽃이 필 때 잎도 무성하게 자란다. 꽃 크기가 아주 작은 애기복수초도 있다. 중·북부지역의 높고 깊은 산에서 난다. 복수초, 애기복수초는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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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절벽에 박힌 보랏빛 보석, 변산향유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11월 26일>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Elsholtzia byeonsanensis M. Kim

▲변산향유(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변산향유(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켜켜이 쌓인 해안 절벽이 오후 햇살이 들어오자 보랏빛으로 반짝입니다. 늘 서쪽 바다를 향해 있는 탓에 제아무리 찬란한 일출이라도 남의 떡 보듯 아예 거들떠보지 않지만, 해가 중천을 지나 뉘엿뉘엿 서편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누구보다 활짝 가슴을 열고 해바라기에 열중하는 변산반도 바닷가의 층층(層層) 단애(斷崖). 깎아지른 절벽에 보랏빛이 번지는 걸 보고 처음엔 석양빛에 붉은 물이 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곰곰 살펴보니 오랜 세월 강한 바람과 바닷물에 깎이고 깎여 형성된 퇴적암에 번지는 색이 석양빛과는 다릅니다. 노루 꼬리만큼 짧은 오후 햇살이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을 붉게 달구는 건 맞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수직 절벽 곳곳에 촘촘히 박힌 자주색 꽃송이가 눈부신 석양빛을 온몸으로 받아 찬란한 빛을 발하며 해안 전체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느 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했던 2018년 한 해도 이제 저물어갑니다. 12월이면 많은 사람이 장엄하게 지는 해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면서 서녘 바다를 찾습니다. 서해 3대 낙조 명소의 하나라는 솔섬 등이 있는 변산반도도 제법 찾는 이가 많습니다.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로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이란 시가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문득 변산반도를 찾는 발걸음도 생겨났습니다. 시인은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 밥 먹다가 석삼년 만에 제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라며 꼬드깁니다. 그러면서 변산해수욕장이나 모두가 꼽는 변산반도의 최고 비경인 채석강에는 잠시만 머무르라고 짐짓 어깃장을 놓습니다.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그런데 수직 단애가 수천 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것 같다는 채석강(彩石江)과 붉은색 암반 및 절벽으로 유명한 적벽강(赤壁江) 등의 변산반도 해안 절벽은 지질학적 명승지일 뿐 아니라, 특산식물인 변산향유의 유일한 자생지여서 ‘한 해 야생화 탐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꽃쟁이’들도 불러 모읍니다. 변산향유는 2012년 꽃향유와 가는잎향유, 애기향유, 좀향유 등 기존의 향유속 유사종과는 구별되는 신종으로 발표되었으나, 아직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오르지 않은 종입니다.

꽃향유(香油)는 줄기는 물론 가지 끝에 칫솔처럼 한쪽으로 뭉쳐서 피는 꽃이 아름답고 식물체 전체에 향기로운 정유(精油)가 함유되어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는데, 변산향유는 꽃향유를 닮았지만 분자생물학적 분석 결과 몇몇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먼저 몸집이 꽃향유에 비해 작을 뿐 아니라, 줄기가 녹색의 꽃향유와 달리 자주색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넓은 달걀형 또는 타원형으로 마주나는 잎도 가죽처럼 두껍고 윤기가 나는 혁질(革質)이어서 초질(草質)인 꽃향유와 비교가 됩니다. 높이 30cm 안팎의 줄기나 잎자루 등에 털이 전혀 없이 밋밋한 것도 큰 차이입니다. 자생지도 크게 다릅니다. 꽃향유는 전국 어디서나 숲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변산향유는 변산반도 해안 절벽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향유속 다른 유사종들과 마찬가지로 가을에 꽃이 피지만, 늦가을인 11월까지도 꽃을 볼 수 있어 앞서 언급했듯 ‘한해 마지막 꽃 탐사 대상’으로 꽃쟁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Where is it?

▲변산향유(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변산향유(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변산에서 처음 발견된 꽃향유의 일종이라는 이름답게, 변산반도가 자생지다. 학명 중 종소명 byeonsanensis는 자생지가 바로 전북 변산임을 말해준다. 신종 발표 이후 추가 연구 조사 결과가 없어 변산반도 이외 자생지는 알려진 바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큰 자생지는 변산반도 안에서도 격포항 인근 해안 절벽이다. 10~11월 격포항 방파제 내 수직 절벽에 자생하는 변산향유는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그 외 지역은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시각에 맞춰 찾아가야 한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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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에 쉼터 마련한 ‘어부의 꽃’, 닻꽃!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10월 24일>

용담과의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 학명은 Halenia corniculata (L.) Cornaz.

