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초인'처럼 홀연히 나타난, 흰 대흥란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7.18>

난초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 학명은 Cymbidium macrorrhizum Lindl.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문득 이육사의 시 <광야>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치고 지나갑니다. 필자뿐 아니라 아마 야생화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느닷없이 순백의 꽃과 맞닥뜨릴 순간 부지불식중에 떠올리는 시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꽃 찾아 산과 계곡을 누비고 다니다 보면 흰 얼레지, 흰 앵초, 흰 솔나리, 흰 애기송이풀, 흰 금강초롱, 흰 금낭화, 흰 두메자운 등등 붉거나 노랗거나 파란 본연의 꽃 색과는 확연히 다른, 색소 부족의 병이라도 걸린 듯, 또는 아예 변종으로 진화한 듯 온통 흰색으로 물든 꽃들을 간혹 만나곤 합니다. 지난 14일에도 마치 ‘백마’인 듯, 아니 ‘백마 탄 초인’인 듯싶은 하얀 꽃을 보았습니다. 희귀한 순백의 꽃이 아니더라도, 본연의 꽃 자체가 이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 식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대흥란입니다.

 
 

백마처럼, 백마 탄 초인처럼 홀연히 나타난 흰색의 대흥란. 녹색의 꽃줄기 끝에 녹색의 예주(蕊柱 · 꽃술대)라고 불리는 난초과 특유의 생식기관 이외 꽃받침잎이나 꽃잎, 순판 등이 온통 흰색인 대흥란이 빗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한 달여 간 백두산의 고산식물에 푹 빠졌다가 모처럼 길을 나섰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 날씨를 감안해 행선지를 특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오전 7시 현재 홍천은 흐리고, 동해는 12시 이후 비가 온다’는 예보에 따라 솔나리와 풍경을 함께 담으려 산에 오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다소 흐리더라도 접사 사진에는 큰 지장이 없을 삼척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대관령 인근부터 세차게 비가 오더니 오전 내내 이어집니다. 모처럼 꽃은 좋은데 날씨가 안 받쳐주니, 장대비와 씨름하며 대흥란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3장의 꽃받침잎과 2장의 꽃잎, 그리고 예주와 순판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흥란 꽃송이. 꽃받침잎과 꽃잎에 붉은색 줄이, 순판에는 붉은색 반점이 다소 넓게 아로새겨져 있다.

 전남 해남의 사찰 ‘대흥사’에서 처음 발견돼 그 이름을 얻은 대흥란. 녹색의 잎이 없어 식물의 기본적인 생명 활동인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썩은 나무의 분해물 따위에서 양분을 얻어 살아가는 부생(腐生)식물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 자라면 줄기와 열매가 녹색으로 변하면서 광합성도 하는 불완전 부생식물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보입니다. 7~8월 10~30cm의 줄기 끝에 통상 흰색 바탕에 붉은색 줄과 반점이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2~6개의 꽃이 드문드문 달리는데, 간혹 순백의 꽃이 피기도 합니다. 길고 끝이 뾰족한 3장의 꽃받침잎, 그보다 다소 짧은 긴 타원형 꽃잎 2장, 뒤로 젖혀지며 끝이 3갈래로 얇게 갈라지는 순판으로 이뤄진 꽃의 전체 크기는 3~4cm로 비교적 큰 편입니다. 때문에 자생지라 해도 꽃이 피기 전에는 대흥란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일단 꽃이 피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줄기 끝에 각각 3송이, 6송이 꽃을 달고 선 대흥란. 꽃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대흥란의 키를 알아보기 위해 그 옆에 62mm 렌즈 뚜껑을 나란히 세웠다.

대흥란의 북방한계선이랄 수 있는 강원도 삼척을 비롯해 충남 이하 남부 지역과 제주도 등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자생지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생지가 사람들이 사는 저지대라서 각종 개발에 따른 훼손이 우려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실제 강원도 삼척 자생지의 경우 ‘개울 주변의 습기가 많은 숲 가장자리에 서식한다.’는 설명대로 바로 10m 앞에 오십천이 흐르고 인가가 있는 큰길가인데 다행히 보호 철책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국외에선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 네팔 미얀마 대만 태국 베트남 등지에 분포합니다. 일본에도 자생하는데 개체 수가 200개 미만이어서 위협종(EN)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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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백두 평원에 흰 눈이 내리듯 피는, 노랑만병초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7.11>


진달래과의 늘푸른 활엽관목, Rhododendron aureum Georgi

산 정상이 늘 흰 눈에 덮여 있어 ‘흰머리산’이라는 뜻의 백두산(白頭山)이라 불리는 산. 그곳에도 6월부터 8월까지 사이에 새싹이 움트는 봄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 · 가을이 한꺼번에 밀어닥칩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여 종에 이르는 북방계 야생화들이 앞을 다퉈 피어나면서 수목한계선 위쪽 고산 툰드라 지대가 천상의 화원(花園)으로 변모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향해 삐죽 빼죽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 사이사이 음지 곳곳에 남아있는 만년설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흰색의 벌판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옵니다. 여름 백두 평원 곳곳이 여전히 흰 눈을 뒤집어쓴 것처럼 하얗게 빛이 납니다. 백두산 툰드라 지대를 하얗게 수놓는 꽃, 바로 노랑만병초입니다.

