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선남선녀들, 으름덩굴의 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25> 

 

으름덩굴과의 낙엽 활엽 덩굴식물, 학명은 Akebia quinata (Thunb.) Decne.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야생화의 매력에 빼져 들면 그저 길을 나서기만 해도 온통 시선이 땅바닥을 향하기 마련입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더라도, 깊은 계곡에 들더라도, 높은 산을 오르더라도 하늘은 올려다보지도 않고 온 정신을 길섶의 풀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자칫 한 치 앞을 내다보지도 않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무위자연은 또다시 말없이 가르침을 건네줍니다. 위도 쳐다보라고, 하늘도 바라보라고 무언의 선물을 한 다발 던져줍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상의 꽃, 바로 으름덩굴의 꽃입니다.

.덩굴식물답게 커다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무성하게 가지를 뻗고 하늘을 가득 메울 듯 풍성하게 꽃을 피운 으름덩굴. 손바닥 모양의 연녹색 잎 5장이 가득 달린 것도 꽃 못지않게 예쁘다.

하늘에서 수도 없이 많이, 끊임없이 연이어 낙하산이 떨어지듯 꽃이 피어납니다.

총을 든 군인이 아니라, 꽃을 든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자줏빛 비단옷을 입고 공중 쇼를 펼칩니다.

 
 
자웅동주(雌雄同株) 식물인 으름덩굴의 암꽃과 수꽃. 그리고 암꽃과 수꽃이 함께 피어있는 모습. 3~6개의 굵직한 암술을 갖춘 암꽃이 6개의 자잘한 수술이 있는 수꽃에 비해 배나 크다. 그러나 꽃의 수는 수꽃이 암꽃보다 3배 정도 많다고 한다.

어린 시절 ‘코리안 바나나’라고 불리던 으름의 농익은 모습에 질펀한 단맛을 기대하며 한입 가득 물었다가 엄청난 양의 씨를 뱉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한 으름덩굴의 꽃이 이렇게 예쁜 줄 미처 몰랐습니다.

 
자갈색 일변도가 아니라 진한 보라색과 흰색 등으로 색의 변이를 보여주는 으름덩굴의 꽃. 주로 수꽃에서 색의 변이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암수 한 쌍의 꽃이 한 가닥 줄기에 함께 사뿐히 내려앉아 나란히 매달려 있으니,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3개의 큼지막한 꽃받침 잎을 우산처럼 쓰고 가운데 3~6개의 굵직한 암술이 있는 큰 꽃이 암꽃입니다. 역시 꽃잎처럼 보이는 세 개의 작은 꽃받침 잎에 원형을 이룬 6개의 수술이 달린 자잘한 꽃이 수꽃입니다.

 
봄 연초록 숲을 배경 삼아 덩굴식물을 특성을 활용해 유연한 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으름덩굴.

참 세상은 넓고 꽃은 다양하지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등 자연과 벗하는 것은 관찰력을 기르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세세히 살피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집니다. 으름덩굴의 꽃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이번엔 암수의 차이뿐 아니라, 꽃마다 색이 뚜렷하게 차이 나는 게 한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엔 다 같은 자갈색으로 보이더니, 차차 흰색에 가까운 꽃, 그리고 진한 보랏빛 꽃으로 구별됩니다. 색의 변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황해도 이남의 해발 50~1,300m 산야에 자생한다는 설명으로 미뤄볼 때 따듯한 기후에서 더 활기를 띠는 남방계 식물에 가깝다는 뜻인 듯싶은데,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풍성하게 자라며 하늘 가득 꽃을 피우는 게 그런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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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 부리며 깨어나는 한라산의 요정, 설앵초(雪櫻草)!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9>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rimula modesta var. fauriae (Franch.) Takeda.

산중의 봄은 더디게 옵니다. 5월 초순 어느덧 도시에선 초여름의 무더위가 느껴지지만, 높고 깊은 산에선 이제 겨우 봄기운이 감돌 정도입니다. 해발 1,950m의 한라산. 해발 2,744m의 백두산을 비롯해 2,000m를 넘는 산들이 북한 땅엔 제법 있지만, 남한에선 이보다 더 높은 산이 없습니다. 남한 제일의 고산답게 5월 초의 한라산엔 아직도 겨울과 봄, 초여름 3계절이 공존합니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한낮은 도심처럼 뜨겁지만, 구름과 바람이라도 몰려들면 산꼭대기엔 금방 눈비가 내리고 한밤중 깊은 계곡엔 얼음이 업니다. 당연히 봄도 늦게 시작됩니다. 봄꽃들이 저 발아래 평지보다 한발 늦게 피어납니다.

