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쑥부쟁이.

늘 해 질 무렵 찾아가기 때문일까?

단양쑥부쟁이를 보면 늘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누군가의 시구였던가.

아님 노랫말이었던가.

명쾌하게 기억나지는 않으나 

쓸쓸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허허롭기도 하고,

하기도 한, 

그런 묘한 분위기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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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K-POP 열기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9>

해외에 나가
“I'm from Korea.”
라고 말하면, 간혹 North Korea? or South Korea?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순간적으로 North가 북인지, 남인지, South가 북인지, 남인지
당황스럽다.
그럴 때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면 된다. 갤럭시 혹은 LG G5면 만사형통이다.
만일 아이폰이라면 South Korea라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발음이 시원찮다면
‘갤럭쉬’ 혹은 ‘엘쥐 쥐퐈이브’
아니면 ‘헌다이 오토모빌’(현대자동차)
혹은 ‘싸이, 걩냄스타일’이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 LG, 현대는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이 기업들이 모두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싸이는 역대 모든 대통령이 한 일보다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에서도 한류는 대단하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K-POP 경연대회에는 많은 남녀청춘들이 솔로로, 혹은 팀으로 참여해 열정과 끼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노래와 춤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고, 높이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과 기업인들은 훌륭한 민간 외교관이며
정치인들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K-POP 경연대회’ 참가자들의 열띤 공연. 객석을 가득 메운 젊은 관중들이 손에 쥔 야광 기구를 흔들며 호응하고 있다. 전 세계를 달구는 ‘K-POP 열기’를 실감케 한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선율은 아름답지만 듣는 사람은 그저 호기심이다.
듣는 사람은 건성일 수 있지만 부르는 사람은 애절하다.
던져주는 동전 하나는 적선일 수 있지만, 부르는 사람은 한 그릇의 밥이다.
지나치는 사람은 관광이지만, 부르는 사람은 직업이다.

그 사이에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노래이면서, 노래인 듯하면서, 노래가 아닌 듯하면서 노래이다.

광장에 나와 동전 하나를 얻기 위해
그가 악기를 배우고, 오선지 위의 음표를 공부한 것은 아닐지언정
한 명의 유랑극단이 되어 때로는 응답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의 운명, 혹은 신의 뜻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애절하다.

바르샤바 옛시가지 광장. 뜨거운 여름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와 가로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올 무렵 거리의 연주자들도 하나둘 자리를 잡고 ‘그들의 일과’를 시작한다.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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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물속에 잠긴 물매화.

절벽에 매달려 검푸른 계곡물을 내려다보는 물메화,

허공에 뜬 물매화 등

가을이 가기 전

이것저것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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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미지는 아름답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7>

슬픈 역사쯤이야 극복하면,
-그만큼의 아픔과 세월이 요구되지만-
극복하면 그만이다.
어느 민족인들 아픔이 없으며, 어느 나라인들 고난이 없을쏘냐.
그러므로,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밤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하여 슬픔이 묻히지야 않겠지만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위로와 희망을 준다.

보여주기 위한 관공서용 조명도 필요하지만
작은 가게의 작은 등불도 있어야 한다.
창 위에 매달린 LOTTO 간판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1980년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르샤바의 옛시가지. 1944년 독일군에 의해 85% 이상 파괴된 것을 5년여에 걸쳐 완벽하게 재건한 훌륭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인철
Ⓒ김인철

그것은 나의 그림자였을까

낮에 보면 훨씬 좋았을
바르샤바의 옛시가지를 저녁 7시 넘어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여름이었고 백야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던 것일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곳의 운치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쓸데없는 만찬회만 없었어도
VIP들의 의미없는 일장훈시만 없었어도
더 깊은 추억이 남았으련만...

그 아쉬움 속에 1시간 넘게 거닐었던 옛시가지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한 사람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문득 돌아보면 내 곁에 있다가.
그것은 나의 그림자였을까,
혹은 이름만 겨우 아는 낯모를 타인이었을까.

아주 긴 세월이 흘러
바르샤바를 아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회한에 담긴 눈동자가
떠오르면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었노라.