 
 

백두산 수목한계선 위 고산 평원에 만개한 노랑만병초. 백두산에 여명이 밝아오자 밤이슬을 잔뜩 뒤집어쓴 노랑만병초가 고개를 들고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장지석남과 월귤, 홍월귤, 넌출월귤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녀처럼 이파리 뒤로 몸을 숨긴 채 손톱만 한 꽃을 땅을 향해 겨우겨우 피워낸다면 노랑만병초는 ‘올해도 어김없이 깨어났노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듯 어른 손바닥만 한 꽃잎을 활짝 펼쳐 보입니다. 풀 ‘초(草)’를 이름 뒤에 달았지만, 엄연히 나무인 노랑만병초는 월귤 등과 마찬가지로 백두산 수목한계선 위 고산 툰드라 지대에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북방계의 키 작은 교목입니다. 남한에서는 1963년 설악산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은 뒤 잊혔다가 40여 년 만인 2007년 설악산 정상에서 다시 발견돼 현재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개체 수가 600여 개의 불과한 데다 털진달래 등 다른 떨기나무들의 위세에 눌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미과의 상록 소관목인 담자리꽃나무, 학명은 Dryas octopetala var. asiatica (Nakai) Nakai. 담자리꽃나무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처럼 하얀 꽃송이를 활짝 펼쳐 보이고 있다.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노랑만병초는 끝없이 펼쳐지는 고산 평원 여기저기에서 축구장 크기만 한 꽃 무더기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합니다. 꽃 색은 흰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한낮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꽃 더미는 눈처럼 하얀 빛을 발합니다.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높이 1m까지 자란다고 돼 있는데, 실제 백두산에서 만난 노랑만병초는 30~50cm 정도로 어른 무릎에도 못 미칠 만큼 키가 작았습니다. 국생종은 또 흰색 꽃이 피는 만병초, 진한 홍색 꽃이 피는 홍만병초가 따로 있으며 둘 다 키가 4m까지 자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두 평원의 노랑만병초 곁에서 백색과 홍색을 띠는 꽃을 늘 함께 만났는데, 그 키는 노랑만병초와 다름없이 30~50c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 백두산의 추위와 바람 때문에 만병초와 홍만병초의 키가 작아진 것인지, 아니면 같은 노랑만병초의 변색일지 추후 확인할 과제라 생각합니다.

 
 

진달래과의 낙엽활엽 관목인 담자리참꽃, 학명은 Rhododendron lapponicum subsp. parvifolium var. alpinu (Glehn) T.Yamaz. 남녘의 진달래가 봄 여수 영취산 능선을 뒤덮듯 키 작은 담자리참꽃이 6월 중순 백두 평원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담자리꽃나무 또한 여름 백두 평원을 하얗게 수놓는 늘푸른 소관목입니다. 남한에는 아예 없고 평북, 함북에 자생하는데 10cm 안팎의 작은 키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인 2cm 정도의 흰색 꽃을 피웁니다. 꽃 무더기는 노랑만병초에 비해 작지만, 장미과의 식물답게 꽃이 화려하고 예뻐서 멀리서도 눈에 잘 들어옵니다.

백두산 고산 툰드라 지대에서 자생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소관목의 하나가 바로 담자리참꽃입니다. 진달래과의 담자리참꽃도 키는 10~15cm로 매우 작지만, 그 군락의 규모는 대단히 커서 6월 중순 한창 꽃이 피면 남한의 유명한 영취산 진달래나 한라산 철쭉이 피듯 백두 평원 곳곳을 온통 붉게 물들이곤 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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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버드나무 2016.07.15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감탄사밖에 ....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생전에 이런 장관을 꼭 한 번 보고 싶습니다

  2. 초록버드나무 2016.07.15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들뜨고 설렙니다
    감동이구요

백두 평원의 숨은 요정들, 장지석남 · 월귤 · 홍월귤 · 넌출월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7.04>


진달래과의 늘푸른작은떨기나무, 학명은 Andromeda polifolia for. acerosa C.Hartm.

해발 2,750m의 백두산을 단 한 번이라도 오른 이는 압니다. 그것은 정상의 화산 호수, 천지(天池)를 본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해발 1,950m의 한라산을 가장 높은 산으로 알고 살아온 우리에게 백두산을 오르는 일은 이제까지 겪지 못한 고산의 생태를 처음으로 보고 느끼는 각별한 여정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 등 침엽수와 자작나무 등이 울창한 삼림지대로부터 시작해 사스래나무라 부르는 자작나무과의 고목들이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몸을 비비 튼 채 즐비하게 늘어선 교목 지대를 지나면, 어느 순간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관목과 초본·이끼류·지의류가 잔디밭처럼 드넓은 평원을 이루는 툰드라 지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다시 얼마쯤 오르면 키 작은 관목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두메양귀비 · 개감체 · 돌꽃· 구름범의귀 등 고산 풀꽃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백두 평원에 자생하는 키 작은 떨기나무의 한 종인 장지석남이 키 큰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선봉령 습지에서 아주 작은 단지 모양의 분홍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뻐국채 꽃 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정지용이 ‘백록담’이란 시에서 말했듯, 백록담보다도 해발 1,000m 가까이 더 높은 천지에 오르는 길에선 한 바퀴 돌아서면 키 큰 나무가 사라지고, 한 바퀴 오르면 키 작은 나무가 사라지고, 마침내는 손톱만큼이나 작은 꽃을 피우는 북방계 고산 희귀식물들만 얼굴을 삐죽 내밀고 이역만리 돌고 돌아 찾아온 객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진달래과의 낙엽관목인 홍월귤. 학명은 Arctous ruber(Rehder & E. H. Wilson) Nakai, 키 10cm 안팎의 고산 식물로서 6월 중순 수목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서 역시 작은 단지 모양의 연노랑 꽃을 줄줄이 달고 서 있다.