 

▲닻꽃(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닻꽃(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가을의 끝 11월입니다. 이제 올해 달력도 마지막 한 장이 남았을 뿐입니다. 20대는 시속 20km로, 50대는 그 두 배가 넘는 50km로 세월이 간다더니, 나이 탓일까? 숨 가쁘게 달려온 2018년 한 해도 어느덧 역사의 저편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화사하게 물들었던 단풍이 흩어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즈음이면, 격동의 한 시기가 끝나고 그다음이 시작될 즈음이면 유난히 생각나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7월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의 초입이라는 9월까지 고산 풀밭을 지키는 닻꽃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파란 하늘에 뜬 낮달을 향해 항해하는 듯 닻 모양의 꽃을 하늘 높이 매단 닻꽃. 닻을 올렸으니 분명 말달리듯 진군(進軍)하는 분망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 반대인 차분함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왜일까. 아마도 하늘에 뜬 그 닻이 먼 길 나서려 막 올려진 게 아니라, 긴 여정 뒤에 찾은 쉼터에 내려질 닻으로 여긴 탓이겠지요.

꽃 모양이 배를 멈춰 세울 때 사용하는 닻을 닮았다 해서 닻꽃이란 이름을 얻었다는데, 실제로 꽃을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떡일 만큼 실감이 납니다. 식물체의 높이는 10~60cm. 연한 황록색으로 피는 꽃은 화관이 4갈래로 갈라져 아래쪽으로 길이 5~7mm의 원통형 뿔처럼 사방으로 뻗는데, 그게 배를 정박(碇泊)시킬 때 쓰는 갈고리 모양의 닻을 쏙 닮은 것이지요. 학명 중 종소명 ‘코르니쿨라타(corniculata)’도 바로 ‘작은 뿔 모양의’라는 뜻으로 외형을 잘 표현했습니다. 이런 생김새를 반영한 듯 ‘어부의 꽃’이란 꽃말을 갖고 있습니다. 봄철 피는 삼지구엽초도 꽃 모양이 매우 비슷해 닻풀이란 별칭으로 불립니다.

▲닻꽃(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닻꽃(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닻꽃은 그러나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돼 쭉 보호·관리 대상에 포함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보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화는 아닙니다. 7~9월 햇볕이 잘 드는 몇몇 높은 산의 풀밭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꽃을 피우는데, 이는 닻꽃이 북쪽에 고향을 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임을 말해줍니다. 실제 2015년 7월 중순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하는 안가라 강변에서, 그리고 올해 8월 백두산 인근 습지에서 누구의 각별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저 홀로 피어 있는 닻꽃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동토(凍土)의 시베리아와 백두산이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본향이라는 말을 실감한 셈이지요. 한두해살이인 만큼, 한두 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뿌리까지 말라 사라집니다.

어쨌든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무한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누구든 처음 보는 순간 ‘아하!’ 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묘한 꽃 닻꽃. 높은 산 탁 트인 풀밭에 뿌리를 내린 닻꽃이 ‘천지간 바람 잘 날 없는 땅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브라보 마이 라이프 세대’에게 깊어가는 가을에 일갈합니다. ‘바쁘게 경쟁하며 앞만 보고 달리던 삶에서 벗어나, 진정 자신을 위한 쉼터를 찾아 정주(定住)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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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산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자생해 수도권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화악산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자생해 수도권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남한의 대표적인 고산인 설악산과 지리산에서도 자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에 있는 화악산(사진)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자생해 수도권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외 강원도 대암산과 한라산에도 자생하는데, 최근 한라산에서는 그 수가 크게 줄어 아예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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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버드나무 2018.10.26 1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아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쉼터를 찾아 정주하려고 시도하다가 쫑 났습니다
    해지면 산책도 어렵고 산에 가기도 쉽지 않습니다 멧돼지도 무섭고 인적이 아예 끊기니요
    관악산이나 북한산이나 청계산 등등 시간 구애 안받고 드나들 수 있는데...
    공원도 그렇고요 밤 문화도 없지요 컴컴해지면 자야 합니다~~) ^^

가을 갯벌의 붉은 카펫, 해홍나물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9월 20일>

명아주과 나문재속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Suaeda maritima (L.) Dumort.

▲해홍나물(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해홍나물(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바다에 빨간 단풍이 들었네요.

바다에 빨갛게 불이 났군요.

그러나

119 소방차 부르면 절대 안 돼요.

우리 그냥

한없이 불구경하기로 해요.

꽃 찾아 산을 오르고, 계곡을 헤매고, 들로 나가고, 강에도 가도, 물속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바닷가에도 갔습니다. 가서 바닷가 벼랑 위에 핀 둥근바위솔도 만나고 해국도 보았습니다.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톱에 핀 갯봄맞이도 만났습니다. 그러나 정작 바다에 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 한가운데 핀 꽃들은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가을날 단풍보다 더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물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야말로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외마디 탄성이 절로 나오더군요.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호에 고창 선운사와 함평 용천사, 영광 불갑사에서 열린 진홍의 꽃무릇 축제를 소개하면서 가을이 가기 전 그 장관을 놓치지 말라고 했는데, 서·남해안 갯벌을 커다랗게 수놓는 해홍나물의 붉은 단풍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가을의 축복이라 말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습니다.