 
 

한라산 ‘선작지왓’ 평원에서 만난 설앵초. 눈 녹은 물이 고인 웅덩이 옆 양지바른 둔덕에서 어린아이 얼굴처럼 맑고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사실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늦게 피어나는 한라산의 봄꽃은 모두가 ‘한 미모’ 합니다. 그중 으뜸은 설앵초입니다. 4월 초·중순 이미 전국 의 산에서 풍성하게 피어나 벌써 지기 시작하는 앵초나, 5월 초부터 역시 전국 곳곳의 깊은 산에서 흔히 마주치기 시작하는 큰앵초와 달리 한라산을 포함해 가야산과 신불산 등 남녘의 몇몇 고산에서나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한라산에서도 어느 곳에서나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1.600m 이상 올라서야 보랏빛이 감도는 홍자색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도도하기 그지없는 ‘한라산의 요정’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4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해 전국의 산을 연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앵초. 팔랑개비 또는 수레바퀴 모양의 작은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난다.

지난 4월 말 한라산 해발 1.600m의 ‘선작지왓’ 평원에서 막 피어난 설앵초 몇 송이를 보았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아 고인 작은 물웅덩이 옆에 핀 설앵초를 보니 왜 ‘눈 설(雪)’ 자가 이름의 앞자리를 차지했는지 절로 알 것 같더군요. 물론 앵초나 큰앵초에 비해 전초나 꽃이 작고 여리기 때문에 ‘어리다, 부족하다, 작다…’는 의미의 설앵초라 불린다는 해석도 있기는 합니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 중순 만난 설앵초. 한라산의 설앵초는 4월 말부터 6월 하순까지 무려 2달 가까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또 이파리 뒷면에 눈을 연상케 하는 은황색 가루가 붙어 있어 설앵초란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한라산 1,600m 선작지왓 평원에 4월 말 피기 시작한 털진달래. 잎과 줄기 꽃 모두에 잔털이 나는 털진달래는 한라산과 설악산, 지리산 정상 부근에만 자생한다.

늦게 피는 대신, 꽃이 지고 사라지는 것도 더뎌 늦게는 6월 하순까지도 선작지왓~윗세오름~남벽 등산로 주변에서 설앵초가 팔랑개비 모양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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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칼바람에도 피어나는, 해국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1. 14>

국화과의 반목본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ster sphathulifolius Maxim.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명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와 그에 앞서 그의 스승 말라르메가 썼다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시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 나날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냄과 분노를 넘어 허탈과 침통, 참담함 등의 고통을 공유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선뜻 위로가 되지 않는 시절,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한마디가 마법의 힘을 발휘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나섭니다.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강원도 삼척 추암 해변에 ‘바다 국화’ 해국이 활짝 피어 있다.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를 읊조리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랏빛 꽃을 피운 해국. 드물게 흰색으로 피는 해국도 있다.

입동(立冬)이 지난 바닷가에는, 아직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은 아니지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흰 이빨을 드러낸 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거센 파도가 잇따라 달려와 집채만 한 갯바위를 덮치고는 하얗게 부서집니다. 그리고 그 바위 절벽 곳곳 여기저기에 매달린 보랏빛 꽃다발이 으르렁대며 연신 달려드는 파도를 다독입니다. 해국(海菊)입니다.

 
제주도 마라도에서 2015년 1월 하순 만난 해국. 한겨울 제주의 하늘과 바다 모두 환상적인 짙푸른 색감을 보여준다.

‘바다 국화’라는 뜻의 해국은 거센 바닷바람에 여기저기서 날려 온 한 줌의 모래흙이 전부인 바닷가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사시사철 그늘 한 점 없는 양지에서 온몸을 드러낸 채 해마다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연한 보라색의 꽃을 피웁니다. 한여름 지독한 무더위가 찾아와도, 막 꽃이 필 시절 무지막지한 태풍이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가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살아나 어김없이 꽃을 피웁니다.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리며 지름 3.5~4cm로 제법 큰 꽃은 주로 연보라색이지만, 가끔 순백의 꽃송이도 눈에 띕니다. 너무나 어렵게 싹을 틔운 줄기와 잎이어서인지, 초본임에도 높이 30~60cm로 자라는 줄기와 끝에 달리는 잎은 겨울에도 고사하지 않습니다. 줄기는 해가 갈수록 굵어지며 나무처럼 단단해진 채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한겨울에도 잎과 줄기가 반상록 상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제주도 해안가에서는 늦가을 핀 꽃이 남아 있기도 하고 간혹 새로 피기도 합니다.

 
추암의 명물 촛대바위 주변에 핀 해국.

그런데 해국은 세계적으로 두 곳에만 분포합니다. 한국과 일본입니다. 당연히 어느 해국이 원종(原種)인지 궁금해집니다. 영남대 생명과학과 박선주 교수는 해국뿐 아니라 독도에서 자라는 여러 식물의 고향이 어디인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독도와 울릉도는 물론 제주도를 비롯해 동·서·남해안 전역에서 해국이 자라고 있으나, 일본의 경우 일본 서해(우리나라로 보면 동해) 지역에만 분포한다.”면서, 해국의 분포도 및 개체 수 등으로 미뤄볼 때 한국의 해국이 원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박 교수는 조만간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해국과 일본 해국의 유전자 집단 분석 등을 통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척박한 바닷가에서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피는 특성이 십분 반영된 듯,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 또는 ‘인고의 세월’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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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나는, 은방울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29>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onvallaria keiskei Miq.

"산골짜기에서 은방울꽃의 군락지를 발견했을 때는 그리움으로 가슴이 아렸다."

