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하면서 향긋한 노란색 꽃, 생강나무 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3.28 >

 

                          

녹나무과의 낙엽 활엽 관목. 학명은 Lindera obtusiloba Blume var. obtusiloba.

“에이, 아무 꽃도 없구먼.”

지난 24일 강원도 화천 광덕산 등산로. 한참을 묵묵히 뒤따르던 지인이 끝내 참았던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복수초가 피었네,’ ‘변산바람꽃이 피었네,’ ‘너도바람꽃이 피었네.’ 등등의 요란한 꽃소식에 내심 쫓아만 가면 ‘꽃 대궐’을 보리라 기대했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봄꽃이 무더기로 피었다고 야단법석을 떨지만, 기실은 손가락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풀꽃들이 산기슭이나 골짜기 작은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피는 것이기에 무심코 지나는 이들에겐 한두 송이도 눈에 띄지 않기 십상입니다.  

 
이른 봄 높은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목본류인 생강나무. 강원도 정선 일대를 굽이굽이 흐르는 조양강을 배경으로 생강나무의 노란색 꽃망울이 벌어지고 있다.

 조금 뒤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것 좀 봐, 여기도 노란색 산수유 꽃이 피기 시작했네.”

섬진강변에 매화 꽃잎이 날리고, 지리산 자락에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남녘의 꽃소식을 신문·방송 등을 통해 익히 듣고 보아온 탓이라 짐작됩니다. 주변을 온통 파스텔 톤의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산수유 꽃물결이 워낙 인상적이니 노란색 꽃만 보면 무작정 산수유라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생강나무와 더불어 봄철 전국의 마을 주변 들녘을 파스텔 톤의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산수유. 최근에는 도심 아파트는 물론 빌딩 화단의 조경수로도 많이 심는다.

 “그건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 꽃이야. 이른 봄 산에서 가장 먼저 피는 나무 꽃…” 그러면서 지금은 읽은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을 들먹이며 집에 가서 확인해보라 일러줍니다.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같은 노란색 꽃을 피우지만, 꽃 모양은 다르다. 생강나무의 꽃(위)은 꽃자루 없이 줄기에 붙어서 뭉친 형태로 피는 데 반해, 산수유 꽃(아래)은 방사상으로 빙 둘러 난 20~30개의 꽃자루에 하나씩 달린다.

동백꽃과 점순이의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를 중의적으로 묘사한 마지막 대목은 과연 소설의 백미라 일컬을 만합니다.  

생강나무는 3~4월에도 눈이 내리곤 하는 산에서 꽃을 피우는 만큼 봄눈을 뒤집어쓴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춘천 출신의 소설가가 강원도 산골 17살짜리 점순이와 동갑내기 주인공의 순박한 사랑을 그리면서, 따듯한 남쪽 지방에서 주로 피는 동백꽃을 소재로 삼은 게 이상하다 생각해왔는데, 10년여 전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강원도에선 예전부터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 불러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백나무 열매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 대신 요긴하게 사용하면서 생강나무를 동백나무, 동박나무, 올동백 등으로 불러왔다고 합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는 정선아리랑의 올동백도,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란 가요 ‘소양강 처녀’의 동백꽃도 마찬가지로 생강나무 노란 꽃을 말합니다.

유용한 한약재인 빨간색 열매를 그대로 매단 채 노란색 꽃을 피운 산수유. 최근 값싼 중국산 산수유가 밀려들어오면서 수확을 포기한 산수유 열매가 많다고 한다.

산수유나 생강나무는 개나리가 미처 피기 전 전국의 산과 들을 노랗게 물들이는데, 대체로 산에 피는 건 생강나무요, 마을 주변에 피는 건 산수유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강나무는 자생하지만, 유용한 한약재인 산수유는 오래전부터 일부러 심고 가꿔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강나무의 꽃과 잎 등에선 산수유와 달리 김유정의 표현대로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향이, 톡 쏘는 생강 맛이 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3.28 >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해제된 비밀문서 같은 서해 '꽃섬', 풍도의 야생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3.21> 

 

야생화 애호가들 사이에 꽤 오랫동안 제 이름이 아닌, 보통 명사 서해 ‘꽃섬’으로 불려온 야생화의 천국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찾는 발걸음을 줄여 자생지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나름대로의 선의가 담긴 고육책이었다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란 옛말도 있듯 누구든 한 번 보면 대번에 반할 수밖에 없는 천상의 꽃밭에 대해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까지 등장함으로써 국내 최고의 야생화 자생지 중 하나로 전 국민에게 각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해 ‘꽃섬’ 풍도를 대표하는 풍도바람꽃.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꽃받침 잎과 깔때기 모양의 진한 녹색의 꽃잎, 수술과 암술을 갖추었다.

바로 안산시 단원구에 속한 풍도(豊島)입니다.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풍도는 섬 둘레 5.4㎞, 전체 면적 1.84k㎡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현재 82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섬을 드나드는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하루 1회 여객선이 왕복 운항할 뿐입니다. 오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나 대부도 방아머리항을 거쳐 낮에 풍도에 닿았다가 돌아오는 게 다이기 때문에 야생화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최소한 1박을 해야 합니다. 다만 3월이면 야생화를 찾는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오면서 단체로 낚싯배 등을 빌러 아침 일찍 섬에 들었다가 오후에 나가기도 합니다.  

