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여 만에 가벼운 차림으로 앞동산에 산책을 나섰습니다.

제법 숲이 무성하니 "뱀이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등산화도 안 신고 스틱도 가져오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밭 앞에서 무언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죽어라, 내달립니다. 

장끼입니다. 동시에 엄지손가락만 한 새끼 대여섯 마리가 날지도 못한 채 사방으로 내뺍니다. 

다음 날 조금 높은 뒷동산에 올랐더니 이번엔 산토끼가 촐랑대며 좌우로 달려가고, 

노루가 껑충껑충 뜀을 뛰며 사라집니다(눈엔 분명 노루로 보였는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더욱 흔한 고라니였을지도 모릅니다)   

꿩이 새끼를 낳고 갈색의 산토끼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 놀라 몸을 숨기고, 대낮 노루가 눈에 띄는 곳을 

유유히 산책하는데, 이번에 산발한 늙은이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봉두난발이기에 노파인가 노부인가 살피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갈색의 총포가 유별나게 눈에 띕니다.

뻐꾹채입니다.

絶頂(절정)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 키가 점점 消耗(소모)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화문)처럼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함경도) 끝과 맞서는데서 뻑국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八月(8) 한철엔 흩어진 星辰(성진)처럼 爛漫(난만)하다/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렇지 않아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정지용의 시 백록담에서’).

70여 년 전 시인이 한라산을 오르면서 본 뻑국채와 내가 앞동산에서 본 뻐꾹채가 같은 것일까? 

갑자기 엉뚱한 궁금증이 고개를 듭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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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한가운데 핀 북방계 습지식물, 조름나물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15>

조름나물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 Menyanthes trifoliata L.

강원도 태백의 첩첩산중에 있는 작은 못을 찾아가던 지난 5월 2일. 서울 인근에선 이미 진 산 벚꽃이 뭉게구름처럼 이 산 저 산 중턱에 걸려있고, 태백시로 접어드는 도로의 벚나무 가로수에도 아직 하얀 꽃이 남아있어 서울과의 지리적, 그리고 시간적 거리를 실감케 합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고 돌아 길을 재촉하자 낙동강과 한강, 그리고 오십천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삼수령(三水嶺)이란 이정표가 나옵니다. 얼마간 더 나가자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며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어놓고 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고개 건의령(巾衣嶺)이 앞을 막아섭니다. 차를 멈춰 세우고 주변을 살피자 첩첩으로 둘린 산 중턱에 놀랍게도 200평 남짓한 물웅덩이가 보이고, 그 한가운데 밝고 하얀 꽃을 한 아름 달고선 조름나물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눈처럼 맑고 눈처럼 깨끗한 조름나물의 하얀 꽃.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눈 결정체를 똑 닮은 듯 보석처럼 빛이 난다.

조름나물은 세계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의 고위도 습지에서 자라는 정수성(淨水性) 수생식물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몽골, 러시아, 네팔, 카슈미르 등지에 분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생지는 평북과 함경도 등 북한 지역을 제외하면, 강원도 대암산 용늪과 고성의 석호(潟湖) 2곳, 태백의 못, 그리고 경북 울진의 연호 등 몇몇 습지에 국한되어 있어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 첩첩산중의 작은 물웅덩이에 가득 들어찬 조름나물 군락. 깊은 산 중턱에 발이 푹 잠길 깊이의 못이 있는 것도 의외인데, 그 안에 희귀 북방계 습지식물이 자생하니 놀랍고 반갑다.

 중국의 옛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수채(睡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미뤄 ‘잘 수(睡), 나물 채(菜)’란 한자 이름이 ‘졸음나물’이란 우리말로 불리다가 이것이 지금의 조름나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애초 수채란 이름은, 뿌리든 잎이든 사람이나 동물이 먹으면 잠이 온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6월 중순 백두산 인근 습지에서 만난 조름나물 꽃. 하얀 잔털이 수북하게 난 모습이 2017년 5월 초 강원도 태백에서 만난 조름나물 꽃과 똑같다.