갯벌은 오랫동안 간척과 매립 등 개발의 대상이었으나, 최근 들어 다양한 생물의 보물창고요 자연재해를 막는 스펀지, 바다와 지구를 지키는 허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서·남해안에는 작지 않은 규모와 양질의 갯벌이 남아, 바닷물의 소금기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염생식물(鹽生植物)들이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바다의 붉은 나물이라는 뜻의 해홍(海紅)나물, 그리고 해홍나물의 사촌이라 일컬을 만큼 잎이나 줄기 등 전초가 매우 유사한 칠면초와 나문재, 방석나물, 퉁퉁마디, 수송나물 등이 그것입니다. 특히 연두색 싹이 자라서 짙은 자주색으로 변하는 가을까지 이파리 등 전초의 색이 일곱 차례나 변한다고 해서, 아니 꼭 일곱 차례는 아니어도 칠면조(七面鳥)처럼 여러 번 바뀐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은 칠면초나 해홍나물은 가을이 되면 거대한 군락이 끝없이 펼쳐져, 드나드는 바닷물마저 물들일 듯 붉게붉게 타오릅니다. 물론 우리 눈에 들어오는 붉은색은 식별도 되지 않을 만큼 자잘하게 피는 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줄기와 잎 등 식물체 전체가 단풍이 들듯 변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참, 지난해 가을 필자의 블로그에 해홍나물과 칠면초가 뒤섞인 군락이 붉게 물들어가는 서해 작은 섬의 정경을 올리자 ‘내사랑’이란 아이디를 가진 이가 사진보다 멋진 댓글을 달았기에 글 앞머리에 인용, 소개했습니다.

▲해홍나물(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해홍나물(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Where is it?

서울에서 가까운 강화도에서 전남 순천만에 이르기까지 서·남해 바닷가에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갯벌(또는 개펄)이 모두 해홍나물과 칠면초 등 염생식물의 자생지다. 명아주과 나문재속 한해살이풀인 해홍나물과 칠면초는 같은 갯벌에 섞여 자라기도 하는데, 해홍나물이 칠면초보다 키도 크고 잎도 긴 편이다. 해홍나물 군락지는 2017년 6월 석모대교 개통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서울에서도 닿을 수 있는 석모도 해안(사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강화도 선두리 포구나 영종도 공항 가는 길에 있는 운염도에서도 나문재, 칠면초와 함께 볼 수 있다. 전남 순천만은 대규모 칠면초 군락을 만날 수 있는 갯벌로 이름이 높다. 전남 신안 증도의 소금 생산지인 태평염전도 칠면초 사진 촬영지로 인기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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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버드나무 2018.10.17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색의 빨간 물감 풀어 놓은 거 같아요
    장관이네요~!

  2. 2018.10.17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내사랑 2018.10.18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사랑입니다
    소소한 댓글을
    작가님의 작품에 함께해 주심에
    가문의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ㅎㅎ

    바다 갯벌도 때가되니
    붉디붉은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과도 같은
    아름다웠던 지난해의 모습 그대로
    또 보여주는군요

    그러니
    이 갯벌
    아픈 상처 주지않는다면
    아름다운 불구경
    변함없이 보여주겠지요?

    우리 상처주지 말아요
    우린 변함없이 보고 싶잖아요
    그쵸?

    작가님의
    설명이 담긴 모습 보고나니
    언젠가 제가 본
    순천만의 모습이 그립군요

    감사합니다

    • atom77 2018.10.19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내사랑님/ 멋진 댓글로 블로그를 빛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지요/ 언젠가 순천만 칠면초 군락을 만나야 겠습니다~

바위구절초·산용담 만개하고 들쭉 열매 익어가는, 가을 백두산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8월 30일>

백두평원 짙푸른 숲속에 핀 유령란. 학명은 Epipogium aphyllum 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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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란(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수은주가 40℃까지 치솟는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2018년 8월 4일부터 5박 6일간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그 일대를 다녀왔습니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백두산 탐방의 목적은 단 하나. 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 등에 등재된 엄연한 ‘우리 꽃’이지만 자생지인 북한 지역에는 갈 수가 없어 만나지 못하는 야생화들을,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마지막 안식처라고 하는 백두산에서라도 그 실체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언젠가 북녘 땅에 직접 가서 반갑게 만나야 할 우리 꽃을 마음에 담아놓고 기억하는 것이,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백두산에서 가장 가깝다는 연길(延吉)공항 기온은 서울보다는 다소 낮았지만 역시 36℃ 정도여서 뜨거운 열기가 한반도에 못지않았습니다. 도심을 벗어나자 곧 들녘에 노란색 마타리가 줄지어 핀 게 우리 산이나 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으로 한 발 들어서자 ‘북부 지방에 다소 생산되나 중·남부 지방에서는 별로 볼 수 없다’는 방풍과 ‘서흥(황해도), 회령(함경도) 및 경성(함경도) 근처에서 자란다’는 실쑥을 비롯해 원지, 절국대, 금혼초, 좁은잎사위질빵, 황금 등 남한에서는 멸종됐거나 드물게 자라는 북방계 식물들이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동행한 탐사대원들이 처음 대면하는 우리 꽃에 환호성을 지릅니다.