남한의 산지에서는 아예 나타나지조차 않는다는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 그리고 키 큰 나무가 살 수 있는 수목한계선 넘어 높은 산에만 존재하는 툰드라 지대. 백두산의 경우 해발 1,000m 이상에서 시작되는 바로 이 툰드라 지대가, 남한에서는 아예 사라졌거나 있어도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의 소수만이 남아있는 키 작은 관목(灌木)들의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노랑만병초, 담자리꽃나무, 담자리참꽃, 들쭉나무, 월귤, 홍월귤, 넌출월귤, 장지석남, 가솔송, 린네풀, 콩버들 등이 그 주인공들로, 이번 주와 다음 주 2회로 나눠 소개합니다. 그중 들쭉나무와 장지석남, 월귤, 넌출월귤은 고산 툰드라 지대뿐 아니라, 역시 키 큰 교목들이 살지 못하는 고원 습지에도 잘 적응해 풍성한 개체 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진달래과의 늘 푸른 활엽 소관목인 월귤. 학명은 Vaccinium vitis-idaea L. 키 20~30cm로 홍월귤보다 2배 이상 크며, 백두산 기슭 습지에선 넌출월귤과 나란히, 고산 평원에선 홍원굴과 어깨동무를 하고 흰색에 가까운 종 모양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함경도에서 자란다.”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에 나오는 설명인데, 너무 오랫동안 만나 보지 못했기에, 잊고 산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이제는 낯선 이름인 장지석남입니다. 진달래과의 늘푸른작은떨기나무인 장지석남은 들쭉나무나 월귤 등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북방계 고산식물인데 목이 없고 배가 불룩한 작은 항아리, 즉 단지를 닮은 자잘한 연분홍 꽃이 6월 중순 우산 형태로 다닥다닥 달립니다.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꽃부리는 마치 심통 난 어린아이가 입을 뾰족 내미는 듯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진달래과의 상록 활엽 소관목인 넌출월귤. 학명은 Vaccinium oxycoccus L. 백두 평원 습지에 자생하는데, 꽃잎이 4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는 게 배드민턴 셔틀콕을 똑 닮았다.

그 장지석남 곁에 흰색 종 모양의 작은 꽃이 달리는 키 작은 월귤과, 배드민턴 셔틀콕 모양의 홍자색 작은 꽃이 인상적인 넌출월귤이 사이좋은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또 수목한계선 위쪽 툰드라 지대에서 역시 키 작은 떨기나무인 홍월귤이 흔하게 눈에 띄는데, 남한의 설악산 한 곳에서도 자생하는 게 확인돼 멸종위기종 2급 식물로 지정·관리되고 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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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버드나무 2016.07.08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 뉴스 시간에 백두산 천지 부근의 비경이 잠시 방영 되었죠
    와~~
    그 감동을 직접 느끼셨겠네요

눈 녹은 백두 자락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분홍노루발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27>


노루발과의 늘푸른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yrola asarifolia subsp. incarnata (DC.) Haber & Hideki Takahashi.

민백미꽃과 개정향풀에 못지않게 분홍색 꽃이 일품인 분홍노루발. 폭염의 여름을 향해 치닫는 달, 6월을 관통하는 야생화의 색이 마치 분홍색 하나인 듯 3주째 연달아 분홍의 꽃색을 자랑하는 야생화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번 주의 주인공인 분홍노루발은 국내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 풀꽃이 아닙니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이 즐비한 함경도 및 평안도 산악지대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게 현재로선 불가능해 북한 지역에는 있는지 없는지 단정할 수 없으니, 현재로선 중국 쪽 백두산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희귀종입니다.

 

연두색 이파리를 빼곤 모든 것이 분홍으로 물든 분홍노루발이 키 20cm 안팎의 꽃대에 종 모양의 꽃을 가득 달고 서서 백두 자락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잎맥의 형태가 눈에 찍힌 노루의 발자국을 닮았다고 해서 ‘노루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노루발과 식물. 세계에 25종, 우리나라에 7종이 분포하는데 대부분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할 정도로, 나아가 웬만한 식물들이 자라지 못할 만큼 척박한 소나무 숲에서도 살아갈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특징으로 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그중에서도 분홍노루발과 새끼노루발, 호노루발, 콩팥노루발은 특히 북풍한설에도 견디는 전형적인 북방계 노루발과 식물로 분류됩니다.

 

밑에서 올려다본 꽃송이 내부도, 뒤에서 엿본 꽃받침 등 뒤태도 예쁘기 짝이 없는 분홍노루발.