 쭉 뻗은 줄기 끝에 3장의 잎이 둘러 나며 키 20~35cm까지 자라는데, 종소명 트리포리아타(trifoliata)는 바로 ‘3장의 작은 잎이 달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꽃은 긴 꽃자루 끝에 여러 개가 층층이 달리는, 총상화서(總狀花序)로 핍니다. 개개의 꽃은 희고 긴 털이 촘촘히 난 5개의 꽃부리로 갈라지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은 순백의 눈 결정체를 똑 닮았습니다.

백두산 인근서 만난 조름나물은 발이 잠길 정도의 못이 아닌, 그저 축축할 정도의 습지에서 자란다.

강원도 태백의 깊은 산중에서 조름나물의 자생지가 처음 발견된 것은 5년 전.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총 길이 1,400km인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한가운데 바로 전형적인 북방계 습지식물이 자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는 가깝게는 1만 년 전부터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의 북방계 식물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대부분 절멸해가는 가운데 일부가 백두대간 내 오지에 근근이 연명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기 끝에 돌려나는 3장의 싱그러운 이파리 사이에 보석처럼 피어난 조름나물의 하얀 꽃. 깊은 산 작은 웅덩이에 반영도 빛난다.

지난 2016년 6월 14일과 15일 백두산 인근 습지 2곳에서 잇따라 조름나물을 만났습니다. 백두산 일대가 조름나물 등 한반도 희귀 북방계 식물의 고향임을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지요. 그리고 백두산과 강원도 태백 사이에 약 900km의 거리적 차이가 있다면, 두 곳의 시간적 차이는 1달 반 정도에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 강원도 태백서 피는 조름나물이 백두산에서는 6월 중순에야 만개하는 걸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속 100km로 달려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같은 꽃이 피는 데는 40여 일이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15>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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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못지않게 싱그런 이파리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세복수초입니다.

개개의 이파리는 가늘게 갈라졌지만,

개개의 이파리가 모여 제주의 곶자왈 숲을 더없이 신비롭게 만드는 세복수초,

뭍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봄 야생화라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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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뭄 탓인가,

키도 몸집도 작고, 꽃도 작아 보입니다.

꽃 피는 시기도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은 늦은 듯싶고,

하지만 화사하고 곱기는 여전한 복주머니란입니다.

가정의 달 5월 모든 가정에 복이 가득하시길....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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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날 보현산 정상에 흐드러지게 핀 왜미나리아재비입니다.

높은 산에서 만난 때문인가,

같은 노란색이라도 훨씬 깨끗하고 단정합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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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작고 잎도 작고 키도 작고....

전체적으로 모든 체형이 노루귀에 비해 작아서 그 이름을 얻는 새끼노루귀입니다.

실제로 작기는 한데, 흔히 보는 노루귀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아이들도 많은데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런데 제주도서 만나는 노루귀는 이처럼 다 작아서 새끼노루귀라고 한다는데,

그렇다면 제주도 출생에다, 

더 명확히 다른 특징인 잎과 꽃이 거의 동시에 나온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4월 초순 시기가 늦어서인지 실제로 만난 새끼노루귀는 모두가 앙증맞은 얼룩이 초록 이파리를 보호막처럼 

끼고 있더군요.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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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경기 강원 등 중부권서 보던 나도바람꽃이 경북 보현산서 만난 나도바람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나도, 나도바람꽃인가 봅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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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흰 눈이 내리듯 무논 가득 매화마름이 꽃을 피웠습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백설(白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다'이던가요?

지난봄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서 본 광경, 섬진강 변 언덕 가득 하얀 매화 꽃잎이 휘날리던 장면이 

두어 달 만에 강화도 너른 눈에서 재현되는 듯합니다.

'논의 건강성의 상징'인 매화마름이 피는 건강한 우리 논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증좌이니,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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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 깊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애기괭이밥입니다.

제주도 한라산에도 있으니 전국의 웬만한 큰 산에 자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활짝 핀 꽃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꽃잎이 일정한 온도 이상이 되어야 열리고, 해가 기울거나 날이 조금만 흐리면 쉬 닫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다 꽃 색이 고고한 흰색이다 보니 사진 담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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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계곡에서 너울대는 노란색 요정, 노랑붓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01>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Iris koreana Nakai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붓꽃은 그가 즐겨 그렸던 소재 중 하나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프랑스 남부 도시 생 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emy de Provence)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화단의 붓꽃을 보고 그렸다는 일련의 붓꽃 그림은, ‘아이리스(Iris·붓꽃) 연작’이란 이름의 걸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한 계곡 주변에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노랑붓꽃이 풍성하게 피어있다.