▲2017년 7월 맑은 날, 백두산 천지의 모습.(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2017년 7월 맑은 날, 백두산 천지의 모습.(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날이 바뀌어 백두산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서울과 진배없던 날씨가 서서히 바뀌더니 먹구름이 끼고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새벽녘부터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 백두산 정상까지의 셔틀버스 운행은 끊겼다는 소식. 일단 중간 지점인 왕지(王池)까지 가서 주변을 돌아보며 추이를 보기로 합니다. 해발 1400m 지점인 왕지 일대에는 참취와 민박쥐나물, 도깨비엉겅퀴, 분홍바늘꽃, 조밥나물, 각시취, 그리고 여러 종의 산형과 식물 등이 가득 피어나 ‘야생화 초원’이란 명성을 뽐냅니다. 서너 시간을 보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후 2시, 악천후로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다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대신 다음 날 새벽 2시 재도전을 약속합니다.

“아무리 일기가 불순한 고산이라 해도 설마 한여름에 1박 2일간이나 비가 오겠느냐”고 큰소리쳤지만, 잠을 설치며 애태운 보람도 없이 다음 날에도 빗줄기는 긋질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탐사대를 태운 차량이 일단 정상 바로 밑까지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새벽 3시 20분,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1432개 계단을 올라 2750m 서(西)백두 정상에 섭니다. 비는 쏟아졌지만 서서히 날은 밝아, 최정상 능선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흰색과 연한 분홍색을 띤 바위구절초 행렬입니다. 그 곁에 실타래 모양의 흰 꽃을 곧추세운 산오이풀의 풀빛 군락이 펼쳐집니다.

‘단 5분만이라도 열렸으면….’ 오전 6시 무렵까지 2시간 반 넘게 빗속에서 기다렸으나 끝내 안개는 걷히지 않습니다. 내려오는 길 계단 옆에 산용담이 서너 송이 보이더니, 9부 능선 아래로 내려서자 가파른 초지에 삐죽삐죽 돋아난 산용담의 미색 꽃봉오리와 비로용담의 보랏빛 꽃봉오리가 빼곡합니다. 그 곁에 검게 익어가는 들쭉나무 열매와 꽃이 진 두메분취, 돌꽃, 가지돌꽃, 구름범의귀, 좀참꽃 등이 나란히 엎드려 백두산에는 8월 초순 이미 가을이 닥쳤고, 눈이 펄펄 쏟아져 켜켜이 쌓이는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려줍니다.

▲백두산 정상 2750m 능선에 핀 바위구절초. 뒤로 보이는 안개 너머로 가파른 경사면이 이어지고 그 밑에 천지가 펼쳐진다.(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백두산 정상 2750m 능선에 핀 바위구절초. 뒤로 보이는 안개 너머로 가파른 경사면이 이어지고 그 밑에 천지가 펼쳐진다.(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바위구절초를 에워싼 안개 너머 짙푸른 천지를 보지 못한 그 큰 아쉬움은 유령란과 쌍잎난초, 큰송이풀, 대송이풀, 왕별꽃, 실별꽃 등 남한에서는 만날 수 없는 북방계 식물들이 있어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특히 ‘부전고원에서부터 백두산 지역까지 북부 지역 침엽수림 밑에서 자란다’는 유령란은 만나기도 어렵고 개화기를 맞추기도 쉽지 않다는데, 만개한 개체를 여럿 만났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리처드 포티가 “낯선 환영을 본 것처럼 전율이 일었다”고 말한 바 있듯,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유령처럼 사라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말입니다. 콩팥 모양의 잎을 마주 단 쌍잎난초 또한 백두산 지역 침엽수림에서만 자란다는데, 다행히 스러지기 직전의 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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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20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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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땡볕 즐기는 ‘물의 요정(妖精)’ 각시수련!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7월 27일>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무쇠도 녹일 듯 찌는 삼복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피어나는 ‘여름 야생화’를 보면서, 미국의 한 심장 전문의가 스트레스 해소 방안의 하나로 처음 썼다는 명언을 새삼 떠올립니다. 7월호에 소개한 해오라비난초를 비롯해 남덕유산 능선의 분홍색 솔나리, 가야산 정상의 백리향, 선자령 숲속에서 피는 붉은색의 제비동자꽃, 그리고 전국 각지의 오래된 연못에서 드물게 만나는 가시연꽃 등등.