2011년 작고한 작가 박완서는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은방울꽃과의 첫 만남의 감동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어 다음과 같은 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혼자서 산길을 헤매다가 나도 모르게 음습한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진하면서도 고상한, 환각이 아닌가 싶게 비현실적인 향기에 이끌려서였다.

 
종(鍾), 또는 방울 모양의 순백의 자잘한 꽃송이가 매력적인 은방울꽃. 살랑 봄바람이라도 불면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경쾌한 종소리가 울려 퍼질 듯하다.

그늘진 평평한 골짜기에 그림으로만 본 은방울꽃이 쫙 깔려 있었다. 아니, 꽃이 깔려 있다기보다는 그 풍성하고 잘생긴 잎이 깔려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밥풀만 한 크기의 작은 종이 조롱조롱 맺힌 것 같은 흰 꽃은 잎 사이에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앙큼하도록 농밀한 꿀샘을 가지고 있었다. 은방울꽃은 숙명(淑明)의 교화(校花)였다.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던 배지도 은방울꽃을 도안한 거였고, 교가도 은방울꽃의 수줍음과 향기를 찬양한 내용으로 돼 있었다."

통상 5월에 많이 핀다고 해서 오월화란 별칭을 가진 은방울꽃에 대해 이보다 더 적확한 묘사는 없다고 믿기에 다소 긴 듯싶지만 전문을 인용, 소개합니다.

 
꽃줄기 양편으로 시원하게 뻗은 이파리 사이에 10송이 안팎의 꽃송이가 앙증맞게 매달린 은방울꽃. 크기는 작지만 온 숲을 제압할 듯 당당한 모습이 5~6월 대표 야생화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

5월말 은대난초, 금강애기나리, 풀솜대, 큰앵초 등 비교적 늦게 꽃을 피우는 봄 야생화가 전국 각처의 높고 깊은 산과 계곡에서 여럿 피지만 그중 가장 돋보이는 꽃의 하나가 바로 은방울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봄비라도 내린 탓일까, 은방울꽃에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방울 모양의 꽃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은 종족 보존을 위해 꽃가루와 꿀을 보호하려는 이유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하얀 방울을 똑 빼닮은 앙증맞은 꽃의 생김새뿐 아니라, 순백의 꽃 색으로, 그리고 향수화(香水花)라는 또 다른 별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사진을 찍는 내내 온몸을 파고드는 은은한 꽃향기로 인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황홀경에 빠져들게 되는 야생화가 바로 은방울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란 시에서 말했습니다. ‘방울꽃’ 하나에 채 1cm도 안 되는 은방울꽃의 진가를 알려면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은 물론, 가까이 다가가 하나의 꽃줄기에 10개 안팎으로 달린 ‘방울꽃’에서 울려 퍼지는 잔잔한 종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덧붙여, 서늘하면서도 달콤한 꽃향기를 맡아야만 고급 향수의 재료로도 쓰인다는 은방울꽃의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6개로 갈라진 꽃잎 끝 부분이 살짝 분홍빛으로 물든 은방울꽃. 몇 해 전 강원도 홍천의 한 야산에서 이른바 ‘분홍 은방울꽃’으로 불리는 변종이 발견돼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은방울꽃은 박완서가 갈파했듯 꽃 못지않게 ‘풍성하고 잘생긴’ 잎 역시 보는 이를 사로잡는데, 이로 이해 ‘화냥년속고쟁이가랑이꽃’이니 ‘바람난며느리속고쟁이’와 같은 발칙하면서도 기발한 옛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날렵하면서도 윤기가 흐르는 진초록 이파리 두 장이 꽃줄기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길게 마주만 모습이 마치 여인이 속고쟁이를 입은 채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정작 6~8mm 크기의 ‘꽃방울’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한사코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모습에 비를 피해 종을 이어가려는 절실한 본능이 숨겨져 있다고 식물학자들은 설명합니다. 종족 보존과 직결되는 꽃가루와 꿀을 보호하는 ‘우산 역할’을 하기 위해 꽃잎이 땅을 보고 동그란 원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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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의 영원한 고향' 설악산의 꽃, 산솜다리 !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6..12>

학명은 Leontopodium leiolepis Nakai.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5월 하순에서 6월 중순 사이 산 타기 좋을 때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이니 많은 이들이 쾌적한 계절이 가기 전 높고 큰 산을 오르자며 길을 나섭니다.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유명한 말처럼 많은 이들이 그저 산이 거기 있고 계절이 하 좋아 전국의 내로라하는 높고 깊은 산에 오릅니다. 그런데 이 시기 유독 설악산만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있는 이 산 저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한사코 설악산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설악산 중에서도 험하기가 공룡의 등뼈를 닮았다는 공룡능선을,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용아장성을, 그리고 야성미 넘치는 서북능선을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오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설악산의 여러 산줄기 중에서도 험준하기로 손꼽히는 산길을 골라 오르는 이들의 목표는 이른바 ‘산악인의 꽃’ 산솜다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산악인의 꽃’이란 별칭답게 설악산 높은 능선에 핀 산솜다리(Leontopodium leiolepis Nakai)가 첩첩 연봉을 굽어보고 있다.