2015년 7월 중순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시베리아 벌판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이미 꽃은 지고 열매만 잔뜩 달고 선 분홍노루발과 호노루발, 새끼노루발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1개월 후인 2016년 6월 14~20일 민족의 성산 백두산 자락 여기저기서 노루발과 식물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종 모양의 자잘한 꽃이 한쪽 방향으로 가득 달린 새끼노루발.

시베리아 숲에서 본 식물들을 다시 백두산에서 다시 고스란히 만났다는 사실은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시원(始原)이 바로 시베리아이고, 백두산이 그 중간 기착지라는 식물학 전문가들의 설명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형의 잎과 잎자루가 긴 게 특징인 호노루발. 꽃은 노루발풀과 비슷한 모양의 흰색으로 핀다.

 가깝게는 1만 년 전부터,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의 북방계 식물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남한에선 대부분 절멸해가는 가운데, 해발 2,750m의 백두산이 한반도 북방계 식물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콩팥을 닮은 잎맥 무늬가 특징인 콩팥노루발. 남한의 울릉도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 20cm 안팎의 꽃이 한 송이만 피어도 숲이 환해진다는 분홍노루발의 환상적인 색감은 과연 소문대로였습니다. 지난해 ‘시베리아의 눈’이라 일컫는 바이칼 호수 인근의 숲에서 만난 분홍노루발의 꽃줄기와 열매만으로도 진분홍의 색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에 수십 송이의 꽃이 활짝 만개해 종 모양의 꽃을 가득 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히 노루발과 식물 중 최고라 일컬을 만했습니다. 그 옛날 빙하기 때 시베리아 벌판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한에도 내려왔을 터이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분홍노루발. 언젠가 북한의 함경도와 평안도 침엽수림 ‘우리 땅에서 우리 꽃’으로 다시 만나보기를 기대합니다.

단 한 송이만으로도 좌중을 휘어잡는 분홍노루발. 옆 나무에서 튀어나온 뾰족한 가시가 숲 속 공주의 호위무사처럼 보인다.

백두 자락엔 분홍노루발 외에도, 유난히 작은 종 모양의 꽃이 한쪽으로 달리는 작은 새끼노루발, 원형의 잎이 특징인 호노루발, 잎과 또렷한 잎맥 모양이 콩팥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콩팥노루발 등 남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노루발과 식물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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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꽃물결로 서해 들녘 뒤덮는, 개정향풀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20>

협죽도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ranchomitum lancifolium (Russanov) Pobed.

당신의 마음속 봄은 무슨 색일까요? 눈 내리는 겨울은 하양, 파도가 넘실대는 여름은 파랑, 울긋불긋 단풍 드는 가을은 빨강, 그렇다면 봄은 빨주노초파남보 중 무엇일까요? 그때그때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는 대중들이 자신도 모르게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특정한 이미지에 빠져들게 하곤 합니다. 가령 “봄바람 휘날리며/ 흩어지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를 부르며 찬란한 봄을 보내는 요즘의 세대들은 나이 든 훗날에도 흩어지는 벚꽃 색으로 봄을 기억할 겁니다.

 

나팔 모양의 연분홍색 꽃이 원뿔꽃차례로 다닥다닥 달린 개정향풀. 키가 40~80cm로 제법 크고 홍자색 꽃이 줄줄이 달려 있는 모습이 지난 주 소개한 분홍 민백미꽃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그런 측면에서 50, 60대 이상 세대들은 아마 연분홍색으로 봄을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며 “봄날은 간다.”고 그토록 아쉬워했던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미자의 ‘아씨’를 들으며 옛 어머니들의 고달픈 삶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으니 그들의 봄은 정녕 연분홍색일 것입니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 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수백, 수천 송이가 풍성하게 모인 개정향풀이 초여름 들녘에 꽃물결을 이루며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6월 중순, 더위는 벌써 한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서해 들녘에 넘실대는 개정향풀의 연분홍 꽃물결을 보노라면 이미 스러진 지 오래인 ‘복사꽃 꼽게 핀 봄날’이 되살아납니다.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가시밭길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이 꽃구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환영을 봅니다. 덧없이 가버린 봄날의 환희와 고달팠던 삶을 동시에 기억하게 하는 꽃이 바로 6월의 개정향풀입니다. 해서 ‘연분홍 청춘이여,

서해 섬 산기슭에 자생하는 같은 협죽도과의 정향풀. 꽃 색이 하늘색으로 개정향풀과 다르다.

다시 한 번’을 외치는 이들에게는 서·남해 바닷가로 가서 들녘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개정향풀을 만나보라 권합니다. 개정향풀은 크게는 어른 키만큼 자라며 나팔 모양의 손톱만 한 연분홍 꽃이 고깔 형태로 다닥다닥 달리는데, 많은 개체가 무리 지어 자생합니다. 10여 년 전 개정향풀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흰색과 노란색의 나비와 벌 등이 개정향풀 꽃송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꽃가루받이를 돕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인 학자가 표본을 남긴 이후 잊혔다가 민간 환경단체 회원들에 의해 90여 년 만에 다시 발견됐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지요. 이후 서·남해안 여러 곳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저 홀로 피고 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요.

 

연분홍 봄날의 아련한 정취를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개정향풀의 연분홍 꽃송이들.

