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9.2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푸슈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시와 시인을 바꾸어도 뜻은 일맥상통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인내하면서 소박하게 살자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삶이 그대를 속이면 한번쯤 슬퍼하는 것도 좋은 일이며 한번쯤 노여워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어찌 우리가 성인군자의 태도로만 이 험난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르바뜨의 거리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푸슈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의 동상은 가장 인기가 많다. 그의 아내 나탈랴와 맞잡은 손은 사람들의 손길이 너무 많이 닿아 반들반들 빛난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푸슈킨은 아내를 짝사랑하는 프랑스 망명귀족 단테스와 결투를 벌였고, 부상을 당하여 2일 후에 사망했다. 놀랍게도 그때 나이 38세(1799~1837.2.10)에 불과했는데, 더 놀랍게도 세계를 통틀어 그만큼 널리 알려진 시인도 드물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수많은 시와 소설들을 남겼을 것이고, 노벨문학상쯤은 너끈히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운명이 거기까지인 것을!
아르바뜨 거리의 명소인 푸슈킨 생가 겸 박물관, 그리고 푸슈킨과 부인의 동상. Ⓒ김인철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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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빅토르 최!
한때 비틀즈의 존 레논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으나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운의 사나이. 사망 날짜가 하필이면 우리의 광복절인 8월 15일. 너무도 짧은 28년의 생애 동안 소련을 뒤흔들었던 청년. KGB의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를 당했던 그림과 노래의 천재. 공산주의 소련을 무너뜨리는 씨앗을 뿌린 자유의 투사. 1990년 6월 24일,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록그룹 키노(KINO)의 공연에 10만 명의 청년들을 모은 저항의 상징.
빅토르 최(Tsoi Viktor, 1962.6.21.~1990.8.15)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그는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그의 흔적은 모스크바 아르바뜨 거리에 깊이 남아 있다.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젊음의 거리’라는 아르바뜨 거리. 그곳에서도 가장 핫한 명소의 하나가 러시아의 고려인 로커 ‘빅토르 최(1962~1990) 추모벽’. 자유와 저항을 노래한 빅토르 최의 사진과 그를 추모하는 낙서와 글 등이 잔뜩 쓰여 있다. Ⓒ김인철
1999년 발행된 빅토르 최 추모 우표. Ⓒ김인철
인생, 뭐 별거 있더냐
아르바뜨의 거리, 푸슈킨 동상 건너편에 있는 무엇하는 놈팡이인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건방진 태도로 우리를 꼬나본다.
왼쪽 옆구리에 둘둘 만 신문지(혹은 잡지)를 끼고 있는 품새로 보아 작가인 듯도 싶고 (푸슈킨인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출판사 편집자인 듯도 싶고 그저 평범한 아버지같기도 한데 표정만은 범상치 않다.
발밑에 꽃다발 한 묶음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인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임은 분명하겠지만 굳이 그 이름을 묻지는 않았다. 이름을 알든 모르든 존경을 받을 사람이라면 계속 존경 받을 것이며 평범한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서서 사람들을 꼬나보는 것만으로도 제 할 일은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소리치겠지. “뭘 봐? 나는 그렇다 치고,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푸슈킨 생가 건너편에 서 있는 동상. 범상치 않은 표정이 눈길을 끈다 싶더니, 시인이자 작곡가 겸 가수로 러시아 음유시가의 개척자로 꼽히는 불라트 오쿠자바(1924~1997)의 동상이다. Ⓒ김인철
대도시답게 크고 작은 건물이 가득 들어선 모스크바 도심. 그리고 명소답게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물론 관광객들로 붐비는 아르바뜨 거리.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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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9.18>
무엇을 산다는 행위가 조금 망설여지는 곳이다. 정치적으로 공산주의를 유지하는 나라에서 백화점이 이토록 화려하고 크고 삐까뻔쩍해도 되는 것인가? 가이드가 ‘궁 백화점’이라고 일러주기에 옛날 제정 러시아 시대의 궁(宮 왕궁)을 백화점으로 개조한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궁이 아니라 굼(GUM)이란다. GUM은 Glavny Universalny Magazin의 약자다. 1890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으니 자그마치 125년이나 되었다. 그 흔적을 계단에서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갔으면 대리석 계단이 움푹 파였을까?
계단 손잡이와 숍의 출입문, 분수 모두 아름답지만 복도와 난간에 진열해 놓은 꽃들이 특히나 아름답다. 그러나 무언가를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비쌀 것이라는 지레짐작이 들기 때문에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만족!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굼백화점. 러시아의 ‘최고급 백화점’이라는 명성답게 안팎이 화려하고, 관광객도 많다. 1890년부터 3년에 걸쳐 지어졌다니, 그 역사가 120년이 넘은 백화점이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크렘린
크렘린은 과거 백악관과 더불어 세계를 나누어 지배했던 양대 권력기관이었으나 지금은 관광명소의 하나로 바뀌었다. 물론 러시아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1992년 소련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때 대학교수 한 명은 “이제 지구촌은 미국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라고,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예측은 빗나가 이제 지구촌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장이 되고 말았다!