흔히 설악산이 산악인들에겐 마음의 고향으로 꼽히니, 그곳에 피는 산솜다리가 ‘산악인의 꽃’으로 불리는 건 그럴싸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연유를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한국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이 각각 홈페이지에서 밝힌, 산솜다리 형태의 상징 마크를 채택한 이유는 다소 달랐습니다. 한국산악회는 1945년 설립과 동시에 “고원지대에 서식하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닌 에델바이스 꽃”으로 상징 마크의 테두리 모양을 도안했다는 것입니다. 1962년 창립된 대한산악연맹은 “우리 고유의 식물이자 고산에서 자라나는 솜다리(에델바이스)로 산악인의 기상을 표현”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노란색 두상화와 하얀 솜털이 촘촘히 덮인 포엽이 특징인 산솜다리 꽃송이.

어찌 됐건 두 단체 모두 산솜다리는 아예 거론조차 않고, 상징 마크에 에델바이스를 담았다고 했는데, 이는 에델바이스와 솜다리, 산솜다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레온토포디움(Leontopodium)이란 속명을 쓰는 솜다리 속 식물은 50여 종이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도 5종이 자생합니다.

 
설악산 능선 주위 바위 틈새, 또는 바위 겉에 뿌리를 내리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생하는 산솜다리.

솜다리와 산솜다리, 한라솜다리, 왜솜다리, 그리고 몇 해 전 신종으로 분류된 설악솜다리입니다. 그중 솜다리(Leontopodium coreanum)는 금강산 등 북한 지역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현재 설악산에서 만나는 종은 산솜다리거나 설악솜다리뿐입니다. 한라솜다리는 이름대로 한라산에서 자생하고, 일본에서 자라는 종이라는 뜻의 왜(倭)솜다리(Leontopodium japonicum Miq.)는 설악산이 아닌, 소백산 이북 고산지대에서 자랍니다.

 
길쭉한 포엽 등 산솜다리와 다소 차이를 보이는 에델바이스(Leontopodium alpinum). 경기도 포천 평강식물원에서 담았다.

불후의 명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곡 가사로 너무도 널리 알려진 에델바이스(Leontopodium alpinum)는 솜다리·산솜다리와 마찬가지로 같은 솜다리 속 식물이긴 하지만 종소명(alpinum)이 엄연히 다른 식물인데, 우리나라에는 없고 유럽이나 남미 고산지대에서만 자랍니다. 그럼에도 1970~80년대 한창 수학여행이 유행하던 시절 설악산 일대 기념품 가게 등지에서 압화한 산솜다리를 액자 등에 넣어 에델바이스, 또는 ‘한국의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으로 숱하게 팔았으니, 당시 얼마나 많은 산솜다리가 사라졌을지 짐작이 됩니다.

 
소백산 이북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왜솜다리(Leontopodium japonicum Miq.). 강원도 평창에서 만났다.

아예 멸종되지 않고 명맥이 유지되어 온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산악인들을, 야생화 동호인들을 설악의 고봉 능선으로 부르는 산솜다리는 ‘솜다리’란 이름에서 짐작되듯 꽃과 줄기, 잎 등 10~25cm의 전초에 솜처럼 흰 털이 숭숭 나 있는 게 특징입니다. 특히 꽃잎처럼 보이는 6~9개의 포엽이 연한 노란색의 두상화를 둘러싸고 별 모양을 만들고 있는데, 하얀 털이 촘촘히 덮여 있습니다. 그 흰 솜털은 물기가 부족한 고산 식물에는 습기를 머금는 역할과, 칼바람과 추위에 맞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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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한가운데 핀 북방계 습지식물, 조름나물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15>

조름나물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 Menyanthes trifoliata L.

강원도 태백의 첩첩산중에 있는 작은 못을 찾아가던 지난 5월 2일. 서울 인근에선 이미 진 산 벚꽃이 뭉게구름처럼 이 산 저 산 중턱에 걸려있고, 태백시로 접어드는 도로의 벚나무 가로수에도 아직 하얀 꽃이 남아있어 서울과의 지리적, 그리고 시간적 거리를 실감케 합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고 돌아 길을 재촉하자 낙동강과 한강, 그리고 오십천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삼수령(三水嶺)이란 이정표가 나옵니다. 얼마간 더 나가자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며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어놓고 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고개 건의령(巾衣嶺)이 앞을 막아섭니다. 차를 멈춰 세우고 주변을 살피자 첩첩으로 둘린 산 중턱에 놀랍게도 200평 남짓한 물웅덩이가 보이고, 그 한가운데 밝고 하얀 꽃을 한 아름 달고선 조름나물 군락이 눈에 들어옵니다.

 
눈처럼 맑고 눈처럼 깨끗한 조름나물의 하얀 꽃.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눈 결정체를 똑 닮은 듯 보석처럼 빛이 난다.