그렇듯 큰 키에 비해 꽃은 자잘하기에, 잘 살피지 않으면 개정향풀 꽃의 진가를 알아채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름 앞에 붙은 ‘개’는 큰 키와 꽃 모양이 완도와 대청도 등 서해 섬의 산기슭에 자생하는, 같은 협죽도과의 정향풀을 닮은 식물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예 갯정향풀로 불린다고 하는 걸 보면 얕잡아 부르는 개(犬)가 아니라, ‘갯가’ 식물이라는 뜻의 ‘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꽃 색은 정향풀은 하늘색, 개정향풀은 연분홍색입니다. 작약이나 투구꽃처럼 오각형 뿔 모양의 씨방이 농익으면 터져 씨가 여기저기로 날려 번식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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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도 울고 갈, 참기생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06>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rientails europaea L.

연두색 숲이 날이 갈수록 진초록으로 그 색을 바꾸어 갑니다. 녹음은 짙어가고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 초순 산비탈을 조금만 올라도 벌써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황진이가 울고 갈 만큼 곱디고운 순백의 꽃송이가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전초는 7~25㎝, 꽃의 지름은 1.2~2cm라는 게 도감의 설명인데, 쉽게 말하자면 엄지손가락만 한 키에 약지 손톱만 한 흰 꽃이 꽃대마다 한 개, 또는 두 개씩 달리는 참기생꽃이 이번 주 ‘야생화 기행’의 주인공입니다.

 

갈수록 짙어져 가는 6월의 숲에서 참기생꽃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옛날 평안도로 벼슬 살러 가던 임제(林悌)가 송도의 기생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라고 흥 한 번 냈다가 파직당했다는 본보기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숱한 야생화 동호인들이 참기생꽃을 보겠다며 불볕더위 속 지리산과 가야산, 태백산, 설악산 등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치 않습니다.

 

어둠의 한가운데서, 연두색 숲을 배경으로 호롱불 밝히듯 군계일학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참기생꽃.

처음 참기생꽃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예쁘기에 ‘기생’이란 단어를 썼을까, 접두어 ‘참’은 왜 붙었을까 등등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건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꽃대마다 한 개, 또는 2개씩 올라온 꽃송이는 7장의 꽃잎, 그리고 중앙에 자리 잡은 1개의 암술과 7개의 수술로 구성되어 있다.

그저 예전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기생처럼 예쁘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그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 곱게 단장한 우리나라 옛 기생의 이미지와 달리 흰색의 꽃이라는 점에서 일본에도 같은 꽃이 있으며,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일본의 기생을 떠올려 기생꽃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참’ 자가 붙은 이유는 분명한데 대암산과 백두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기생꽃과 전초나 꽃의 크기 등에서 차이가 있어 구별 짓기 위해 별도의 식물명을 정한 것입니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숫가 숲에서 2015년 7월 만난 기생꽃. 꽃은 지고 열매를 맺고 있다.

그런데 기생꽃과 참기생꽃을 구분한 도감의 설명이 선뜻 이해가 되는 건 아닙니다. 가장 뚜렷한 차이로 크기가 기생꽃은 10cm 안팎인 데 비해 참기생꽃은 7~25cm이고, 잎끝이 기생꽃은 둥근 데 반해 참기생꽃은 뾰족하다는 것인데, 키 10cm 안팎과 7~25cm가 과연 변별력 있는 차이일지, 둥글다와 뾰족하다는 판단 또한 객관성이 담보되는 기준일지 의문입니다.

2013년 7월 백두산 숲에서 만난 기생꽃. 남한과 시베리아에선 이미 진 꽃이 여전히 싱싱하게 피어 있다.

실제 우리나라 북방계 식물의 고향이랄 수 있는 백두산에서 2013년 7월, 그리고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인근 숲에서 2015년 7월 각각 만나본 기생꽃의 모습은 남한의 참기생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설악산 능선에서 만난 참기생꽃 군락. 비교적 사람의 손길이 덜 닿았기 때문인지 군락 상태가 양호하다.

어쨌거나 5월의 마지막 날 폭염 속에 만난 참기생꽃은 보는 이의 혼을 앗아갈 만큼 황홀한 자태를 뽐냈습니다. 진초록 숲에서 무대 위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듯 쏟아지는 햇살을 독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단아하고 고졸한 야생화의 전형과도 같았습니다. 햇살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는 참기생꽃은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저만치 떨어져 상상만 했던 옛 시인의 정취처럼 한걸음 물러나 조망해야 격에 맞을 듯싶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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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붉고 푸르고, 색색의 꽃이 애간장을 녹이는… 민백미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13>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ynanchum ascyrifolium (Franch. & Sav.) Matsum.

녹음이 짙어지면서 자잘한 풀꽃들은 흔적도 없이 스러집니다. 황량한 숲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봄꽃들이 사라진 자리엔 산앵도나무와 쪽동백, 박쥐나무 등 나무 꽃들이 붉거나 노랗거나 하얀 꽃들을 풍성하게 피우며 어느새 숲의 주인 행세를 합니다. 이에 질세라 큰앵초와 감자난초 등 풀꽃들도 제법 키를 키우며 벌·나비를 부르는 경쟁 대열에 합류합니다. 큰 것은 1m 이상 자라는 민백미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훤칠한 키에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선 줄기가 곧고 단단해 얼핏 보면 키 작은 관목이 아닐까 착각하기도 합니다.