그런데 ‘피할 수 없어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염천(炎天)의 뙤약볕을 천혜의 선물인 양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햇살이 가장 강렬하게 내리쬐는 바로 그 시간대에만 꽃잎을 활짝 열고 더없이 맑고 환한 얼굴을 세상에 내비치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꽃은 물론 이파리 등 전초(全草)가 깜찍하다고 할 만큼 작고 예쁜 각시수련입니다.

식물명에 수련(睡蓮)이란 한자가 들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잠자는 연꽃’의 일종인데, 그냥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잠자는 모습을 행여 남들이 볼세라 수면시간에는 어여쁜 얼굴을 닫고 아예 자취를 감춰, 먼 길 마다치 않고 찾아온 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합니다. 필자 또한 처음 각시수련을 만나던 날 크게 당황했습니다. 남한 내 유일한 자생지로 알려진 강원도의 오래된 못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분명히 피어 있을 것이라고 전해 들은 각시수련이 단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꽃의 지름이 2~3cm에 불과할 만큼 작아, 못 한가운데 필 경우 멀리서 보면 잘 분간이 안 될 수 있다지만, 그 어떤 피부미인 못지않게 도드라진 순백의 꽃을 ‘천하의 꽃쟁이’가 못 알아보겠느냐 장담했건만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답답해하던 중 자생지를 일러준 꽃 친구의 말이 생각나 무릎을 쳤습니다.

“대개 점심을 먹고 찾아가서 봤다. 아침나절에 가면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아예 볼 수 없다. 보통 낮 1시는 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그렇습니다. ‘미인은 잠꾸러기’란 말이 있듯 오전엔 어김없이 물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수온이 오르고 수은주가 치솟는 대낮이 돼야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 청초한 꽃송이를 하나둘 물 위에 펼치고 유유자적 여름 뙤약볕을 즐기는 것이지요. 정확하게 낮 1시 15분부터 각시수련의 깜짝 등장을 지켜보면서, 학명 중 속명 님파이아(nymphaea)가 그리스 신화 속 ‘요정(妖精)’ 님프(nymph)에서 따왔다더니 과연 ‘물의 요정’이라 할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애기수련이라고도 불리는 각시수련은 말발굽 모양의 타원형 잎을 물 위에 띄우고 사는 부엽식물(浮葉植物)의 일종입니다. 보통 6월에서 8월까지 한여름에 꽃을 피운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9월 하순에도 싱싱한 꽃을 만날 수 있으니 개화 기간이 알려진 것보다 더 길다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낮이면 꽃잎을 열고 저녁이면 다시 닫는데, 단순히 꽃잎을 여닫는 게 아니라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기를 3~4일 반복한 뒤 열매를 맺고 아예 수면 아래로 잠기면 다시 새로운 꽃이 피는 식으로 서너 달을 지속한다고 합니다.


Where is it?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각시수련,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각시수련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희귀한 특산식물이다. 처음 발견된 곳은 왕래가 끊긴 지 하도 오래돼서 이름도 생소한 황해도 장산곶 몽금포라는 곳인데,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도감은 황해도 장산곶 또는 황해도 몽금포를 대표적인 자생지로 표기하고 있다. 갈 수 없는 몽금포 이외에 알려진 자생지로는 강원도 고성의 오래된 작은 연못인 천진호가 거의 유일하다. 백두산 주변 습지에도 비슷한 종이 자생하는데, 만주수련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환경부는 고성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전형적인 북방계 수생식물인 각시수련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할수록 멸종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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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라도 보고 싶다’, 해오라비난초!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7월호>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abenaria radiata (Thunb.) Spreng.

▲해오라비난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해오라비난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다.”

열애에 빠진 젊은이들이 막 헤어진 연인을 돌아서자마자 보고 싶다고 할 때, 또는 반백의 불효자가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부모를 뒤늦은 후회와 함께 애타게 그리워할 때, 또는 어느새 망백(望百)의 나이가 된 이산가족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죽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쏟을 때나 쓸 법한 간절한 염원을 꽃말로 가진 야생화가 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7월 불볕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습지에서 불화살처럼 뜨겁고 강렬한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순백의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키는 15~40cm로 그렇게 작지는 않지만 녹색의 줄기마다 3~6장씩 달리는, 너비 3~6mm 길이 5~6cm의 잎 등 전초가 그렇게 풍성한 편은 아니어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데 반해, 줄기 끝에 1~3개씩 달리는 흰색 꽃만큼은 누구나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독창적인 관상미를 뽐냅니다.