인터넷 야생화 동호회 ‘산에들에야생화’ 회원들이 15일 풍도 후망산 야생화 탐사에 나서고 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봄바람이 불던 지난 15일. 인터넷 야생화동호회 ‘산에들에야생화’(http://cafe.daum.net/lovewildflower777) 회원들과 함께 안산시 단원구 탄도 선착장에서 전세 낸 낚싯배에 올랐습니다. 먹거리를 던져달라고 달려드는 갈매기 떼에 눈길을 주며, 녹록치 않은 바닷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과연 꽃들은 제대로 피었을까 생각하는 사이 배는 풍도 선착장에 도착합니다. 풍도의 야생화 탐사는 선착장을 내려다보는 비탈면에 형성된 마을 뒤 해발 177m의 후망산을 오르면서 시작됩니다.

 

풍도의 또 다른 특산식물인 풍도대극.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산비탈에 무더기로 피어있다. 수술과 털이 수북한 씨방 등 풍도대극 꽃의 진기한 모습.  

오르막 길섶에는 벌써 광대나물과 별꽃, 개지치 등 작은 풀꽃들이 깨알 같은 꽃송이를 하나둘 열고 있습니다. 마을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복수초가 건배라도 하듯 황금 잔을 여럿 모은 채 길손을 맞이합니다. 해제된 비밀문서의 페이지마다 귀중한 ‘1급 정보’들이 가득하듯 후망산 오솔길마다, 산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희귀 야생화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고목의 넉넉한 품에 안긴 복수초.  

원래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 했지만, 1894년 청일전쟁의 시발이자 일본이 청나라 함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둔 ‘풍도해전(豊島海戰)’을 기념하기 위해 섬을 불법 점거한 일본이 ‘풍도(豊島)’로 고쳐 불렀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봄 섬 전체가 야생화 군락지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들이 풍성하게 피지만, 다른 곳에 없는 고유종을 2개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일품인 노루귀의 앙증맞은 모습.

 종전에 변산바람꽃으로 구별 없이 불리다 깔때기 모양의 꽃이 크고 형태가 다소 다른 점이 인정돼 2009년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분류됐고, 2011년 정식으로 명명된 ‘풍도바람꽃’이 그 하나요, 붉은대극과 유사하지만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한다고 해서 ‘풍도대극’이라 불리는 대극이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광대나물과 말냉이, 제비꽃, 꿩의바람꽃이 풍도의 봄 꽃밭을 풍성하게 꾸미고 있다.

3월 풍도에는 이 밖에도 뽀송뽀송한 솜털에다 꽃송이가 귀엽고 앙증맞은 분홍색과 보라색, 흰색 등 3색의 노루귀, 흰색의 수술이 보석처럼 빛나는 꿩의바람꽃, 제비꽃, 중의무릇이 여기저기서 삐쭉삐쭉 돋아나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행한 ‘산에들에야생화’ 회원들은 “1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는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났었다.”면서 “처음과 비교할 때 10분이 1 정도로 군락지가 줄어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쉬워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3.21>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

불두(佛頭) 닮은 꽃 방망이로 꽃샘추위를 내치는 앉은부채!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3.07> 

학명은 Symplocarpus renifolius Schott ex Miq.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아니, 이게 정말 꽃이 맞아요?”

“무슨 꽃이 이렇게 생겼을까!”

“꽃잎은 어디에 있나요?”

처음 대하는 이는 누구나 익히 알던 꽃과는 다른 형태에 놀라워하는 꽃이 있습니다. 그리곤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는 동시에 ‘앉은부채’라는 이름을 자연스럽게 그럴듯하다고 받아들입니다.

 
광배(光背)를 닮은 꽃 덮개와 불두(佛頭)를 닮은 육수꽃차례가 활짝 드러난 앉은부채. 경기, 강원 지방에서도 2월 말~3월 초면 추위를 물리치고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앉은부처’로 잘못 알아들었음을 뒤늦게 깨닫고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한가운데 도깨비방망이같이 생긴 게 일견 불두(佛頭)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그런 이름이 연유했다고 이해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뭔 이야기인지 설명해달라고 채근합니다.

 
 
불염포라 불리는 꽃 덮개 안에서 농익어가는 육수꽃차례. 도깨비방망이에 꽃잎과 수술, 암술이 달려 있다.

