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살아서 만나리.......

 

에필로그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23>

21일이었던가?
혹은 하루였던가?
길고 긴 시베리아대륙횡단열차 여행이 드디어 끝났다.

여행은 낯선 나를 찾아 떠나는 험로이며,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공감하고
그 속에서 잊혀진 나를 발견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모스크바 역이었던가?
광장 한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생생하면서도 가슴 시린 동상.
전장으로 떠나는 병사와 그를 보내는 여인...
서로를 애절히 바라보는 눈에서 사랑의 불꽃이 튄다.

이 병사가 무사히 돌아왔는지
아니면 어느 참호에서 처참하게 산화했는지는
아쉽게도 알지 못한다.
단지,
무사히 여인에게 돌아왔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사랑을 영원히 이어갔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도 아니다.
살아있음이 가장 중요하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여, 세상을 살아라! 온힘을 다해 정열적으로!

“나는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여행하는 사람, 한 개의 편로(遍路)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당신들인들 그 이상이겠는가.” - 괴테

기타를 연주하는 김만영. 그가 들려주는 노래는 ‘러브 스토리’와 ‘아리랑’. 어떤 노래이든 여행객을 즐겁게 해준다.  Ⓒ김인철
플루트를 연주하는 유선이 창신대 교수Ⓒ김인철
달 앞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참가대원. 낯선 땅에서 한국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김인철
달을 끌고 가는 멋진 남자는 허강 중부대 교수. 그가 만든 달은 러시아, 폴란드, 독일에서 한껏 빛을 발했다. Ⓒ김인철
옛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떠올리게 하는 동상. 전장터로 병사를 떠나보내는 여인의 눈동자가 절실하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3) 씨와 영화배우 윤정희(75) 씨 부부. 2015년 7월 31일 독일 통일의 상징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유라시아 친선특급’ 폐막 음악회의 리허설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윤 씨가 10년쯤 전부터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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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생꽃·달구지풀 등 대표적 북방계 식물을 만나다

 

첫 유라시아 ‘우리 꽃’ 기행(下)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9>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호는 둘레에 무더기로 핀 분홍바늘꽃을 선사하며 이방인을 반겼다. 열차가 바이칼에 다가섰다 멀어졌다 반복하는 사이 동은 트고, 새벽 햇살을 받은 분홍바늘꽃은 푸른 물결을 배경으로 출렁인다.

바이칼에서 발원하는 유일한 강인 안가라강 상류에 위치한 ‘건축-인류학 박물관 탈치’ 탐방의 날. 전세버스가 우리나라 민속촌과 흡사한 분위기의 박물관에 도착했다. 목조건물 사이사이로 안가라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너른 풀밭 곳곳에 러시아어로 ‘이반차이’라 부르는 분홍바늘꽃이 피었다. 원정대가 탈치를 둘러보는 사이, 짙푸른 안가라강을 배경으로 분홍바늘꽃을 카메라에 담는다. 꽃도 담고, 바다처럼 큰 강도 담고, 푸른 하늘도 담고···.

분홍바늘꽃 옆에 보라색 둥근 꽃이 무더기로 피었기에 다가서 보니 꽃쥐손이다. 평원에 수시로 나타났던 거대한 보라색 꽃밭의 한 주인이다. 그런데 국내의 꽃쥐손이보다 잎이 작고 가늘다. ‘꽃쥐손이류’라 부르는 게 맞겠다. 노란색 자잘한 꽃도 인사를 한다. 딱지꽃이다. 짙푸른 안가라강을 배경으로 핀 딱지꽃. 아마도 가장 멋진 그림의 딱지꽃이 아닐까.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한 안가라 강변에 핀 딱지꽃. Ⓒ김인철

흰자주꽃방망이는 ‘한반도 고유종’일까

국내에서도 흔히 만나는 자주꽃방망이는 탈치 박물관 숲에서도 보았고, 오후 자임카 숲에서는 꽤 여럿 만났다. 그런데 흰색의 자주꽃방망이를 만났을 때는 당황했다. ‘흰’자주꽃방망이라 불러야 하나, 그냥 ‘흰’꽃방망이로 불러야 하나 헷갈렸다. 자주색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꽃색을 빼고는 형태나 식생 등이 거의 같아 보였는데, 엄연히 국명도 다르고 학명도 달리 등록돼 있다. 게다가 흰자주꽃방망이는 ‘한반도 고유종’ 책에 올라 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에만 서식하는 종’이라는 뜻인데, 안가라 강변에서 만났다는 것은 흰자주꽃망방이가 한반도 고유종이 아님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가 아닐까.