“하~ 알 수 없는 조화로다.” 몇 해 전 처음 해오라비난초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 전에 담은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올리니 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분명 카메라에 꽃을 담아왔는데, 꽃은 온데간데없고 명품 고려청자에 새겨진 학을 닮은 새들이 흰색 날개를 활짝 펴고 우아하게 춤을 추니 ‘알 수 없는 조화’라고 혼잣말을 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길이 3cm의 꽃은 2개의 곁 꽃잎과 하나의 입술 꽃잎으로 이뤄졌는데, 특히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입술 꽃잎이 좌우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하는 백로(白鷺)를 연상케 하며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낳습니다. 그리고 새를 닮은 꽃의 형태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바로 해오라비난초라는 이름이 유래한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해오라비’는 백로와 같은 왜가릿과의 새인 해오라기의 경상도 사투리로, 해오라비난초란 해오라기난초의 오기로 봐야 한다는 것. 그런데 해오라비를 해오라기의 지방 사투리로 인정한다 해도, 해오라기는 머리와 등이 검고 통통한 게 순백의 해오라비난초 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온몸이 희고 날렵한 ‘백로난초’라는 이름이 더 적확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튼, 중·남부 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한여름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는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야생 난초 중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관상미가 뛰어납니다. 다만 자생지가 불과 몇몇 곳에 불과한 희귀종인 데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숱한 이들이 찾아 순식간에 자생지가 파괴되기 일쑤여서, 각별한 보호 대책이 요구됩니다. 실제 몇 해 전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줄지어 찾았던 자생지를 그다음 해 찾아갔다가 단 한 송이의 꽃도 보지 못했습니다.

발길을 돌리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꽃말처럼 꿈속에서나 만나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만 분포하는데, 중국에는 자생지가 단 한 곳밖에 없고, 비교적 개체 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위기를 맞는 등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가 단위 멸종위기종 A급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해오라비난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해오라비난초(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Where is it?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 중인 해오라비난초는 경기도·강원도·경상남북도에 최대 200개 개체가 자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몇 해 전 수원 칠보산의 한 습지에서 꽤 여러 개체가 꽃을 피웠으나, 이후 크게 줄어들자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보호 철망(사진)을 두르기도 했다. 인근의 또 다른 자생지에선 수년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야생에서 보기 어렵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광릉 국립수목원 등 여러 식물원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경남 합천군에선 몇 해 전 해오라비난초에 비해 개체가 크고 꽃이 많이 달리는 큰해오라비난초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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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계절 하늘이 내린 축복, 복주머니란!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5월호>

▲복주머니란.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멸종위기종 2급. 학명은 Cypripedium macranthos Swartz(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복주머니란.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멸종위기종 2급. 학명은 Cypripedium macranthos Swartz(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파릇파릇 돋아나 꽃보다 더 예뻤던 새순들이 아스라한 연두색으로 빛나더니 어느덧 짙은 초록으로 무르익어갑니다. 5월 인적이 드문 신록의 숲에서 산객 혼자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호젓한 오솔길을 걷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귀한 꽃 한 송이 만나길 빌었습니다. 복주머니란 한 송이 만나는 큰 운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때 필요한 건, 오복(五福)을 내리는 다섯 송이도 아니고, 만복을 기원하는 열 송이, 수십 송이도 아닌 단 한 송이의 개불알꽃이면 족할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바람에 하늘이 답한 것일까. 일당백(一當百) 기상으로, 저 홀로 핀 단 한 송이 복주머니란을 만났습니다. 한참 동안 만났습니다. 산그늘에 잠겼던 복주머니란에 석양빛이 들어올 때까지 홀로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숲이 아직은 건강하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때의 감격이 참 오래가더군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야생의 꽃 한 송이에 무에 그리 호들갑을 떨까 의아하겠지만, 복주머니란의 매력을 알면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우선 화려함이 국내에서 자생하는 그 어떤 야생화에 비해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유난스럽습니다. 나무가 아닌 풀꽃인데도 큰 것은 50cm에 이를 만큼 키가 껑충한 데다 꽃 색도 붉어 초록의 풀밭 사이에 한 송이만 피어 있어도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긋나기로 달리는 3~5개의 타원형 잎도 너비 6~8㎝에 길이가 10~20㎝로 시원스럽습니다. 특히 홍자색 꽃은 곁꽃잎 2개과 입술꽃잎(순판·脣瓣) 1개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인데, 주머니 또는 항아리 모양의 크기 4~6cm의 입술꽃잎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기 그 이름이 달라집니다. 우선 학명 중 속명 시프리페디움(Cypripedium)은 ‘비너스’를 의미하는 시프리스(cypris)와 ‘슬리퍼’라는 뜻의 페딜론(pedilon)의 합성어인데, 항아리 모양의 입술꽃잎이 마치 미의 여신 비너스가 신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신발처럼 생겼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영어 이름도 ‘숙녀의 슬리퍼’(Lady´s slipper)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조들은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진 입술꽃잎을 보고 굳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아하 맞다’ 하고 고개를 끄떡일 만한 다른 이름을 지었습니다. 바로 개불알꽃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 현대적 식물분류학에 따라 처음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 올라 있는 명칭입니다. 이외에도 요강꽃, 까치오줌통, 오종개꽃, 작란화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식물명을 정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는 1996년 입술꽃잎의 모양이 전통 복주머니를 닮은 데 착안해 복주머니란으로 통일했습니다. 이에 단번에 식물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옛 이름을 민망하거나 망측하다고 해서 ‘우아한 이름’으로 바꾸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복주머니란.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멸종위기종 2급. 학명은 Cypripedium macranthos Swartz(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원본보기
▲복주머니란.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멸종위기종 2급. 학명은 Cypripedium macranthos Swartz(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Where is it?