말머리에서 밝혔듯 앉은부채는 먼저 독특한 꽃의 형태로 눈길을 끕니다. 처음 꽃잎으로 오인하기 십상인 자갈색의 타원형 이파리는 불염포라 불리는 꽃 덮개입니다. 그 안에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육수(肉穗)꽃차례라고 불리는 꽃 덩어리인데,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 방망이의 조각조각이 4장의 꽃잎과 4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갖춘 각각의 꽃송이인 셈입니다. 부처의 광배(光背)를 닮은 꽃 덮개, 역시 부처의 머리를 닮은 육수꽃차례로 인해 ‘명상에 잠긴 부처’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또 ‘앉은부처’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원래는 꽃이 진 뒤에 무성하게 나는 잎이 부채처럼 넓다고 해서 앉은부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겨울 눈과 얼음의 바다에서 뾰족한 불염포를 지느러미인 양 곧추세우고 서 있는 앉은부채.

그런데 앉은부채가 정말로 눈길을 끌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인한 생명력에 있습니다. 한겨울 눈 덮인 산골짜기에서 만나는 앉은부채는 마치 백상아리가 등지느러미를 곧추 세우고 망망대해를 유영하듯, 꽃 덮개를 뾰족뾰족 세우고 차디찬 얼음과 눈의 바다를 의연하게 관망합니다.  

 
눈에 갇힌 앉은부채, 그리고 눈 속에서 더 돋보이는 앉은부채의 육수꽃차례.

꽁꽁 언 땅속에 1m 넘게 뿌리를 내리고, 그 깊고 깊은 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얼음 구들을 녹이면서 꽃눈을 틔워 독특한 모양의 꽃을 피우는 앉은부채의 놀라운 생명력은 경이 그 자체입니다. 강원도에선 겨울을 이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운 뒤 부채처럼 넓은 잎을 펼치다 보니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 가장 먼저 먹는 풀이라고 해서 곰풀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또 지방에 따라 삿부채, 우엉취, 취숭(臭崧)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유독성 식물로 잎은 풍성하지만 먹을 수 없다고 하여 ‘호랑이 배추’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한 야산 앞에 서 있는 앉은부채 자생지 안내 표석.

꽃 덮개가 노란 앉은부채의 경우 정명은 아니지만 ‘노랑앉은부채’로 불리는데, 어쩌다 귀하게 만난 노랑앉은부채를 보고 있노라면 염화시중의 미소로 겨울을, 꽃샘추위를 저만치 물리치는 듯한 따스함을 느끼곤 합니다. 

 
‘명상에 잠긴 부처’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노랑앉은부채’ 모습.

학명 중 속명 Symplocarpus는 결합한다(symploce)와 열매(carpos)라는 그리스어 합성어로 씨방이 열매에 붙어 있다는 뜻, 종소명 renifolius는 콩팥 모양의 잎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전국에 분포하는데, 수도권 인근에선 천마산이 자생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의 한 작은 산 입구에는 앉은부채 자생지라는 안내 표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곶자왈의 향(), 백서향!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2.1> 

 

학명은 Daphne kiusiana Miq. 팥꽃나무과의 상록 활엽 관목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말이 있듯 눈 폭탄과 강추위가 제아무리 기승을 부린들 오는 봄 막을 수 있을까요. 아직 눈 덮인 한라산이 두 눈에 가득 찬 2월 초이지만 겨울나무 사이로 오고 있는 봄의 향기는 이미 곶자왈에 가득 번져 있습니다. 각각 숲과 자갈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 ‘곶’과 ‘자왈’이 합쳐진 곶자왈은 용암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요철(凹凸) 지형으로, 녹나무 등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 콩짜개덩굴 등 양치류 등이 공존하는 원시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 이미 1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는 백서향(白瑞香)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제주의 봄은 곶자왈에 번지는 그윽한 백서향의 향기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순백의 신부가 두 손 모아 잡고 있는 부케를 똑 닮은 백서향. 제주 곶자왈에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특산식물이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이란 노랫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백서향 꽃은 키 1m 안팎의 늘 푸른 활엽 관목 가지 끝에 마치 신부의 부케처럼 다닥다닥 달리는데, 그 향기는 온 숲을 뒤덮을 만큼 강렬합니다. ‘꿈속의 사랑’이란 꽃말처럼 맑은 듯하면서도 강하고, 은은한 듯싶으면서도 깊고 그윽하고, 달콤한 듯하면서도 시원한 백서향 향기를 잊지 못해 매년 제주 숲을 찾는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늘 푸른 활엽 관목인 백서향이 한겨울 꽃송이를 가득 달고 곶자왈 숲에 서있다.

당초 자주색 꽃이 피고 상서로운 향기가 난다는 중국 원산의 서향(瑞香)과 달리 흰색 꽃이 핀다고 해서 백서향이라고 불렸는데, 둘 다 그 향이 천 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향’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1월 중순 한두 송이씩 피기 시작하는 백서향. 단 한 송이만 피어나도 그윽한 향이 온 숲에 가득 번진다.