남한에서도 흔히 자라는 자주꽃방망이. Ⓒ김인철
흰자주꽃방망이.Ⓒ김인철

분홍노루발·호노루발·새끼노루발 등 키 작은 희귀 식물의 보고

강기슭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자작나무와 적송이 제법 어우러진 숲이 나온다. 발아래 두터운 푸른 이끼 더미가 느껴진다. 키 작은 희귀종 풀꽃이 제법 있으리란 느낌이 강하게 온다.

맨 먼저 핑크빛 분홍노루발이 무더기로 인사를 한다. 남한에는 없고 백두산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북방계 우리 꽃이다. 꽃은 이미 시들고 열매를 맺고 있었지만, 한 송이만 피어도 숲이 환해진다는 진분홍의 색감을, 분홍색 꽃줄기와 열매만으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옛날 빙하기에 시베리아 벌판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남하했겠지만 이제 남한에선 사라졌다.

바로 곁에서, 잎이 유난히 작은 새끼노루발, 잎이 작고 둥그런 호노루발이 역시 남한에는 없는 북방계 식물이라고 외친다. 새끼노루발과 호노루발은 함경도와 평북 고산 지역 침엽수림에서도 자생한다는데, 직접 확인해 볼 날이 올까.

분홍 색감이 인상적인 분홍노루발. Ⓒ김인철
새끼노루발. Ⓒ김인철
호노루발.Ⓒ김인철

참기생꽃·노랑투구꽃도 한 이불 속에 피고

이끼 숲에선 또 설악산과 태백산 등 높은 산에 올라야 겨우 몇 개체 만날 수 있는 참기생꽃이, 이미 꽃은 졌지만 동그란 열매를 달고 선 채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그 곁에 남한에는 없는 씨범꼬리가 한 송이는 꽃이 핀 채로, 또 다른 여러 개체는 다닥다닥 열매를 단 채 서 있다. 두루미꽃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태백산에서도 두루미꽃과 참기생꽃을 같은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데 시베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라갈 때 못 본 꽃, 내려올 때 보았다’는 시구처럼, 갈 때 보지 못한 노랑투구꽃도 돌아오는 길 이끼 숲에서 만났다. 키가 매우 컸는데, 바삐 지나치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남한에서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노랑투구꽃. Ⓒ김인철

린네풀·두루미꽃·진범 등 전형적 북방계 식물 잇따라

탈치 박물관에서 버스로 10여 분 이동해 점심식사를 한다. 주변을 살피니 온통 숲이다.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숲으로 들어선다. 집결 시간까지 40여 분이 남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들어서자 낯설던 숲에 차차 익숙해지면서 낙엽 더미와 이끼 속에서 하나둘 꽃이 보인다.

린네풀. ‘식물 분류학의 아버지’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1707~78)의 이름이 학명에 들어 있는, 린네풀이 늦둥이 꽃을 달고 낯선 이를 반긴다. 북반구 고위도 지역의 특산 식물로, 남한에선 이미 사라졌고 백두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상록성 덩굴 소관목이다. 평북과 함북에도 자라는 ‘우리 꽃’이다. 이어 눈에 들어온 것은 앞서 탈치박물관 숲에서도 만났던 두루미꽃. 개체 수는 많았지만 모두 꽃은 지고 열매를 맺고 있었다. 한참 동안 찬찬히 살피니 운 좋게도 미처 시들지 않은 두루미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 곁에 뱀톱도 눈에 띈다.