각종 도감에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야생에서 자생하는 복주머니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색이나 모양이 화려하고 예쁜 탓에 보이는 대로 남획당해 자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뜻인데 결국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 즉 특별한 보호관리 대상으로 지정됐다. 때문에 다소 거북하긴 해도 만개한 꽃의 특성을 가장 설명하는 개불알꽃이니 요강꽃이니 하는 원래 이름을 복주머니란이라고 바꿔 부른 뒤 ‘복’에 환장한 손을 타는 수난을 겪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옛날, 이름이 예쁘면 저승사자가 일찍 데려간다는 속설이 있어 귀한 집 자손일수록 개똥이니 쇠똥이니 하는 천한 이름을 붙였는데, 일례로 고종 황제도 아기 때는 ‘개똥이’로 불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어쨌든 볕이 좋은 5월 중순 태백산과 지리산, 소백산, 보현산 등 한라산을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 중턱쯤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강원도 태백의 두문동재~금대봉~분주령~대덕산 코스가 운이 좋으면 그런대로 자연 상태의 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생지로 꼽힌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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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봄날의 꿈같은 꽃, 깽깽이풀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4월호>

▲깽깽이풀,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깽깽이풀,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4월, 불가역적인 봄입니다. 춘삼월(春三月)이라 하지만 심술궂은 꽃샘추위로 간간이 옷깃을 여미고 어깨를 움츠려야 했던 3월과 달리, 이제부터는 오로지 화창한 봄입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노랑나비가 살랑살랑 춤추며 날아다니는 봄. 어질어질하고 아찔한, 그런 봄날의 몽환적 분위기를 쏙 빼닮은 야생화가 있습니다. 봄이 농익어가는 4월부터 5월 사이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깽깽이풀입니다.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에서 자랍니다. 잎이 나기 전, 6~8개의 꽃잎이 지름 2cm가량의 원을 그리며 피는 꽃은 단번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입니다. 민가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는 데다 관상미가 높은 까닭에 남획과 자생지 훼손이 심해 한동안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됐다가 몇 해 전에야 해제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깽깽이풀,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깽깽이풀,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한두 송이가 각기 떨어져 피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송이가 뭉쳐서 여기에 한 무더기, 저기에 한 무더기 피는데, 바로 그런 특성에 깽깽이풀이란 이름의 유래와 번식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즉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에서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깽깽이걸음을 떠올리고 깽깽이풀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설이지요.

그런데 깽깽이풀이 이처럼 듬성듬성 자라게 된 데에는, 당분이 함유된 깽깽이풀의 씨앗을 개미들이 좋아해 개미집으로 운반해가는 도중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떨어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분산 발아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4월 농부들이 만개한 이 꽃을 보면 ‘깽깽이(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춰 부르는 말)’ 켜며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늘하늘한 꽃이 예쁘기 그지없지만, 활짝 핀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화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꽃잎을 아예 열지 않습니다. 게다가 길이 20~30cm의 꽃대 끝에 하나씩 달리는 꽃은 매우 연약해 바람이 조금만 심하게 불거나, 빗줄기가 강하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꽃이 진 뒤 나는 잎이 꽃 못지않게 귀여워 그 또한 충분히 볼만합니다. 줄기 없이 뿌리에서 바로 나오는 잎은 적갈색에서 점차 녹색으로 변합니다. 물결 모양의 가장자리나 물에 젖지 않고 딱딱한 형태가 연잎을 많이 닮았는데, 이로 인해 아예 황련(黃蓮) 또는 조황련(朝黃蓮)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Where is it?