조름나물은 세계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의 고위도 습지에서 자라는 정수성(淨水性) 수생식물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몽골, 러시아, 네팔, 카슈미르 등지에 분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자생지는 평북과 함경도 등 북한 지역을 제외하면, 강원도 대암산 용늪과 고성의 석호(潟湖) 2곳, 태백의 못, 그리고 경북 울진의 연호 등 몇몇 습지에 국한되어 있어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 첩첩산중의 작은 물웅덩이에 가득 들어찬 조름나물 군락. 깊은 산 중턱에 발이 푹 잠길 깊이의 못이 있는 것도 의외인데, 그 안에 희귀 북방계 습지식물이 자생하니 놀랍고 반갑다.

 중국의 옛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수채(睡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미뤄 ‘잘 수(睡), 나물 채(菜)’란 한자 이름이 ‘졸음나물’이란 우리말로 불리다가 이것이 지금의 조름나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애초 수채란 이름은, 뿌리든 잎이든 사람이나 동물이 먹으면 잠이 온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6월 중순 백두산 인근 습지에서 만난 조름나물 꽃. 하얀 잔털이 수북하게 난 모습이 2017년 5월 초 강원도 태백에서 만난 조름나물 꽃과 똑같다.

 쭉 뻗은 줄기 끝에 3장의 잎이 둘러 나며 키 20~35cm까지 자라는데, 종소명 트리포리아타(trifoliata)는 바로 ‘3장의 작은 잎이 달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꽃은 긴 꽃자루 끝에 여러 개가 층층이 달리는, 총상화서(總狀花序)로 핍니다. 개개의 꽃은 희고 긴 털이 촘촘히 난 5개의 꽃부리로 갈라지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은 순백의 눈 결정체를 똑 닮았습니다.

백두산 인근서 만난 조름나물은 발이 잠길 정도의 못이 아닌, 그저 축축할 정도의 습지에서 자란다.

강원도 태백의 깊은 산중에서 조름나물의 자생지가 처음 발견된 것은 5년 전.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총 길이 1,400km인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한가운데 바로 전형적인 북방계 습지식물이 자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는 가깝게는 1만 년 전부터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의 북방계 식물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대부분 절멸해가는 가운데 일부가 백두대간 내 오지에 근근이 연명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기 끝에 돌려나는 3장의 싱그러운 이파리 사이에 보석처럼 피어난 조름나물의 하얀 꽃. 깊은 산 작은 웅덩이에 반영도 빛난다.

지난 2016년 6월 14일과 15일 백두산 인근 습지 2곳에서 잇따라 조름나물을 만났습니다. 백두산 일대가 조름나물 등 한반도 희귀 북방계 식물의 고향임을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지요. 그리고 백두산과 강원도 태백 사이에 약 900km의 거리적 차이가 있다면, 두 곳의 시간적 차이는 1달 반 정도에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 강원도 태백서 피는 조름나물이 백두산에서는 6월 중순에야 만개하는 걸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속 100km로 달려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 같은 꽃이 피는 데는 40여 일이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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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둣빛 계곡에서 너울대는 노란색 요정, 노랑붓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01>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Iris koreana Nakai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붓꽃은 그가 즐겨 그렸던 소재 중 하나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프랑스 남부 도시 생 레미 드 프로방스(Saint Remy de Provence)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화단의 붓꽃을 보고 그렸다는 일련의 붓꽃 그림은, ‘아이리스(Iris·붓꽃) 연작’이란 이름의 걸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한 계곡 주변에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노랑붓꽃이 풍성하게 피어있다.

그런데 대표적인 붓꽃 그림인 ‘노란색 바탕화면에 노란 꽃병에 가득 담긴 붓꽃’ 그림이 그러하듯 그의 붓꽃의 색은 보라색 일색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해바라기처럼 노란색 붓꽃도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쉽지만 이런 바람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겁니다. 노랑붓꽃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기 때문에, 천하의 고흐라도 보지를 못했으니 그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학명에 들어 있는 ‘koreana’가 노랑붓꽃이 한국의 토종식물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꽃줄기 하나에 두 개의 꽃의 달린, 이른바 1경 2화(1莖2花)인 노랑붓꽃. 꽃도 풍성하게 모여 피고 이파리도 넓고 길쭉한 것이 금붓꽃과 차이가 난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 산과 들에는 다양한 붓꽃이 피어납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피는, 바로 고흐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보라색의 붓꽃을 필두로 키 작은 보라색 붓꽃인 각시붓꽃과 금붓꽃, 난장이붓꽃, 솔붓꽃, 대청붓꽃, 부채붓꽃, 노랑무늬붓꽃, 타래붓꽃, 등심붓꽃, 노랑붓꽃 등 10여 종의 붓꽃이 조금씩 다른 저만의 독특한 꽃을 피워냅니다. 이들 중 솔붓꽃과 제비붓꽃, 대청붓꽃, 그리고 노랑붓꽃까지 4종이 환경부가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77종(1급 9종, 2급 68종) 가운데 4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붓꽃류 식물들이 그 어떤 식물보다도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노랑붓꽃이 자생하는 계곡에 아침 햇살이 들자 숲 전체가 노란빛으로 물이 드는 듯싶다.