북반구 고위도 지역의 특산 식물인 린네풀. Ⓒ김인철
참기생꽃. Ⓒ김인철
두루미꽃.Ⓒ김인철

한라산엔 제주달구지풀, 시베리아엔 달구지풀…

저녁식사 전 러시아식 사우나인 바냐로 몸을 달군 뒤 강으로 뛰어든다. 바이칼 호수는 잠깐 발만 담가도 얼어붙을 듯 차가웠는데, 안가라 강물은 수영도 할 만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자주색 꽃이 보인다. 처음엔 갈퀴나물인가, 조록싸리인가 하면서 지나쳤고, 두 번째는 키 큰 붉은토끼풀인가 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또 나타나자 정색하고 들여다본다.
‘이건 또 뭐지?’
일단 카메라에 담는다. 확인하니 갈퀴나물과 조록싸리, 붉은토끼풀과 마찬가지로 콩과 식물의 여러해살이풀인 달구지풀이다. 주로 북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로, 최근 남한 강원도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달구지풀에 비해 크기가 작은 종이 제주 고지대 풀밭에 자생하는데, 제주달구지풀이라고 별도로 분류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인 달구지풀. Ⓒ김인철

강가에 핀 닻꽃

남한에서는 강원도 화악산과 제주도 한라산 등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으로,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닻꽃도 전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느닷없이 만났다. 관광객들이 바냐 체험을 하러 오는 안가라 강변 자임카 숲속 오솔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 있었다. 꽃 모양이 선박을 한 곳에 떠 있게 하거나 멈춰 세우기 위해 줄에 묶어 물 밑으로 내리는 쇠갈고리를 똑 닮아 그 이름을 얻은 꽃, 남한에선 8월 중순 이후에 피기 시작해 ‘정주(定住)의 계절’ 가을의 전령쯤으로 여겼는데, 시베리아에선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하니 개화 시기가 한 달쯤 빠른 셈이다.

바이칼호 인근 자임카 숲에서 만난 닻꽃. 남한에서는 강원도 화악산과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희귀종이자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닻꽃이 북방계 식물의 본향답게 시베리아에서는 흔하게 눈에 띄었다. Ⓒ김인철

* 이번 탐사는 홀로 사진을 찍으며 비공식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식물명 등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필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는 것이 유라시아 북방계 식물 연구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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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계 식물의 본향(本鄕)을 가다

첫 유라시아 ‘우리 꽃’ 기행(上)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6>

시베리아는 한반도에서 사라져 가는 북방계 식물의 본향(本鄕)이라 할 수 있다. 북방계 식물은 한마디로 아한대(亞寒帶), 즉 북위 40도 이상이 고향인 식물이다. 북극권 아래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부 지역이 아한대에 해당한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 추위가 심한 것이 기후적 특징이다.
한반도에서는 평북과 함경도가 아한대에 속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북방계 식물은 이들 지역 외에도 멀리 제주도에까지 서식하고 있다. 가깝게는 만 년 전, 멀게는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만주 등지의 북방계 식물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폭넓게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한반도 내 북방계 식물이 대부분 멸종됐고, 현재는 수백 종만이 설악산과 한라산 등 높은 산 정상부나 기온이 낮은 골짜기 등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천공항을 떠나 세 시간 만에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짙푸른 밤하늘이 인상적인 항구 도시였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의 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러시아 동방정책의 실천을 위한 첨병 도시다. 그리고 그 일대는 우리에겐 연해주(沿海州)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50만 고려인의 애환이 서려 있는 땅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리는 9,288㎞ 철로 주변은 ‘지구상 최대의 꽃밭’이다. 열차와 자작나무 사이, 그곳은 분홍바늘꽃과 솔나물, 터리풀 등 숱한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의 화원이다. Ⓒ김인철