 

온 숲을 핑크빛으로 물들일 듯 연분홍색 꽃을 환하게 피우고 우뚝 서 있는 민백미꽃.

 “연분홍 꽃 색을 처음 보는 순간 심장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그 어떤 목석 같은 사내라도 연분홍 민백미꽃의 아름다운 충격에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꽃 동무가 민백미꽃을 만난 소감을 자신의 블로그에 썼습니다. 흰 꽃만 달리는 줄 알았던 민백미꽃이 연분홍색 꽃을 피운다는 새로운 사실에, 그에 못지않게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는 기발한 찬사에 구미가 당겨 자생지를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그저 붉은 것이 아니라 연분홍에서부터 진한 자주색, 살구색이 감도는 분홍색 등 다양한 색 변이를 보여주는 민백미꽃 송이들.

꽃 찾아다니면서 겪는 일이 있는데, 꽃마다 만나게 된 사연이 다르고 또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게 얽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민백미꽃이 ‘세상사, 인연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습니다. 보고 싶어 한다고, 찾는다고, 찾아간다고 다 만나지는 게 아니고 인연 따라 만나기도, 못 만나기도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했다고 할까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히 자생한다는 민백미꽃, 그런데 수년 동안 이 산 저 산 다녔지만 단 한 송이도 만나지 못해 꽤나 애를 태웠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 6월 중순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한라산을 오르는 동안 초록의 숲에 눈이 내린 듯 핀 민백미꽃을 숱하게 만났고, 이듬해 5월 서울에서 가까운 연천의 지장산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꽃 동무와의 인연으로 색색의 변이종 민백미꽃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역시 한 번 보기가 어렵지, 길 트면 수시로 만나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합니다.

 
 

옅은 연두색이 감도는 꽃잎이 분홍색과는 다른, 청초하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민백미꽃.

민백미꽃, 본디 꽃 색이 아니라 뿌리가 희고 가늘어서 백미(白薇)란 약재로 쓰이는 백미꽃의 유사 종인데, 열매에 털이 없다는 뜻에서 ‘민’ 자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꽃 색도 다릅니다. 백미꽃은 이름의 이미지와 달리 흑자색 꽃을, 민백미꽃은 흰색 꽃을, 그리고 또 다른 유사 종인 푸른백미꽃은 녹색이 감도는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분홍색과 자주색, 살구색, 그리고 옅은 녹색 등 색색의 꽃이 핀 민백미꽃이 있다는 말에 솔직히 “그럴 리가…”라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꽃잎도, 꽃잎과 수술 사이의 삼각형 부화관도 모두 본래의 하얀 꽃 색을 보여주는 민백미꽃.

그리고 분명히 흰색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색의 꽃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꽃 색으로만 구별하는 게 아니라, 꽃대와 꽃자루의 길이에서도 백미꽃과 민백미꽃, 푸른민백미꽃의 차이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쉽게 말해 백미꽃과 푸른백미꽃은 꽃대와 꽃자루가 꽃보다도 짧은 반면, 민백미꽃은 꽃대와 꽃자루가 훨씬 길어 꽃들이 대롱에 매달린 채 우산처럼 공중에 떠 있다고 하는데, 실제 본 모습은 도감의 설명과 똑같았습니다. 덧붙여 애간장을 녹인다는 말, 더도 덜도 아닌 가장 적절한 설명이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6.13>

**식물명 등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 주시면 감사히 바로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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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은 잎을 키우고 기생식물은 꽃을 피우고…, 백양더부살이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30>


열당과의 여러해살이 기생식물, 학명은 Orobanche filicicola Nakai

무성한 연두색 풀 사이에 청보라색 꽃 방망이가 불쑥 솟아나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풀 속을 헤집어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수직으로 선 길이 10~30cm의 황갈색 꽃대에 청보라색 통꽃 10~30개가 이삭 형태로 다닥다닥 달렸습니다. 통 모양의 꽃은 입술처럼 위아래로 갈라지는데 윗입술은 청보라색, 아랫입술엔 흰색이 넓게 번져있습니다. 수술은 4개이고, 1개인 암술머리는 2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한라산과 산방산이 보이는 제주도 서귀포의 풀밭에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백양더부살이가 멋진 청보라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그러나 적게는 한두 개, 많게는 10여 개 이상 무리를 지은 꽃대는 녹색의 이파리들에 둘러싸여 있어 사진으로 담자니 어지럽습니다. 순간 꽃대를 둘러싼 무성한 풀들을 정리하고픈 욕망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동작 그만. 거기서 멈춰야만 합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백양더부살이가 생명을 부지하고 종족 보존을 위해 화려하고 기기묘묘한 꽃을 풍성하게 피워낼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하는 결정적인 조력자 쑥을 제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10~30cm 꽃대에 20개 안팎의 통꽃을 이삭처럼 다닥다닥 달고 서 있는 백양더부살이.