설악산 등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난장이붓꽃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개의 붓꽃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나 들, 계곡, 호수 등지에서 자라고 있어 손쉽게 도채 되거나, 개발의 여파로 자생지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붓꽃과 제비붓꽃, 대청붓꽃이 국내에서는 희귀식물이자 보호 대상이기는 하지만, 중국이나 시베리아, 몽골, 일본 등 다른 지역에도 자생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종 자체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노랑붓꽃은 현재까지 변산반도 일대와 내장산 일대 등에만 자생하는 한반도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서 자생지가 파괴될 경우 종 자체가 절멸할 수 있어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꽃 색 등에서 노랑붓꽃과 많이 닮은 금붓꽃. 1경 2화인 노랑붓꽃과 달리 하나의 꽃줄기에 하나의 꽃이 핀다.

또 다른 1경 2화인 노랑무늬붓꽃. 꽃 색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며, 자생지도 다르다.

노랑붓꽃은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자라며 개체 수도 풍부한 금붓꽃과 함께 4월에서 5월까지 노란색 꽃을 피웁니다. 계곡 주변 숲속 그늘에서 자생하며 키는 20cm 정도로 대표 종인 붓꽃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잎은 3~4장이 뿌리에서 나며 넓은 선형으로 폭 1.3cm, 길이 35cm까지 자랍니다. 꽃의 색과 형태는 금붓꽃과 거의 유사한데, 다만 꽃대 하나에 1개의 꽃의 피는 금붓꽃과 달리 항상 2개씩 꽃이 피는, 즉 1경 2화(1莖 2花)라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또 다른 1경 2화(1莖 2花)의 붓꽃인 노랑무늬붓꽃과는 꽃 색에서 차이가 납니다. 전체적으로 하얀 꽃 색에 작은 노란색 무늬가 있는 노랑무늬붓꽃에 비해 노랑붓꽃은 각각 3개의 바깥화피와 안쪽화피, 그리고 수술와 암술로 이뤄진 크기 2~4cm의 꽃 전체가 온통 노란색입니다.

 

봄철 전국 어디서나 피는 각시붓꽃. 붓꽃의 대표색인 보라색 꽃이 핀다.

따스한 봄날 연두색으로 물드는 숲에 들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 가에 노랗게 피어 있는 수십 송이의 노랑붓꽃을 바라보노라면 하늘에서 요정들이 노란색 옷을 입고 내려와 앉아있는 걸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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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강변에 흩날리는 희고 붉은 꽃잎, 매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3.20>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학명은 Prunus mume Siebold & Zucc. for. mume

봄, 강이 흐릅니다. 물비늘 반짝이며 섬진강이 흐릅니다. 낙동강이 흐릅니다. 강바람이 붑니다. 산 위에서 불던 봄바람이 어느새 강으로 옮겨왔나 봅니다. 강바람에 연분홍 치마가 흩날립니다. 흩날리는 건 곱디고운 연분홍 치마만이 아닙니다. 봄꽃 잎이 강바람에 우수수 치솟았다가 물 위에 내려앉습니다. 순백의 꽃잎이 있는가 하면 연분홍도, 진홍색 꽃잎도 눈에 들어옵니다. 꽃잎이 날리면서 덩달아 꽃향기가 흩날립니다.

 

한겨울 흰 눈이 어지럽게 내리는 듯 섬진강 변을 하얗게 물들이는 매화 꽃물결. 해마다 3월이면 광양 매화마을을 비롯한 섬진강 일대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매화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상큼한 연초록 향(香)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아, 매화(梅花) 향기입니다. 이처럼 3월 중순 남녘에선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희고 붉은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꽃받침이 붉으면 백매(白梅), 녹색이면 청매(靑梅)라 불리는 매실나무에 가득 달린 하얀 꽃잎은 마치 방금 튀겨낸 팝콘처럼 날아가듯 가볍고 경쾌합니다. 홍매(紅梅), 또는 분홍매(粉紅梅) 가지마다 점점이 박힌 홍색의 꽃잎에선 연분홍 봄날의 환희가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늘까지 붉게 물들일 듯 만개한 ‘만첩홍매’와 ‘분홍매’. 350년 넘게 그윽한 향기를 품어온 ‘자장매’와 더불어 해마다 수많은 인파를 불러 모으는 양산 통도사의 자랑거리다.

 “저 매화 화분에 물 주어라(灌盆梅).”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라고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이란 문집에 전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옛 선비들이 매화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좋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매화를 거론할 때 회자되는 말입니다.

 

통도사 우담바라합창단원들은 활짝 핀 매화나무 아래서 봄날의 환희를 노래하고, 직박구리는 매조도(梅鳥圖)의 완성을 돕고 있다.

그러나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梅一生寒不賣香)’에 대한 사랑과 연모가 옛 사람들의 호사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약 2,000년 전에 국내에 들여와 정원수로 심었다고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에서 설명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오래된 매화나무도 많고 또 이른바 유명한 매화나무를 찾아다니며 즐기는 ‘탐매(探梅) 기호’도 연면히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령이 600년을 넘었다는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등 천연기념물 지정된 ‘고매(古梅)’뿐 아니라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구례 화엄사의 흑매 등이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이름난 매화나무입니다.