크렘린 앞에는 당연히 부동자세의 경비 병정이 있고 혹여 고위 관리들이나 푸틴을 볼까 싶어 얼쩡거리는 전 세계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당연히 푸틴을 보는 일은 없으리라. 백악관 앞에 하루종일 서 있어도 트럼프(당시에는 오바마)를 볼 수 없듯.
굼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크렘린. 크렘린의 남동쪽 성벽 중앙에 붉은색 화강암으로 쌓은 피라미드형 묘에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1870~1924) 유해가 안치돼 있다. Ⓒ김인철
굼백화점과 크렘린의 밤 풍경. Ⓒ김인철
러시아의 두 얼굴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발발되었으며, 약 1년 1개월 후인 1951년 7월 8일부터 휴전협정이 시작되었다. 159차례의 본회의와 500여 회가 넘는 소위원회 등 지루하고도 힘든 과정을 거쳐 25개월만인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협정이 맺어졌다.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UN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 주요 역할을 한 사람이 유엔주재 소련대사 말리크(Yakov Aleksandrovich Malik 1906~1980)이다. 그는 중공군의 철수에 반대표를 던졌고, 유엔방송을 통해 휴전협상을 제의했다. 미국이 이 제의를 받아들여 협상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전쟁의 책임은 결국 스탈린과 김일성에게 있을 것이지만 휴전의 통로 역할을 한 사람은 말리크이고, 그의 동상이 모스크바 광장 입구에 떡 버티고 서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도 멋있고 그 앞의 동상도 멋있어 엉겁결에 사진을 찍지만 그 남자가 한국전쟁의 핵심 인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 다들 깜짝 놀란다. 의아한 사실은 말리크는 1980년에 죽었고, 그의 업적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에도 수도 한가운데에 동상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모르는, 구글에도 등재되지 않은, 소련과 러시아인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위대함이 있는 것일까?
동상 건너편에는 수로가 있고 그 옆으로 낭만적이고,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하고, 고급스러운 상가가 있다. 청계천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에는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 선물 가게가 즐비하고 가족과 연인들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근엄하고, 한쪽은 즐겁다. 이것이 러시아의 두 얼굴일까?
붉은광장 초입에 서있는 야코프 말리크(1906~80) 동상. 한국전쟁 당시 유엔주재 소련대사로서 정전협정을 처음 제안했다. 근엄한 동상 바로 건너편에는 시끌벅적한 상가가 있어 러시아의 두 얼굴을 볼 수 있다.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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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9.18>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09.16>
파리에 에펠탑이 없다면 굳이 갈 필요가 없듯 뉴욕에 자유의 여신상이 없다면 굳이 갈 필요가 없듯 베이징에 자금성(紫禁城)이 없다면 굳이 갈 필요가 없듯 모스크바에 바실리 성당이 없다면 그 먼 곳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성 바실리 대성당(St. Basil’s Cathedral)은 이반 4세(Ivan IV)의 명에 따라 지어졌는데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수많은 정적들과 귀족들을 살육해 이반 뇌제(雷帝)라고도 불린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중앙집권제로 러시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경제 발전의 토대도 이룩했다. 공과 과를 동시에 갖고 있는 차르다. 그 공(功) 중 하나가 바실리 대성당을 지은 것인데 1560년대 즈음에 세워졌다. 성당 앞의 두 남자는 드미트리 포자르스키(Dmitry Pozharsky)와 쿠즈마 미닌(Kuzma Minin). 17세기에 폴란드의 침입을 막아낸 영웅이다(그때는 폴란드가 더 강대국이었나 보다).
바실리 성당이 매혹적인 이유는 건축물 자체가 작으면서도 성스럽기도 하지만 그 앞의 광장이 엄청 넓다는 점이다. 만일 시가지 한 귀퉁이 좁은 땅에 성당이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모스크바의 상징’ 바실리 성당의 낮과 밤.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명소답게 숱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낮 시간 붉은광장을 오가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밤 허강 중부대 교수의 설치미술작품인 ‘유라시아 대륙 달빛 드로잉’이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더욱 빛이 났다. Ⓒ김인철
Ⓒ김인철
바실리 성당의 낮과 밤
성당의 오른쪽은 크렘린(Kremlin)이고 왼쪽은 굼(GUM) 백화점이다. 러시아 최대의, 어쩌면 유럽 최대의 백화점이다. 들어가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호화찬란하고 넓다. 이 세 곳을 보았다면 모스크바 관광은 사실상 끝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낮 못지않게 화려한 밤의 풍경을 보는 것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밤의 모스크바는 낮보다 위험하며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시비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서워 밤의 바실리를 보지 못하면 1/2밖에 못 보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붉은광장 가운데 바실리 성당이 있고, 오른쪽은 크렘린, 왼쪽은 굼 백화점이다. 이들 셋의 낮과 밤이 놓쳐서는 안 될 모스크바의 전부가 아닐까.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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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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