   

백서향은 우리나라 거제도 등 남해안과 제주도에 자생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규슈 지방에서 처음 탐사됐음을 뜻하는 종소명(種小名) ‘kiusiana’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주에서 자라는 백서향은 ‘제주백서향’(Daphne jejudoensis M. Kim)이라는 별도의 종으로 봐야 한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제주백서향은 꽃받침통과 열편(꽃잎이 펼쳐진 부분)에 털이 없고 긴 타원형 잎을 가지며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에서 자생하는 반면, 백서향은 꽃받침 통과 열편에 털이 있고 도피침형 잎을 가지며 남해안에서 자라는 점에서 두 종이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요. 2013년 우리나라 식물분류학회지에 실린 이 논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면 제주백서향은 우리나라의 고유식물, 제주도 곶자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특산식물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 끝에 방사상으로 가득 달린 백서향 꽃송이. 막 피기 시작한 꽃송이를 달고 선 모습이 도도하고 고고하다.

   

동쪽으로는 동백동산으로 유명한 선흥곶자왈과 김녕곶자왈 일대, 서쪽에서는 저지곶자왈과 안덕곶자왈 일대가 대표적인 자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백서향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던 곶자왈에서 최근 무단 도채로 인해 개체수가 줄고 자생지가 크게 좁아지고 있어 강력한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가지 끝에 수십 송이씩 달리는 제주백서향은 처음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해 만개하기까지 한 달 넘게 걸립니다. 백서향이 자생하는 곶자왈은 2월 내내, 아마 늦은 3월까지 긴 기간 찾는 이의 오감을 행복하게 만드는 힐링의 숲이 될 것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생지 묻지 말라 전해라'는 해오라비난초!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1.25>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학명은 Habenaria radiata (Thunb.) Spreng.

짧지만 강한 추위가 유난스러운 겨울입니다. 동백꽃과 제주의 수선화 등 엄동설한에 피는 야생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겨울 꽃 타령을 하자니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도 한편에서 고개를 듭니다. 그 와중에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그 반대랄 수 있는 한여름 삼복더위에 피는 해오라비난초를 소개해보자는 것이지요. 무더위를 떠올리며 살을 에는 강추위를 이겨내 보자는 취지입니다.

철망 넘어 비상을 꿈꾸는 해오라비난초. 자생지 훼손을 걱정하는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철망을 두른 한 자생지에서 해오라비난초가 꽃잎을 활짝 열고 멋진 날갯짓을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야생난초 중 백미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관상 미가 뛰어나기에, 다시 말해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숱한 이들이 달려들어 자생지가 순식간에 파괴되기 일쑤여서 제철에는 내놓고 공개하기가 저어되기에 지금이 해오라비난초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알리는 적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피어난 해오라비난초. 새들이 군무를 하듯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해오라비난초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분명 한낮 카메라에 꽃을 담아 왔는데, 그날 저녁 사진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기니 모니터 안에서 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그것도 명품 고려청자 매병에 새겨진 학을 똑 닮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우아하게 춤을 춥니다. 해서 “하~ 알 수 없는 조화로다”라고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거무튀튀한 해오라기의 박제된 모습. 흰색 꽃의 해오라비난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해오라비난초는 중, 남부 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꽃을 피웁니다. 7~8월 그늘 한 점 없는 습지에서 날아오를 듯 순백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되받아칩니다. 지독하게도 여름을 좋아하고, 당당하게 여름을 이겨내는 멋진 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지독한 폭염도 맞서 이겨내건만, 사람의 손길·발길만은 피하지 못합니다. 몇 해 전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줄지어 찾았던 자생지를 그 다음 해 다시 찾아갔는데, 단 한 송이의 꽃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꿈속에서도 만나고 싶소’라는 꽃말처럼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자생지도 개체 수도 많지 않고 사람의 손을 타기 십상이어서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가 단위 멸종위기종 A급으로 분류되어 있을 만큼 각별한 보호가 요구되는 희귀종입니다.  

 
 
해오라비난초의 환상적인 날갯짓. 보면 볼수록 꽃의 형태가 식물이라기보다는 조류에 가깝다

애초 해오라기(해오라비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새를 닮았다고 해서 해오라비난초라고 불렸을 텐데, 정작 해오라기가 백로(白鷺)과의 새이기는 하지만 머리와 등이 검고 통통한 게 흰색 꽃의 해오라비난초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온몸이 희고 날렵한 백로가 아닌 ‘해오라기’가 이름에 붙은 연유가 선뜻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호박꽃이든 그 어떤 꽃이든 세상에 나온 모든 식물마다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저만의 고유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그렇게 믿으려 애써 왔건만, 혼이 빠질 만큼 황홀한 해오라비난초의 만개한 꽃을 보는 순간,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예쁜 꽃은 없다. 최고!”라는 탄성을 절로 내뱉곤 합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1.25>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초록버드나무 2016.03.02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아~~~진기명기~~꽃이름도 절묘합니다

겨울 제주의 하늘과 땅을 노래하는 유채 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1.18> 

 

십자화과 두해살이풀로 학명은 Brassica napus L. 유럽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전역과 남부 해안에서 자란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라 일컬어 왔습니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은 섬이라는 뜻이지요. 이 중 지금도 제주도를 찾는 외지인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게 바로 바람과 돌입니다. 공항이든 항구든, 그 어디서부터 제주를 만나기 시작하든지 올려다보면 한라산이, 내려다보면 짙푸른 바다가 보입니다. 그리고 집이든 밭이든 농장이든 그 무엇의 경계가 되고 있는 숱한 돌담장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검은색 현무암 돌담과 돌담 사이에 노랗게 피어난 유채 꽃. 하늘은 검고 땅을 누렇다는 천자문 첫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때 보이는 돌은 육지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제주도만의 돌, 즉 검은 현무암입니다. 구멍이 숭숭 나고 거무튀한 돌, 그 화산석이 제주도를 그 어느 곳과도 다른 이국적인 섬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노란 유채 꽃밭과 파란 바다, 그리고 잿빛 겨울 하늘이 어우러져 시야가 탁 트이는 시원한 풍광을 만들어내는 서귀포시 대정리 벌판.

