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벌판을 연분홍으로 물들이는, 분홍바늘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1.09>

바늘꽃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Epilobium angustifolium L.

차창 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칩니다. 철커덕거리며 열차가 달리는 선로를 제외한 벌판에는 이미 눈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겨울의 그 열차는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려온 ‘동토(凍土)의 왕국’을 달리는 설국열차(雪國列車)임에 틀림없지만, 한여름에는 이제껏 보지 못한 천상(天上)의 화원(花原)을 달리는 꿈의 열차로 일대 변신하며 야생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시베리아 평원, 그곳은 그저 먼 나라의 낯선 땅이 아니라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한 본향(本鄕)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바이칼 호숫가에 분홍바늘꽃이 활짝 피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가깝게는 만 년 전,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바로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의 북방계 식물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한반도로 내려와 뿌리를 내렸다는 게 식물학계의 정설입니다. 실제 2015년 7월 시베리아 평원에서, 남한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좁은잎해란초와 자주방가지똥을 비롯해 기생꽃, 분홍노루발, 달구지풀, 닻꽃, 린네풀 등 희귀 북방계 식물들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자작나무 사이, 그곳은 분홍바늘꽃과 솔나물, 터리풀 등 각종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의 화원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매 순간이 한 폭의 수채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길. 끝없이 이어지는 그 철로 변에 ‘백색 피부 미인’ 자작나무가 호위무사처럼 늘어선 가운데, 철로와 자작나무 사이 구간에 분홍바늘꽃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꽃물결을 이룹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횡단열차가 밤새 어둠을 달려 시베리아 벌판에서 첫 여명을 맞을 즈음 차창에선 이미 분홍바늘꽃의 꽃물결이 넘실대기 시작합니다.

흰색의 암술머리가 4갈래로 갈라진 분홍바늘꽃. 키가 1.5m 안팎으로 큰 데다 연분홍 꽃색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꽃이 진 자리에는 바늘처럼 가늘고 긴 씨방이 줄줄이 맺었다.

국내의 경우 강원도 두타산이 남방한계선으로 함백산, 선자령, 복주산 등 몇몇 지역에서 수십에서 수백 포기 정도 자생하는 게 전부인 분홍바늘꽃이 철로와 자작나무 숲 사이 풀밭에 간단없이 피어 시베리아 횡단 내내 연분홍 바다를 일구었습니다. 특히 횡단열차가 바다처럼 넓은 바이칼 호에 다가섰다 멀어졌다 반복하는 사이 동이 트면서 새벽 햇살을 받은 분홍바늘꽃이 바이칼의 푸른 물결을 배경으로 출렁이는 광경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최고의 장관이었습니다.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한 안가라 강변에 핀 분홍바늘꽃.

꽃이 진 뒤 맺는 씨방이 바늘처럼 길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바늘꽃. 국내에는 바늘꽃, 호바늘꽃, 돌바늘꽃, 회령바늘꽃, 줄바늘꽃, 큰바늘꽃, 명천바늘꽃, 버들바늘꽃, 좀바늘꽃, 넓은잎바늘꽃 등 모두 11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 분홍바늘꽃과 큰바늘꽃은 키도 1.5m 안팎으로 크고 꽃색도 화사한 분홍색으로 단연 도드라집니다. 암술머리가 4갈래로 갈라지는 것도 같은데, 둘 다 북방계 식물로 남한 내 자생지가 극히 제한적이란 점도 비슷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고, 분홍바늘꽃 등 북방계 야생화가 만개한 시베리아 평원을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분홍바늘꽃은 시베리아 등 본향에서는 흔하지만, 분포의 남방한계선인 남한에서는 자생지도, 개체 수도 적어 작은 환경 변화 시 멸종될 위험성이 높은 종으로 꼽힙니다. 해서 지금은 해제되었지만 1998년까지만 해도 환경부가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 보호했었습니다. 큰바늘꽃은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1.09>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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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평원에 흰 눈 쌓이듯 피는, 노랑만병초