전북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백양’이란 앞머리가 붙었고, 쑥 뿌리에 자신의 뿌리를 박고 기생하는 식물이어서 ‘더부살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백양더부살이.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1928년 백양사 근처에서 단 하나의 표본을 채집해 도쿄대학 식물표본관에 보관하였으나, 이례적으로 학계에 공식 발표하는 절차를 밟지는 않았습니다. 관찰할 수 있었던 표본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된다는 게 현 소장의 설명.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관찰도, 연구도 이뤄지지 않아 아예 절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낳았던 백양더부살이가 70여 년이 지난 2000년에 첫 발견지인 백양사에 멀지 않은 정읍의 한 천변에서 수백 포기가 청보라색 꽃을 피운 모습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을 확인한 현 소장 등이 미국에서 발행되는 식물 연구 잡지인 ‘노본(Novon)’에 새로운 종의 한국 특산식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사철쑥 중앙에 불쑥 올라온 초종용. 쑥에 기생하는 백양더부살이와 달리, 백양더부살이의 사촌격인 초종용은 바닷가 사철쑥에 기대어 산다.

그 후 전남 강진과 신안, 경남 통영, 제주도 등 4~5곳서 추가로 자생지가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개체 수가 많지 않고 확인된 자생지의 훼손 가능성이 우려돼 2012년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백양더부살이의 첫 재발견지인 정읍의 천변 갓길과 둑 비탈은 도로공사와 외래종 식물 화단의 조성 등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백양더부살이의 기주식물인 쑥이 가로수 조성공사 등으로 대거 사라지면서 백양더부살이도 덩달아 생존의 기반을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풀발 군데군데 모여 난 쑥 더미 사이에 청보라색 꽃대를 돋워 올리고 있는 백양더부살이.

어쨌든 4~5월 꽃을 피우는 백양더부살이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더부살이 생을 산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식물이지만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희귀성이 인정된, 귀중한 식물자원입니다. 유사한 식물로서 초종용이 있는데, 앞서 설명한 대로 백양더부살이는 쑥에, 초종용은 바닷가의 사철쑥에 기생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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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봄에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뚜껑별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11>

앵초과의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로 학명은 Anagallis arvensis L.

“깽깽이풀도, 얼레지도 없는 제주도에 뭐 하러 와요? 4월엔 육지에 좋은 꽃들이 더 많이 피는데….” 이른바 ‘춘사월(春四月)’ 제주도는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지인에게 제주의 봄 야생화 소식을 묻자 되돌아온 즉답입니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늦추위에 봄꽃의 개화 소식이 의외로 늦더니 일주일여 전 며칠째 이상고온이 이어지면서 깽깽이풀이니 얼레지, 모데미풀 등이 한꺼번에 피어난다고 야단들인데 난데없이 제주행이라니 핀잔 받을 만합니다.

 

현무암 바위 틈새에 무수히 꽃을 피운 뚜껑별꽃. 밤하늘의 별들이 사뿐히 내려앉은 듯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 4일 완도 항에서 승용차를 싣고 제주에 올 때까지 심정은 설렘 반 떨떠름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숙소를 향해 운전한 지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제주 항에서 4km 남짓 떨어진 제주종합경기장 옆을 지나치려는데 일순 눈이 환해질 정도로 만개한 벚꽃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왕벚꽃 자생지 제주에서 펼치는 새봄의 향연’이란 제목으로 제25회 제주왕벚꽃축제가 열리는 현장을 우연히 지나가게 된 것이지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차를 멈추고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왕벚나무 꽃과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유채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보라색과 자주색, 노란색, 흰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의 잔치를 벌이는 뚜껑별꽃. 수술의 노란색 꽃밥과 붉은색 잔털이 뚜껑별꽃의 매력을 배가하고 있다.

화란춘성(花爛春盛)이라고 했던가요. 제주의 4월엔 벚꽃과 유채만 만개하는 게 아닙니다. 풀이든 나무든 가릴 것 없이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꽃을 피우는 바람에 섬 전체에 꽃이 흐드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헌데 그러한 제주의 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야생화를 따로 만났습니다. 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꽃, 제주의 특산 야생화라 일컬을 수 있는 꽃, 하지만 너무 귀하지 않아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꽃, 바로 뚜껑별꽃입니다.

 

거무튀튀한 바위와 파란 하늘, 짙푸른 바다, 그리고 보라색 뚜껑별꽃이 환상적인 4중주를 연출하는 제주의 봄 바닷가 풍경.

해안이나 높지 않은 오름의 양지바른 풀밭에 주로 자생한다고 하는데, 제주에 도착한 다음 날 뜬금없이 ‘저지곶자왈’ 주차장 길섶에서 뜻밖에 첫 조우를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보라색에 넋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살펴보면서는 그 앙증맞은 생김새에 다시 또 기함했습니다.