그런데 겨울과 봄 제주도 현무암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꽃이 있으니 바로 유채 꽃입니다. 한 중산간 마을을 지나는 올레길을 걷다가 현무암 돌담과 돌담 사이, 앙상한 ‘겨울나무’ 아래 노랗게 핀 유채 꽃 무더기를 만나 흔치 않은 묵직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천지현황 (天地玄黃 · 하늘은 검고 땅을 누렇다)”이라고 하던가요.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이 절로 떠오르며 올레길을 걷는 내내 하늘과 땅,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한 산간마을 다락 밭에 마침 조명이 비치듯 빛이 내리쬐니 손바닥만 한 유채 꽃밭이 광채가 난다.

1970~80년대 대표적인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도, 그곳을 찾은 신혼부부들이 담아온 대표적인 사진이 바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삼아 유채꽃 사이에 정답게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듯 오랜 세월 제주의 봄꽃을 대표해온 유채는 그러나 우리나라 토종 식물은 아닙니다. 다만 1643년 발간된 <산림경제>에 운대(蕓薹)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묵정밭에 핀 유채 꽃. 선인장이 호위하듯 둘러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란 역사가 400년은 족히 될 터이니, 토종이니 외래종이니 따져서 차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식물학자인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동의보감>에는 ‘평지’란 한글 이름으로 소개됐고, 여기저기 살며 그 씨로 기름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고귀화식물(古歸化植物 · Archeophyten)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한국식물생태보감 1>). 유럽 원산의 유채가 이미 17세기 초 ‘평지’란 한글명까지 갖춘 생활 속 자원식물로 우리 국민들과도 친숙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현재 제주도와 남해에서 널리 재배되기도 하고 하천이나 해안 등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는 유채는 1960년대 대대적인 식용류 생산을 위해 우장춘 박사가 일본의 개량종을 들여다 대거 보급한 것입니다.

산방산과 유채 꽃.

최근 유채기름에 대한 인기가 시들하면서 기름채취용 재배단지는 크게 줄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아예 기념사진 촬영용으로만 활용하기 위해 소규모로 관리하는 단지가 있기도 합니다. 대신 하천부지 등을 이용해 대대적인 재배 단지를 꾸며 지역축제 등에 활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길가 돌담 아래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유채 꽃. 재배한 대단지 꽃밭보다 자연스런 풍치가 있다.

그 결과 남지유채꽃축제, 구리유채꽃축제, 낙동강유채꽃축제, 서래섬유채꽃축제 등이 전국에서 열리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고사한 다량의 식물체가 하천수의 부영양화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생태적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겨울 저 홀로 푸름을 자랑하는 겨우살이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1.11>

 

학명은 Viscum album var. coloratum (Kom.) Ohwi. 겨우살이과의 상록 활엽 관목.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날이 추워져야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늘 푸르다는 걸 알게 되듯, 겨울이 되어야 존재가 드러나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겨우살이입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시인의 외침에 응답하듯 무성하던 ‘나무껍데기’가,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저 나무 꼭대기에서 사시사철 고고하게 자라는 겨우살이가 겨우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이때 보이는 것은 꽃이 아니라 늘 푸른 잎과 줄기, 그리고 연노랗거나 붉은 열매입니다.  

 
 
연두색 줄기와 이파리, 진홍색 열매가 다닥다닥 붙은 붉은겨울살이의 탐스런 모습.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서 담았다

이 시기 짙푸른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겨우살이 열매를, 흰 눈이 겨우살이 위에 가득 쌓인 멋진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열성적인 야생화 동호인들은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겨울 산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정작 한창 봄이 무르익는 4월경 가지 끝에 노란색으로 피는 꽃은 크기가 자잘한데다, 숙주인 큰 나무에 돋아난 큰 이파리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야생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조차도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초록색 줄기와 이파리, 그리고 붉고 탐스러운 열매가 돋보이는 붉은겨울살이. 한라산에서 만났다.