나치 독일이 의도적으로 파괴한 도시를, 굳은 의지와 열정으로 복구한 폴란드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는 심정으로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옛시가지. 밤이 깊어 주황색 조명이 들어오자 마음속 고향 마을인 양 더없이 따듯하고 더없이 다정다감하다. Ⓒ김인철
Ⓒ김인철

빈센트 반 고흐를 아시나요?

그는 어쩌면 허리가 굽었을 것이며
소의 눈을 지녔을 것이며
손은 길고 가늘고 하얬을 것이다.

그 길고 가는 손으로 그린 그림을 나는
바르샤바 뒷골목에서 보았다.
네덜란드-프랑스-영국-벨기에를 떠돌았지만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는
폴란드를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거리에서 고흐가 떠오른 것은 그의 그림처럼 우울하고, 고즈넉한 풍경 때문이 아니라
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의 안쓰러운 일생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부탁이니까 울지 마. 슬픔은 영원히 남는 거야. 난 이제 집에 가는 거라고”
고흐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에게 슬프면서도 위안이 되는 유언을 남기고
고흐는 눈을 감았다.
그의 염원처럼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고 있을까?
아니면 우울한 이방의 뒷골목에서 영원히 방랑하고 있을까?

석양 무렵 옛시가지 구석구석은 그 어디를 바라보든 액자 없는 ‘명화’다.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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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아남기를,

겨우겨우 꼬리라도 살아남기를,

꼬리겨우살이.

정말 빕니다.

꼬리겨우살이의 삶이 오래 가기를....

단풍의 계절 잘 넘기고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에 다시 만나기를...

빌고 또 빕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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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물이 흐르고,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고,

물기 가득한 바위 겉에 녹색의 이끼가 겨우겨우 뿌리내리고,

그 이끼 위에 물매화 몇 송이가 가을의 한복판까지 싱싱하게 살아

단아한 흰색 꽃을 하늘을 향해 피어 올렸습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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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간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5>

누군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는 떠나려 하고
누군가는 하루의 피로를 풀려 한다.
그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용서하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름을 남기기 위해
권력을 잡기 위해
거부가 되기 위해 살기보다
하루를 보람있게 사는 것
그것이 삶의 참된 모습이다.

반드시 베고야 말리라

폴란드는 1572년 야기에오(Jagiellonian) 왕조가 끝나고, 귀족 공화정이 등장하면서 국왕의 권력이 귀족들에 의해 제한되었다.
1596년에는 지그문트 3세(Zygmunt Ⅲ)가 수도를 남부 크라쿠프(Kraków)에서 바르샤바로 옮기면서 모스크바 대공국과 마찰을 일으켰고, 1655년에는 스웨덴과 러시아가 침공해 국력이 약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3국이 점차적으로 폴란드를 침범하여 1772년 국토의 1/4을 빼앗겼다. 1793년에는 제2차 분할이 이루어져 러시아와 프로이센에 더 많은 영토를 빼앗겼고, 1795년 제3차 분할로 폴란드는 완전히 소멸했다. 그리하여 1807~15년 사이를 제외하고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이 1918년까지 폴란드를 지배했다.
1815년 빈 회의의 결과로 러시아 내에 폴란드왕국이 세워졌으며, 러시아 황제가 폴란드 왕을 겸했다. 1830년 폴란드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혁명정부를 조직했으나 실패했고, 1863년에 일으킨 두 번째 독립전쟁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실린 <폴란드 분할시대>의 간략한 설명이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국민들은 무엇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기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칼을 든 이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1830년 조국을 찾고자 반란을 일으킨 혁명가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용감하게 반기를 든 그에게 찬사와 위로를 보낸다. 조그만 점으로 찍혀 있는 보름달이 그의 용맹을 증명하리라.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 등 주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지배를 받아온 탓이리라. 바르샤바 곳곳에 서 있는 동상들의 자세가 한결같이 용감무쌍하다. “그 누구도 폴란드 영토 안으로 허락 없이 한 발짝만 내디디면 단호하게 베리라.” 심지어 옛시가지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바르샤바의 상징’ 인어상도 칼과 방패를 들었다. Ⓒ김인철
Ⓒ김인철

바라보는 자의 여유, 걷는 자의 한가함

지금 이 시각
한낮의 태양은 건물 저편으로 가라앉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는
벤치에 앉아 멍한 눈길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가 응시하는 것은 세상이며, 삶이다.