 

대구 달성군 남평문씨세거지에 만개한 홍매화와 백매화. 고택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멋진 정취를 선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열매인 매실 수확 등을 목적으로 심은 대규모 매실나무들의 연륜이 쌓이면서 봄마다 농원 일대가 거대한 매화꽃동산으로 변모하면서 수많은 인파가 찾는 매화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담장 밖의 홍매화와 대문 안의 백매화. 나가고 싶고,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봄날이다.

 전남 광양과 경남 양산의 매화축제가 대표적인 행사입니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란 명성답게 제주는 물론 일부 남녘에선 1월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3월 중순 광양과 양산에서 매화축제가 열릴 정도로 만개합니다.

 

낙동강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경남 양산 원동 매화마을은 무릉도원 같은 매화꽃밭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멋진 순간을 포착할 수 있어 인기다.

 특히 광양·구례·하동과 양산의 매실나무에 하얗게 꽃이 피면 일대를 굽이치는 섬진강과 낙동강은 봄바람에 휘날린 매화 꽃잎이 물 위에 가득 내려앉은 듯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절정의 봄날로 흘러갑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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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깨고 피어난 봄의 전령사, 노루귀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20>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epatica asiatica Nakai.

자연은 부지런합니다. 풀과 나무들은 부지런합니다. 여전히 외투의 깃을 올리고, 저 멀리 흰 눈이 쌓인 산을 바라보며 언제 봄이 오나, 언제나 봄이 오나 되뇌는 사이, 이미 봄꽃은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은 저절로 따라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봄꽃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부지런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왔어요.” 외치는 진홍색 노루귀. 2017년 2월 15일 전북 부안의 한 자생지에서 만났다.-

이미 1월 초순부터 제주도 들녘 곳곳에는 수선화가 피었고, ‘곶자왈’에선 백서향이 상아색 꽃을 활짝 터뜨리며 짙은 향을 온 숲에 뿜어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뭍에서도 강원도와 울산, 변산 등지에서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화신(花信)이 전해진 지 보름여가 지났습니다. 양지바른 길섶에서 광대나물과 큰개불알풀의 꽃을 찾아보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2월 15일 낙엽 더미를 헤치고, 돌무더기를 비집고, 나무 밑동 사이로 불쑥 올라온 노루귀의 앙증맞은 꽃송이들. 마치 루비나 사파이어 등 보석이 메마른 산비탈에 점점이 박힌 듯 황홀하고 매혹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봄보다 먼저 피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지척에 다가와 있음을 알리는 봄꽃의 하나인 노루귀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눈과 얼음을 깨고 핀다고 해서 파설초(破雪草), 또는 설할초(雪割草)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는 말이 사실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엄동설한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중순 눈이 덮인 변산반도의 한 산비탈에 몇몇 개체가 핀 사진이 야생화 동호인 사이트에 올라와 보는 이들이 안쓰러워했던 일도 있습니다. 우리의 국명(國名)인 노루귀는 꽃이 핀 뒤 뒤늦게 고깔모자처럼 둘둘 말린 채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붙었는데, 서양인들의 눈에는 그것이 장기의 하나인 간(肝)을 닮았다고 여겨졌나 봅니다. 해서 학명 중 속명은 간을 뜻하는 헤파티카(Hepatica), 영어 이름은 비슷한 의미의 아시안 리버리프(Asian liverleaf)로 불리고 있습니다.

노루귀란 이름을 낳은 이파리가 꽃이 핀 뒤 줄기 아래서 둘둘 말려서 나오는 모습.

전초(全草)라고 해야 키 10cm, 잎 5cm, 꽃 1.5cm 정도에 불과해 유심히 살펴봐야 겨우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작은 풀꽃이라고 말하는 게 합당하지만, 다양한 꽃 색과 깜찍하고 앙증맞은 생김새는 ‘이른 봄 야생화의 대표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환상적이고 매혹적입니다. 먼저 꽃 색은 흰색에서부터 홍색과 청보라색에 이르기까지 그 변이의 폭이 매우 넓습니다.

 

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노루귀의 솜털들. 홍색과 청색의 꽃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홍색도 연분홍에서부터 진홍색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 청보라색 역시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색에서부터 코발트블루까지 다양합니다. 단순한 하얀색도 있지만, 미색에 가까운 흰색도 있습니다. 꽃 색 못지않게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드는 건 꽃줄기와 총포(꽃대 끝에서 꽃 밑동을 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 등에 난 무수한 잔털입니다. 볕 좋은 봄날 강렬한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노루귀의 하얀 솜털을 한 번이라도 바라본 이라면 ‘노루귀’의 황홀한 매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청색, 아니면 청보라색, 또는 코발트블루라고 해야 할까. 어느 화가의 물감이 이보다도 매력적일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노루귀의 청색 꽃들.