도감 등에 따르면 제주도와 추자도, 전남의 일부 섬에 자란다고 하는데, 실제 자생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것은 제주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별꽃이니 쇠별꽃, 큰개별꽃 등 다른 ‘별꽃’들과 마찬가지로 뚜껑별꽃도 키가 다 자라봐야 30cm에 못 미칠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뚜껑별꽃은 석죽과에 속하는 다른 별꽃들과 달리 앵초과로 족보를 달리하는데, 키만 작을 뿐 꽃 색이나 생김새가 별꽃들과 같지 않은 까닭입니다. 특히 다섯 장의 꽃잎이 가지런한 꽃은 지름이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지만, 독특한 꽃 색을 내세워 보는 이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꽃잎 중앙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술과 암술 주위에 흰색과 자주색, 진보라색의 띠가 2, 3중으로 둘러쳐져 있어 노란색 꽃밥과 함께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5개의 수술대에는 붉은색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제주의 봄’을 상징하는 벚꽃과 유채꽃이 어우러져 봄날의 환희를 노래하는 ‘제주왕벚꽃축제’ 현장. 지난 4일 제주시 오라동 제주종합경기장 주변 벚꽃 명소의 모습이다.

 뚜껑별꽃은 전 세계적으로 24개 종이 온대와 열대에 분포한다는 것으로 미뤄 제주도 등 국내에 자생하는 1개 종은 대륙성 기후에 적응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남방식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열매가 익으면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꽃받침 가운데 부분이 갈라지고 뚜껑처럼 열려 뚜껑별꽃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꽃 색을 따서 보라별꽃으로, 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총총하게 핀다고 해서 별봄맞이꽃으로도 불립니다. 뚜껑별꽃이 활짝 핀 것을 보기 위해선 게으름을 피운다 싶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가가야 합니다. 학명 중 속명 Anagallis는 ‘해가 뜨면 다시 핀다.’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날이 저물면 꽃잎을 닫고 해가 중천에 올라올 즈음에야 다시 활짝 열기 때문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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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보다도, 새색시보다도 더 곱고 예쁜, 동강할미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04>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 T.C.Lee.

 

더없이 화창한 봄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불가역적인 봄입니다. 산에서는 변산바람꽃과 복수초와 너도바람꽃·노루귀·꿩의바람꽃 등의 야생화들이 꼬리를 물고 꽃봉오리를 활짝 터뜨리며 있습니다. 도심 아파트 화단에도 매화가 핀 지는 이미 오래. 뒤질세라 산수유와 개나리가 노란색 꽃물결을 일렁이더니 급기야 벚꽃과 목련마저 꽃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이 꽃동산으로 변해 가는 4월 초순, 급기야 산이 산을 껴안고 강이 강을 휘감아 도는 강원도 정선·영월 백운산 능선, 동강·조양강 가에는 동강할미꽃이 활짝 피어 전국의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어서 와서 알현하라.’ 호령합니다.

빙 둘러선 산과 굽이치는 강줄기를 마주 보고 있는 동강할미꽃. 하늘을 향해 고개를 곧추들고 붉디붉은 꽃잎을 활짝 열어젖힌 당당한 모습이 동강할미꽃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지난 3월 28일 산과 강에 둘러싸인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서 만났다.  

특히 영월·정선·평창 지역 사람들이 ‘뼝대’라 부르는 석회암 절벽 곳곳에 핀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은 ‘봄꽃의 여왕’이라 부를 만한 미모를 과시하며 첩첩산중 강원도의 힘을 한껏 뽐냅니다.  

 
 
 

고고한 흰색을 비롯해 보라색, 미색에 가까운 연분홍색, 진홍색 등 형형색색의 동강할미꽃. 다양한 꽃 색과 꽃잎만으로도 봄 최고의 야생화로 손꼽을 만하다.  

이른 봄 고고성을 울린 변산바람꽃이나 너도바람꽃·노루귀 등 손톱 크기의 자잘한 풀꽃에 비해 크기도 훨씬 클뿐더러 많게는 10여 송이가 무리 지어 핍니다. 꽃 색도 자주·보라·분홍·흰색 등 형형색색인 데다, 허리 숙여 땅을 보고 피는 할미꽃과 달리 하늘을 향해 고개를 곧추세우고 꽃망울을 활짝 터뜨립니다. 이른바 ‘6070 할머니’들이 한창 피어나는 ‘아이돌’을 향해 “나 아직 안 죽었어. 어디 한번 붙어볼 테야?” 외치며 황혼의 비장미를 불태우는 듯합니다.  

 

‘뼝대’라 불리는 석회암 절벽에 동강고랭이, 회양목 등과 함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동강할미꽃.

1997년 생태사진가 김정명 씨에 의해 처음 일반에 알려졌고, 3년 뒤 이영로 박사에 의해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의 한국 특산식물로 공인되었습니다. 동강할미꽃의 발견, 그리고 세계 식물학계의 한국 특산식물 인정은 결국 1990년대 논란이 된 동강댐 건설 백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환경론자들은 주장합니다.

백운산 자락 굽이치는 조양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에 자생하는 동강할미꽃. 아슬아슬한 광경에 차마 서서 다가가지 못하고 기어 기어서 다가가야 겨우 눈 맞춤할 수 있다.

어쨌든 해마다 3월 중순에서 4월 중순 사이 석회암과 맑은 물이 만나서 환상적인 에메랄드빛을 만들어내는 동강과 그 상류 조양강을 따라 걸으며 형형색색의 동강할미꽃을 만나보기 위해 해마다 전국에서 수백, 수천의 야생화 애호가들이 줄지어 찾아옵니다. 그 행렬을 보면서 동강댐이 건설돼 동강할미꽃 등 자연 생태계가 파괴됐을 상황을 상상해보면 참으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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