 다른 나무와 풀들이 생명 활동을 거의 멈춘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겨우살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다른 나무에 기탁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하는 겨우살이. 스스로도 광합성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다른 나무에 기생해서 물이나 영양분을 빼앗아 생장하는 반기생식물로서 땅에 뿌리를 내려 보지 못한 채 평생 공중에 떠서 살아가는 가련한 식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겨울 저 홀로 푸름을 자랑하는 특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등의 능력을 가진 영초(靈草)라 해서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겨우살이 아래를 지나가면 행운이 온다거나, 그 아래서 입맞춤을 하면 결혼을 하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축하파티가 열리는 방 문간에 겨우살이를 걸어놓는 등의 풍습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한여름 참나무의 푸른 이파리에 둘러싸여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겨우살이. 경기도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보았다

국내에 자생하는 종은 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동백겨우살이, 붉은겨울살이, 참나무겨우살이 등 모두 5종. 전국에 분포하는 겨우살이는 참나무 밤나무 팽나무 물오리나무 등에 기생하는 늘 푸른 활엽 관목으로 한겨울 앙상한 가지 위에 까치집 모양으로 등장합니다. 겨우살이의 열매는 노란색인 데 반해, 한라산과 내장산, 가야산 등지에서 자라는 붉은겨울살이는 이름그대로 붉은색 열매가 돋보입니다. 남쪽과 제주도의 동백나무에서 자생하는 동백겨우살이는 가늘고 작은 선인장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밤나무와 참나무에 기생하는 꼬리겨우살이는 다른 겨우살이와 달리 겨울이면 잎이 지고 노란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낙엽 활엽 관목입니다.  

 
 
지난 1월 3일 경기도 철원의 한 야산에서 만난 겨우살이. 무성한 푸른 잎과 풍성한 노란색 열매들이 멀리서 보면 전형적인 까치집의 모습이다.

겨우살이의 번식은 새들을 통해 이뤄집니다.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높은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겨우살이의 열매는 새들에겐 최상의 먹잇감이 됩니다. 그런데 그 열매엔 끈적끈적한 점액이 가득 들어 있어, 새들은 열매를 먹을 때 부리에 붙은 점액을 다른 나무의 껍질에 비벼서 닦게 됩니다. 이때 끈끈한 점액에 묻어 있던 씨앗이 나무껍질에 달라붙어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되는 것입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눈 속에서, 얼음 사이에서 피는 '봄의 전령사', 복수초!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6.01.04>

 

 학명은 Adonis amurensis Regel & Radde.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일주일새 달력의 숫자가 2015에서 2016으로 바뀌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었지만 엄동설한의 추위는 여전합니다. 몸이 움츠러들면서 꽃이 피는 봄이 간절히 기다려집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새벽은 오고, 북풍한설 중에도 봄은 잉태되어 있습니다. 동작 빠른 꽃들은 이미 꽃송이를 활짝 열 채비를 갖추고 택일만 미루고 있을 것입니다.  

복수초가 ‘눈색이꽃’이라는 별칭처럼 눈 속에서 활짝 피어 2016년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그 동작 빠른 꽃 중에 첫손가락을 꼽을 게 바로 복수초(福壽草)입니다. 여러 이름 중 원일화(元日花)니 원일초의 원일이란 바로 새해 첫날을 의미하니 새해 가장 먼저 피는 꽃이란 뜻이겠지요. 실제 강원도 동해시 냉천공원 산비탈에는 제주도보다도 이른 1월 초부터 복수초가 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석회암 동굴지대의 따듯한 지형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눈이 오고 녹고, 다시 날이 추워지면서 얼고, 그렇게 만들어진 빙판 한가운데 복수초가 피면, 그때 이름은 ‘얼음새꽃’이 된다.

이처럼 발 빠른 복수초에 대해 이오장 시인은 “눈에 덮여 숨소리 들리지 않는다고 돌아서지 마세요//… 햇살 가늘다고 비켜나지 마세요/ 불꽃 한 가닥으로 지운 어둠/ 다시 깃들지 못합니다// 가장 일찍 피어나/ 기나긴 숨결로 봄을 여는 나를/ 문 앞에서 잊지 마세요”라고 노래합니다.  

전남 여수의 금오산 자락에서 만난 가지복수초. 크고 화려한 꽃이 피는 것과 동시에 연두색 잎이 무성하게 난다.

복수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핍니다. 다만 꽃과 잎, 가지 등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서너 종으로 나뉘는데, 제주도 숲 속에서 자생하는 꽃은 잎이 가늘게 갈라진다고 해서 세(細)복수초로 불립니다. 남부와 서해 도서 지역에서 피는 복수초는 경기·강원 등지에서 만나는 복수초에 비해 꽃의 크기가 갑절 이상 크고 화려합니다. 게다가 꽃이 피는 것과 동시에 잎도 무성하게 자라납니다. 이른바 가지복수초입니다. 그리고 중·북부지역 높고 깊은 산에서 피며 꽃 크기가 아주 작은 애기복수초가 있습니다. 복수초나 애기복수초는 잎이 나기 전 꽃이 먼저 핍니다.  

서해에서 ‘꽃섬’으로 널리 알려진 풍도에서 만난 가지복수초.

제주와 냉천공원을 빼고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곳은 완도수목원. 1월 중순쯤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황금색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1보가 전해집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500여km 떨어진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서는 일러야 2월 말에나 복수초가 피니 결국 봄은 하루 15~20km 정도의 속도로 아장아장 북상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경기도 연천 지장산에서 피는 복수초. 세복수초나 가지복수초와 달리 꽃이 핀 뒤 며칠 지나야 잎이 나온다.