야생화 노루귀의 또 다른 큰 장점의 하나는 그 어떤 꽃보다도 개체 수가 풍부하고, 또 개화 기간이 길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자생지 또한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강원·경기 접경지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어 누구든 관심을 가지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르면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에도 꽃이 필 만큼 개화 시기도 깁니다. 한두 송이가 피기도 하지만, 많게는 수십 송이가 한데 뭉쳐서 나기도 하고, 산비탈 여기저기에 붉은색 루비나 파란색 사파이어가 박힌 듯 많은 개체의 노루귀가 보석처럼 피어 있기도 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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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고원(高原)에 펼쳐진 붉은 카펫, 담자리참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06>

진달래과의 상록소관목, 학명은 Rhododendron lapponicum subsp. parvifolium var. alpinu (Glehn) T.Yamaz.

해발 2,750m 백두산. 한반도의 지붕인 그곳은 지금 초속 40m의 강풍이 불고 기온이 섭씨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는 등 남한의 웬만한 곳에선 체험하기조차 힘든 혹한이 몰아치고 있을 겁니다. 칼바람이 불고 기온만 낮은 게 아니라 천지를 비롯해 거의 모든 봉우리가 잔뜩 흰 눈에 뒤덮여 있겠지요. 높은 산을 뒤덮고 있는 눈, 바로 이 눈 덕분에 백두산 고원 지대에 자라는 식물들이 2~3개월에 불과한 짧은 해빙기 동안에 꽃을 피우고 수분까지 끝내는 ‘생명의 눈’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게 식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키 작은 담자리참꽃이 백두산 고원 툰드라 지대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가운데 저 멀리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최고봉의 하나인 천문봉이다.

얼어붙은 눈이 부도체(不導體)여서 열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오히려 고산 식물들이 혹한기에 얼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대략 해발 1,000m 이상 수목 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서 자라는 백두산의 고산 식물들이 바로 그런 ‘눈 이불’ 아래서 오늘도 살을 에는 강풍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며 따듯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붉은 카펫이 깔리듯 펼쳐진 담자리참꽃. 6월 중순 백두산 고산 평원 한편엔 분홍색 꽃 더미가, 또 한편엔 흰색의 눈 기둥이 물결치는 듯하다.

노랑만병초·시로미·가솔송·담자리꽃나무·월귤·들쭉나무·백산차·콩버들 등 소관목류와, 두메양귀비·두메자운·숙은꽃장포·구름범의귀·구름송이풀·바위구절초·돌꽃 등 초본류가 그들입니다. 물론 천지 주변 등 가장 높은 화산암 지대에는 지의류나 이끼류 등 암표 식물만이 주로 자라고 있을 뿐입니다.

 
담자리참꽃은 키 10~15cm로, 참꽃이라 부르는 진달래보다 전초는 훨씬 작지만, 꽃 모양은 진배없는 분홍색 꽃을 탐스럽게 피운다. 해발 2,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암벽에 붙어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백두산 툰드라 지대에서 만나는 식물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고산, 고위도 식물이지만, 그중에서도 남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담자리참꽃을 들 수 있습니다. 2016년 6월 운 좋게도 꿈에 그리던 백두평원을 실컷 걸었습니다. 녹색의 잔디가 깔린 듯 끝없이 펼쳐지는 툰드라 초원에 들자, 이 봉우리 저 봉우리마다 한쪽에는 거대한 잔설(殘雪)이, 또 한쪽엔 불이 붙은 듯 붉게 타오르는 넓은 꽃 더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봄철 남한의 산에 진달래와 철쭉이 한가득 피듯 백두평원을 광활하게 붉게 물들이는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담자리참꽃이었습니다.

 
담자리참꽃의 피기 전 꽃봉오리와 개화한 모습.

상상 이상 규모의 꽃의 바다를 만들던 담자리참꽃은 꽃 모양은 흔히 참꽃이라 불리는 진달래 또는 철쭉을 닮았으되, 키는 10~15cm 정도로 훨씬 작았습니다. 또 가을이면 잎이 지는 진달래·철쭉과 달리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합니다. 노랑만병초와 마찬가지로 잎에 부동 물질이 들어 있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분홍의 꽃색은 선명한 데 반해 잎은 퇴색한 듯 칙칙해 보이는데, 그만큼 북풍한설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평안북도와 함경북도는 물론 시베리아에 분포한다는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의 설명에 미뤄볼 때,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로서 이후 한반도의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남한에서는 절멸했고 백두산 등 북한의 고산 지대에서만 겨우 살아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담자리참꽃이 활짝 핀 백두평원. 그 넓은 품속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남한에서는 보지 못하는 낯선 식물이다 보니 아직은 도감마다 담자리참꽃, 담자리참꽃나무, 담자리꽃나무 등으로 달리 표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고산식물로 설명돼 있는가 하면, 낙엽 활엽관목, 상록소관목 등 세세한 소개도 중구난방입니다. 백두산 툰드라 지대 같은 장소에서 백색의 꽃을 피우는 담자리꽃나무가 담자리참꽃과 한데 엉켜 자라고 있기도 한데, 장미과의 상록소관목인 담자리꽃나무는 담자리참꽃보다도 전초나 꽃의 크기가 작아서, ‘담자리’는 작다는 뜻의 지역 사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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