시원한 생맥주와 담소가 넘쳐나는
유혹의 불빛을 마다하고
한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서운함이 발목을 잡지만
오늘 할 일을 다 했으니 모든 것을 뿌리친다 하여도
아쉬움은 없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리라.

산다는 것은 다 같다. 일상을 사는 현지인이든, 타지를 떠도는 여행자든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이면 먹거리를 찾아, 쉴 곳을 찾아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린다. 누구는 한잔 술로, 누구는 따듯한 차 한잔으로, 또 누구는 오가는 몇 마디 대화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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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쑥부쟁이.

높은 산 정상에서 만난 개쑥부쟁이,

그 어떤 가을 야생화에 못지않은 품격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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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2>

“길가에 너무 흔히 굴러다니기 때문에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거나 적어도 인식되는 일이 없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는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고 일깨워주면 크게 놀란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수천 수만 개나 돌아다니지만 발견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1925~27년 발간된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제1권 ‘민족주의적 세계관’의 11장 ‘민족과 인종’에 실린 글이다.
매우 멋진 말이고, 옳은 말이다. 이 잘못된 옳음에 기초하여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일으켰고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그때 희생된 유대인들의 추모비가 베를린에 있다.
밋밋한 사각형의 대리석을 수백 개 세워놓은 추모비인데...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십자가가 된다.
희생된 죄없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될까?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이 말은 여러 경우에 쓰이는데, 그 처음은 2차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이 했던 맹세라 한다. 그들은 히틀러와 나치, 독일인들을 용서는 했지만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한 역사는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 앞에서 이 맹세와 교훈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리라.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있는 ‘유럽 유대인 학살 추모비’. 모두 2,711개의 검은 색 ‘석비(石碑) 건축’을 통해 2차대전 시절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숨진 유대인들을 추모한다. 폭 0.95m, 길이 2.38m 높이 0.2m~4.8m의 다양한 석비가 끝없이 펼쳐지면서, 관람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건축 체험을 제공한다. 기둥 사이의 간격은 폭과 같이 95cm로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미국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해 2005년 제막됐다. Ⓒ김인철
Ⓒ김인철

꽃 한 송이로 위로가 되지는 않을지언정...

한 사람의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정확한 숫자는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
최소 400만 ~ 최대 600만.
적어도 400만 개 이상의 우주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졌으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다. 

그 앞에 놓인 꽃 한 묶음이 위로가 되지는 않을지언정
꽃을 놓을 수밖에 없는,
살아남은 자들을 용서하시길.... 

* 1976년 3월에 발행된 한국어판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과 추모관 사진. 그 앞에 놓인 꽃은 3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게토 영웅 기념비’.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저항하다 희생된 게토(유대인 집단거주지구)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념비 앞에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브란트 총리의 그 진정성이 폴란드인들의 오랜 원한을 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인철
Ⓒ김인철

 

“나는 노동자로서 철로를 놓았을 뿐입니다.”
“나는 단지 가스 밸브를 열었을 뿐입니다.”
“나는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수색했을 뿐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열린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죄가 없음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6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히틀러 혼자 죽였다는 말인가?

25년 후, 한 사내가 그 잘못을 모두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다.
서독의 4대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본명은 Herbert Ernst Karl Frahm, 1913~1992)이다.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뱌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헌화를 하던 브란트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참다운 용기였으며, 화해를 향한 위대한 행동이었다. 

독일은 25년 만에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일본은 75년이 지난 2019년까지 그들이 침략하고 학살한 아시아 어느 국가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으며, 전쟁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무엇인가를 잘 대비해서 보여준다. 

일본의 총리 혹은 왕(천황)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무릎을 꿇는 날이
진정한 아시아의 평화가 정착되는 날이 될 것이겠지만....
과연 그날이 올까?

 

 

1976년 3월에 발행된 한국어판 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그리고 게토 영웅 기념비 앞에 놓인 꽃 한 송이.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02>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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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유수 같다 하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아니 벌써,

깊은 가을입니다.

좀바위솔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입니다.

Posted by ato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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