그런데 대표적인 붓꽃 그림인 ‘노란색 바탕화면에 노란 꽃병에 가득 담긴 붓꽃’ 그림이 그러하듯 그의 붓꽃의 색은 보라색 일색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해바라기처럼 노란색 붓꽃도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이런 바람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겁니다. 노랑붓꽃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기 때문에, 천하의 고흐라도 보지를 못했으니 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학명에 들어 있는 ‘koreana’가 노랑붓꽃이 한국의 토종식물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꽃줄기 하나에 두 개의 꽃의 달린, 이른바 1경 2화(1莖2花)인 노랑붓꽃. 꽃도 풍성하게 모여 피고 이파리도 넓고 길쭉한 것이 금붓꽃과 차이가 난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 산과 들에는 다양한 붓꽃이 피어납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피는, 바로 고흐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보라색의 붓꽃을 필두로 키 작은 보라색 붓꽃인 각시붓꽃과 금붓꽃, 난장이붓꽃, 솔붓꽃, 대청붓꽃, 부채붓꽃, 노랑무늬붓꽃, 타래붓꽃, 등심붓꽃, 노랑붓꽃 등 10여 종의 붓꽃이 조금씩 다른 저만의 독특한 꽃을 피워냅니다. 이들 중 솔붓꽃과 제비붓꽃, 대청붓꽃, 그리고 노랑붓꽃까지 4종이 환경부가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77종(1급 9종, 2급 68종) 가운데 4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붓꽃류 식물들이 그 어떤 식물보다도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노랑붓꽃이 자생하는 계곡에 아침 햇살이 들자 숲 전체가 노란빛으로 물이 드는 듯싶다.

설악산 등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난장이붓꽃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개의 붓꽃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나 들, 계곡, 호수 등지에서 자라고 있어 손쉽게 도채 되거나, 개발의 여파로 자생지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붓꽃과 제비붓꽃, 대청붓꽃이 국내에서는 희귀식물이자 보호 대상이기는 하지만, 중국이나 시베리아, 몽골, 일본 등 다른 지역에도 자생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종 자체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노랑붓꽃은 현재까지 변산반도 일대와 내장산 일대 등에만 자생하는 한반도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 자생지가 파괴될 경우 종 자체가 절멸할 수 있어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꽃 색 등에서 노랑붓꽃과 많이 닮은 금붓꽃. 1경 2화인 노랑붓꽃과 달리 하나의 꽃줄기에 하나의 꽃이 핀다.

또 다른 1경 2화인 노랑무늬붓꽃. 꽃 색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며, 자생지도 다르다.

노랑붓꽃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자라며 개체 수도 풍부한 금붓꽃과 함께 4월에서 5월까지 노란색 꽃을 피웁니다. 계곡 주변 숲속 그늘에서 자생하며 키는 20cm 정도로 대표 종인 붓꽃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잎은 3~4장이 뿌리에서 나며 넓은 선형으로 폭 1.3cm, 길이 35cm까지 자랍니다. 꽃의 색과 형태는 금붓꽃과 거의 유사한데, 다만 꽃대 하나에 1개의 꽃의 피는 금붓꽃과 달리 항상 2개씩 꽃이 피는, 즉 1경 2화(1莖 2花)라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또 다른 1경 2화(1莖 2花)의 붓꽃인 노랑무늬붓꽃과는 꽃 색에서 차이가 납니다. 전체적으로 하얀 꽃 색에 작은 노란색 무늬가 있는 노랑무늬붓꽃에 비해 노랑붓꽃은 각각 3개의 바깥화피와 안쪽화피, 그리고 수술와 암술로 이뤄진 크기 2~4cm의 꽃 전체가 온통 노란색입니다.

 

봄철 전국 어디서나 피는 각시붓꽃. 붓꽃의 대표색인 보라색 꽃이 핀다.

따스한 봄날 연두색으로 물드는 숲에 들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 가에 노랗게 피어 있는 수십 송이의 노랑붓꽃을 바라보노라면 하늘에서 요정들이 노란색 옷을 입고 내려와 앉아있는 걸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01>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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