활짝 핀 복수초는 마치 형광물질을 뿜어내는 듯 강렬합니다. 실제 복수초 꽃 속의 온도가 바로 옆 50cm 떨어진 곳보다 7도 이상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꽃도 전초도 작은 애기복수초

복 받고 오래 살라는 한자명 복수초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얼음과 눈 속에서 피어난다는 뜻을 담은 얼음새꽃이나 눈색이꽃이란 우리말 이름이 더 예쁩니다.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련(雪蓮)이라고도 부릅니다.  

 
황금색 수술이 유난히 눈에 띄는 복수초, 복수초.

제주나 남쪽 지역에서 1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경기·강원 깊은 산에선 5월 초까지도 피니 개화 기간이 5개월 가까이 됩니다. 참으로 긴 세월 피고 지는 봄 야생화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추사가 사랑한 제주 몰마농꽃, 수선화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5.12.28>

 

 학명은 Narcissus tazetta var. chinensis Roem.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

겨울철 이상 고온으로 지구촌 곳곳에 초봄같이 따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페루 칠레 연안의 해수 온도가 주변보다 2~10도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가져온 결과라고 합니다. 어찌 됐던 난데없는 난동(暖冬)으로 미국 워싱턴에서도, 독일 드레스덴에서도 벚꽃이 만개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중 영국 런던의 올림픽공원에서 피었다는 노란색 수선화의 화사한 사진이 제 눈엔 가장 인상적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해변에 피어 있는 수선화. 자주색 열매는 백년초라 불리는 제주도 자생 선인장 열매다. 왼쪽에는 산방산이, 가운데 뒤로는 눈 덮인 한라산이, 오른쪽에는 짙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에 뿌리내렸다

그런데 지구촌 이상 난동의 한 증거인 수선화가 우리 땅 제주에선 해마다 한겨울 어김없이 피어나 ‘따듯한 남쪽 나라’를 실감케 합니다.

“마을마다 동네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다. (제주의) 수선화는 과연 천하의 큰 구경거리다.” 160여 년 전 제주에서 8년 3개월간이나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는 제주 들녘에 흔하게 피는 수선화를 각별하게 아끼며, 뭍에 있는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맑고 깨끗한 향이 벼루에 떠돌고 편지지에 스밀 듯’ 그윽한 수선화 향을 전하곤 했습니다. 특히 평생지기였던 벗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선, 매화가 고상하다고는 하지만 뜰을 넘지 못하는데 “정월 그믐에서 2월 초 피기 시작한 수선화는 3월이 되면 산과 들, 밭두둑에 흰 구름이 깔린 듯, 흰 눈이 장대하게 쌓인 듯” 피어난다며 세세하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몰마농꽃이라고 불리는 제주 토종 수선화. 꽃대 하나에 꽃이 여러 송이 달리고, 속 꽃잎도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그러면서 추사는 “그런데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이(수선화가) 귀한 줄을 몰라서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발로 밟아버리기도 합니다. 또 보리밭에 많이 나는 까닭에 마을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호미로 캐어버리고는 하는데, 캐내도 다시 나기 때문에 마치 원수 보듯 한다.”고 적었는데, 이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수선화가 이미 160여 년 전에 원예종이 아닌, 야생식물이자 자생식물로 제주도 전역에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잔옥대라 불리는 흰색 꽃받침의 수선화와 짙은 황금색 부화관에 꽃받침까지 노란 수선화.

 제주도에는 피는 수선화는 두 종입니다. 하나는 꽃이 크고(몰) 속 꽃잎이 마늘(마농) 뿌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제주도 방언인 ‘몰마농꽃(사진)’이라고 불리는 수선화입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유배지 탱자나무 돌담 아래 핀 금잔옥대.

또 다른 수선화는 흰색 꽃받침 위에 황금색 부화관이 동그랗게 자리 잡은 게 마치 흰 쟁반(옥대)에 황금 술잔(금잔)이 앉은 것 같다고 해서 금잔옥대(金盞玉臺)라 불리는 것입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기념관 내 추사동상 앞에 사시사철 놓여있는 수선화 조화.

여기에 황금색 부화관은 물론 꽃받침 잎까지 온통 모두가 노란색 일색인 원예종 수선화도 종종 눈에 띕니다. 영국 런던의 올림픽공원에서 피었다는 노란색 수선화와 같은 종입니다.  

제주도 한 중산간 마을과 너른 밭을 배경으로 활짝 핀 토종 수선화 몰마농꽃.