▲깽깽이풀,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깽깽이풀, 매자나무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Jeffersonia dubia (Maxim.) Benth. & Hook.f. ex Baker & S.Moore(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깽깽이풀도 없는데 뭐하러 와요?” 몇 해 전 제주의 ‘꽃동무’에게 4월에 방문하겠다고 하자 돌아온 답이다. 남한 최고의 산인 한라산이 있어 ‘없는 야생화가 없는’ 제주도이지만, 4월의 야생화로 손꼽을 깽깽이풀만은 자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제주도와 남해 도서지방을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한다. 그중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자생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 주변, 대구 달성군 본리리 야산, 강원 홍천군 방내리 야산 등지다. 멸종위기종으로 관리하는 동안 인위적인 증식이 많이 이뤄져 전국 각지의 웬만한 식물원·수목원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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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의 천국, 풍도(豊島)

춘풍에 풍도바람꽃 방긋 웃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3월호>

▲변산바람꽃, 미나리아재빗과 너도바람꽃속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Eranthis pungdoensis B.U. Oh.원본보기
▲변산바람꽃, 미나리아재빗과 너도바람꽃속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Eranthis pungdoensis B.U. Oh.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그렇습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춘삼월 다시 돌아오니 산에 들에 또다시 바람이 붑니다. 처녀, 총각 가슴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그 봄바람 따라 봄 야생화들이 다시 또 피어납니다. 복수초, 노루귀, 제비꽃, 변산바람꽃, 중의무릇, 현호색, 양지꽃, 개별꽃, 광대나물 등등. 그런데 이런 봄꽃이 한두 송이가 아니라 수백, 수천 송이씩 떼로 피어 온통 꽃밭이 되는 보물섬이 있습니다. 야생화 애호가들은 그곳을 꽤 오랫동안 제 지명이 아닌, 보통명사 ‘서해 꽃 섬’으로 불러왔습니다. 가능한 한 이름을 감춤으로써 찾는 발걸음을 줄여, 야생화 자생지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선의가 담긴 고육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 비밀의 정원은 소문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소개되면서 국내 최고의 야생화 자생지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산시 단원구 풍도가 바로 그곳입니다. 풍도의 야생화 탐사는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비탈면에 형성된 마을 뒤 해발 177m의 후망산을 오르면서 시작됩니다. 배를 타고 풍도까지 가는 동안 과연 꽃이 피었을까 의심하던 조바심은 후망산 오르막 길섶에서 광대나물과 개별꽃, 개지치 등 작은 풀꽃들이 하나둘 깨알 같은 꽃봉오리를 연 걸 보며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을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면 곧바로 복수초가 건배라도 하듯 황금 잔을 여럿 모은 채 길손을 맞이합니다. 봉인 해제된 비밀문서의 페이지마다 은밀한 정보가 가득하듯 후망산 오솔길마다, 산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귀한 봄 야생화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원래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 했으나, 1894년 청일전쟁의 시발이자 일본이 청나라 함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둔 ‘풍도해전(豊島海戰)’을 기념하기 위해 섬을 불법 점거한 일본이 ‘풍도(豊島)’로 고쳐 불렀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봄이면 섬 전체가 야생화 군락지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이 풍성하게 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없는 고유종도 2개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종전에 변산바람꽃으로 구별 없이 불리다 깔때기 모양의 꽃이 크고 형태가 다소 다르다는 이유로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분류된 데 이어 ‘풍도바람꽃’이란 별도의 국명으로 등재된 게 그 하나요, 붉은대극과 유사하지만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한다고 해서 ‘풍도대극’이라 불리는 게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들의 별도 국명과 관련, 미세한 차이를 내세워 새로운 종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봄바람 부는 3월 내내 풍도에는 이들 외에도, 샛노란 복수초와 분홍·보라·흰색의 노루귀, 순백의 꿩의바람꽃 등 색색의 야생화가 곳곳에서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화사하고 아찔한 색의 향연을 펼칩니다. 그럼에도 현지 주민 및 야생화 동호인은 “5~6년 전만 해도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종의 야생화가 섬 전체에서 지천으로 피어났었다”면서 “해마다 야생화 군락이 크게 줄고 있어 안타깝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특정 기간 야생화 자생지의 출입을 금지키로 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 Where is it?

▲야생화 탐사를 위해 전세 낸 낚싯배에서 바라본 풍도(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야생화 탐사를 위해 전세 낸 낚싯배에서 바라본 풍도.)원본보기
▲야생화 탐사를 위해 전세 낸 낚싯배에서 바라본 풍도(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야생화 탐사를 위해 전세 낸 낚싯배에서 바라본 풍도.)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풍도는 섬 둘레 5.4㎞, 전체 면적 1.84k㎡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현재 6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평상시 섬을 드나드는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하루 1회 여객선이 왕복 운항할 뿐이다. 오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난 여객선은 대부도 방아머리항을 거쳐 풍도에 닿았다가 당일 곧바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야생화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최소한 1박을 해야 한다. 다만 3월이면 야생화를 찾는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단원구 탄도항이나 당진의 도비도항, 서산 삼길포항 등지에서 단체로 낚싯배 등을 빌려 아침 일찍 섬에 들어 한나절 돌아본 뒤 오후에 되돌아 나오곤 한다.

<(http://bravo.etoday.co.kr(브라보 마이라이프) 2018년 3월호>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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