진달래과의 늘 푸른 활엽관목, 학명은 Rhododendron aureum Geor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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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만병초(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9월이면 겨울이 시작돼 산 정상에 늘 흰 눈이 쌓여 있어 ‘흰머리산’이라는 뜻의 백두산(白頭山)으로 불리는 산. 그곳에도 6월이면 새싹이 움트는 봄이 시작돼 8월까지 여름·가을이 한꺼번에 밀어닥칩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여 종에 이르는 북방계 야생화들이 앞을 다퉈 피어나면서 수목한계선 위쪽 고산 툰드라 지대는 천상의 화원(花園)으로 변모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향해 삐죽빼죽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 사이사이 음지 곳곳에 잔설(殘雪)로 남은 만년설(萬年雪)과는 차원이 다른, 제3의 흰색 벌판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옵니다. 한여름 백두 평원 곳곳이 여전히 흰 눈을 뒤집어쓴 듯이 하얗게 빛이 납니다. 관목과 초본·이끼류·지의류가 잔디밭처럼 드넓은 평원을 이루는 백두산 툰드라 지대를 하얗게 수놓는 꽃, 바로 노랑만병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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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만병초(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백두 평원서 함께 자라는 장지석남과 월귤, 홍월귤, 들쭉나무, 가솔송 등이 수줍음을 타는 소녀처럼 이파리 뒤로 몸을 숨긴 채 손톱만 한 꽃을 겨우겨우 피워낸다면 노랑만병초는 ‘올해도 어김없이 깨어났노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듯 어른 손바닥만 한 꽃잎을 활짝 펼쳐 보입니다. 풀 ‘초(草)’를 이름 뒤에 달았지만, 엄연히 나무인 노랑만병초는 월귤 등 다른 키 작은 나무들과 마찬가지로 백두산 수목한계선 위 고산 툰드라 지대에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북방계 관목입니다. 남한에서는 1963년 설악산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은 뒤 잊혔다가 40여 년 만인 2007년 설악산 정상에서 다시 발견돼 현재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개체 수가 600여 그루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희귀할 뿐 아니라 털진달래 등 다른 관목의 위세에 눌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란만병초(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원본보기
▲노란만병초(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해발 2750m인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노랑만병초는 6~8월 끝없이 펼쳐지는 고산 평원 여기저기에 축구장 크기만 한 꽃 무더기를 피워낼 정도로 규모가 방대합니다. 꽃 색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한낮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꽃 더미는 한겨울의 설원을 보듯 장관입니다.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국생종)에 따르면 높이 1m까지 자란다고 돼 있는데, 실제 백두산에서 만난 노랑만병초는 30~50cm 정도로 어른 무릎에도 못 미칠 만큼 키가 작았습니다. 국생종은 또 흰색 꽃이 피는 만병초, 진한 홍색 꽃이 피는 홍만병초가 따로 있으며 둘 다 키가 노랑만병초의 4배인 4m까지 자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두 평원에서는 노랑만병초와 뒤섞여 있는 백색과 홍색의 만병초 꽃을 여기저기서 함께 만났는데, 그 키는 노랑만병초와 다름없이 30~50c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처럼 백두산의 추위와 바람 때문에 만병초나 홍만병초의 키가 작아진 것인지, 아니면 같은 노랑만병초의 변색일지 추후 확인하고 연구할 과제라 생각합니다.

(2017년 1월호 브라보마이라이프 bravo@etoday.co.kr)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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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moon 2017.01.09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두산 노랑만병초 군락이 장관이네요.
    국내 수목원에서 다른 색의 만병초를 본적이 있는데요
    수목원에서 특별히 관리를 잘해서겠지요.
    백두산 야생화들은 사진으로 봐도 참 이쁜것 같아요 ^^

    • atom77 2017.01.11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백두평원서 만나는 노랑만병초 군락. 한마디로 장관입니다/모두가 마음 놓고 만날 수 있는 날이 어서 와야 하는데...,

지난해 12월 중순 울산의 명소인 대왕암공원과 슬기등대를 처음 가보았습니다.

그곳 역시 한겨울임에도 묵은 꽃인 해국과 둥근바위솔이 채 지지 않고 피어있는가 하면,

제주도 및 남부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팔손이가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등 

서울과 경기 강원 등 중부 지방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군요.

해국과 둥근바위솔이 한창 만개했을 때 찾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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