한편 추사는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가지가 많게는 10여 송이에 화피 갈래 조각이 8~9개에 이른다”는 설명과 함께 노란색 부화관과 속 꽃잎이 여럿으로 갈라지는 그림을 남겨 당시 제주도에 자생하던 수선화가 몰마농꽃이었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끝>

 

**편집자 주 : 2015년 12월 21일부터 인터넷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에 '김인철의 야생화 기행'이란 이름으로 연재 중인 야생화 컬럼을 업다운뉴스 측의 양해 아래 전문 재게재합니다. 본 컬럼의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본인과 업다운측에 있습니다.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겨우 내내 피고 겨우 내내 후드득 지는 핏빛의 붉은 꽃, 동백꽃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 2015.12.21>

 

동백꽃 = 차(茶)나무과의 상록 활엽 소교목으로 학명은 Camellia japonica L. 개화 11월~다음 해 4월/결실 9~10월/높이 2~6m(드물게 10m까지 자란다)

남녘의 꽃 동무에게서 기별이 왔습니다. 핏빛보다 붉은 동백꽃이 피었다고 말입니다. 그 동백꽃이 후드득 지기 전에 한번 다녀가라고 말입니다. 찬바람이 불자 ‘이제는 꽃 볼 일 없다’며 카메라마저 한편으로 밀쳐놓고 넋 놓고 살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뜻 듭니다.  

전남 강진 다산초당 앞에 핀 동백꽃. 정약용도 핏빛의 동백꽃을 보며 가야할 때 가차 없이 지는 선비의 절개를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그렇지. 동백꽃이 있지. 겨우내 피고 지는 동백꽃을 잊고 있었다니~.’

그럼에도 선뜻 길을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소임을 다한 꽃송이가 제아무리 미련 없이 가차 없이 한순간에 진다고 해도, 모든 동백꽃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따스한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3, 4월까지 긴긴 세월 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걸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서귀포 이중섭박물관 앞마당에 핀 흰색의 동백꽃. 한라산에서 자라는 야생 동백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잣나무나 측백(側柏)나무처럼 잎이 푸른 나무라는 뜻의 동백(冬柏)나무는 중국과 일본 타이완에서도 자라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를 비롯해 오동도와 거문도 등 남해 섬과, 동으로는 울릉도, 서로는 대청도와 백령도 등 섬 지역에 특히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내륙에서는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충남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숲 등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합니다. 이름난 군락지는 아니어도 충청 이남의 웬만한 산사(山寺)에 가면 그 주변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방화림(防火林)에 적합한 상록활엽수로서 활용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수 등 남쪽지방과 제주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원예종 애기동백꽃. 일본 고유종인 애기동백나무의 개량 품종이다.  

꽃 동무가 11월 하순 개화(開花) 소식을 전해온 동백꽃은 전남 영암 월출산 무위사 골짜기에 핀 것이지만, 한겨울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을 손쉽게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아마 제주도일 것입니다.  

특히 훌쩍 비행기 타고 갈 게 아니라 내륙에서 가장 남쪽인 완도까지 내려가 배를 타고 건너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겁니다. 완도로 접어드는 길 도로에 즐비하게 늘어선 동백꽃을 보면 잘 왔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 꽃은 아마 상상했던 꽃과는 다소 다를 것입니다. 연분홍 꽃잎이 활짝 뒤로 젖혀지고, 시든 꽃송이들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가지에 그대로 달려 있습니다. 입한춘(立寒椿)이라는 이름의 조경용 동백나무 꽃입니다. 산다화(山茶花)라고도 불리는 일본 고유종 애기동백나무의 원예종 품종인데 우리나라 남부 지역과 제주도에서 조경용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동백꽃봉오리.

이제는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된 올레길 걷기가 한겨울엔 동백꽃을 완상하는 최고의 길이 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숲과 골짜기, 마을과 골목을 찬찬히 걷다 보면 키가 10m 이상 되는 자연 상태의 동백나무는 물론, 수십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룬 군락지, 나지막한 현무암 담장 위에 올라앉은 분재형 동백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동백나무와 붉은 꽃송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서는 한라산 자생 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는 흰동백나무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흰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처럼 후드득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

동백나무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입니다. 벌 나비가 거의 없는 한겨울이나 이른 봄 꽃이 피기에, 곤충보다는 새들에 의지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지요.  특히 새는 사람의 눈처럼 붉은색을 붉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새들도 붉은색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동백꽃은 이런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붉게 더 붉게 타오른다는 것입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농밀한 꿀을 빨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 새들 중 하나인데, 그 이름도 동백나무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동박새보다 직박구리가 동백꽃을 탐하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띕니다.

제주에서 돌아오는 길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을 들렀습니다. 그리고 초당 바로 옆 연못가에 핀 동백꽃 몇 송이를 보았습니다. 

예로부터 숱한 시인 묵객들이 절정의 순간 미련 없이 지는 동백꽃을 칭송한 그 뜻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비록 현실은 비루해 실행에 옮기지 못할지언정, 선비의 곧은 절개만은 가슴에 품고 싶다는....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편집자 주 : 2015년 12월 21일부터 인터넷 업다운뉴스(updownnews.co.kr)에 '김인철의 야생화 기행'이란 이름으로 연재 중인 야생화 컬럼을 업다운뉴스 측의 양해 아래 전문 재게재합니다. 본 컬럼의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본인과 업다운측에 있습니다.    

Posted by atom7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