자주방가지똥, 좁은잎해란초 첫 대면

유라시아친선특급 참가단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르기 전 순국선열을 참배하고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유적지의 하나인 이상설(1870~1917) 선생 유허비 부근에서, 산림청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종)에 등재된 ‘우리 꽃’ 자주방가지똥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부전고원에서 백두산 지역을 거쳐 그 북쪽 지방에까지 분포”한다지만, 그간 한반도 내 자생지인 북한 지역을 갈 수 없어 만나지 못했다.
유허비는 바로 쑤이펀 강(발해사를 통해 우리 귀에 익은 말로 솔빈강) 가에 있었고, 그 주위는 온통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물결치는 초원이었다. 남한에도 흔한 털솔나물과 벳지였다. 막 피기 시작한 구릿대는 물론 까치수염과 층층이꽃도 만났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해발 214m 독수리전망대에도 올랐다. 솔직히 남산(265m)보다도 낮은 언덕에 뭔 볼거리가 있을까 심드렁했는데, 곧 또 다른 행운을 누렸다. 역시 북방계 식물로서 평북 선천과 의주, 함북 경성이 자생지인 ‘우리 꽃’ 좁은잎해란초를 만난 것. 남한에서는 국립수목원 등에서 인위적으로 재배할 뿐, 자생종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로 분류되는 잔개자리와 붉은토끼풀, 큰뱀무가 좁은잎해란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장구채류 식물도 만났다.
선로 사이사이 모래와 자갈밭에서도 야생화들은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해 꽃을 피웠다. 특히 좁은잎해란초는 줄기차게 노란색 꽃을 많이도 피웠다. 바이칼 호숫가에서는 2m가 넘게 자라기도 했지만, 선로 주변에선 10~20cm 크기로 적응해 살아가고 있었다.
어디선가부터 선로 사이 자갈밭에, 선로 밖 풀밭에 키 작은 풀이 흰색 또는 갈색의 수염을 날리고 있다. 키 20~50cm 안팎의 은발 물결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백두산에 자란다는 ‘우리 꽃’ 황새풀 또는 애기황새풀인가 했는데, 확인해보니 긴까락보리풀이다. 영어 이름으로 ‘여우꼬리보리풀(Foxtail Barley)’이다. 황새 쫓다 여우에 홀린 기분이다.

북한 지역에도 자생하는 자주방가지똥. Ⓒ김인철
바이칼 호숫가에 핀 좁은잎해란초. Ⓒ김인철
철길 사이에 핀 긴까락보리풀. Ⓒ김인철

속단·금불초·층층잔대·애기똥풀… 치타역 앞동산의 야생화

열차가 멈춰 선다. 치타역이다. 역 앞에 작은 동산이 보인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그간 차창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분홍바늘꽃에 다가선다. 그 옆에 층층잔대도 보인다. 친숙한 애기똥풀도 한 무더기 피었다. 흰전동싸리와 시호·서양톱풀·장구채도 눈에 들어온다.
속단도 여럿 있다. 노란색 꽃이 있어 민들레인가 살펴보았더니 금불초다. 금불초는 이후 차창 밖 평원에 간간이 노란색 꽃무늬 수를 놓을 만큼 군락을 이루기도 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 호숫가에 분홍바늘꽃이 활짝 피어 있다. Ⓒ김인철
남한에서도 흔히 자라는 금불초. Ⓒ김인철

여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야생화 천국 열차’

한여름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철로변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수채화처럼 피어나는 환상의 ‘야생화 천국 열차’였다.
열차의 안전을 위해 선로에서부터 최소한 수십m, 길게는 2~3km까지 개활지로 유지·관리하기 때문에 철길 주변은 그야말로 야생화들이 맘껏 꽃피울 수 있는 ‘천상의 화원’이 되는 것. 열차는 자작나무와 잣나무, 적송, 그리고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림이 울창한 타이가 지대와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는 스텝 지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쪽으로 미끄러져 간다.
하얀 피부 미인을 닮은 자작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섰고, 노랑·파랑·분홍의 꽃 무더기가 군데군데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졌다. 동틀 무렵 열차가 강변이나 호숫가, 늪지대를 지나게 되면 뭉게뭉게 피어나는 물안개가 몽환적 새벽을 선물로 내민다.

끝도 없이 늘어선 백색의 피부미인 자작나무. Ⓒ김인철

자작나무와 분홍바늘꽃 사이 

“저기 창밖에 보이는 키 큰 분홍색 꽃이 뭐죠?”
차창 밖에 끝도 없이 피어있는 분홍색 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너나없이 묻는다. 그렇다. 여름 시베리아 벌판의 주인은 자작나무도 푸른 평원도 아닌, 분홍바늘꽃이었다. 열차를 탄 누구나 그 이름을 궁금해할 만큼 철길 내내 분홍의 꽃물결이 이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에 끝도 없이 펼쳐졌다.
국내의 경우 강원도 태백 지역이 남방한계선으로 대관령 등 몇몇 지역에서 수십에서 수백 포기 정도 자생하는 게 전부인 분홍바늘꽃이 철로와 자작나무 숲 사이 풀밭에서 간단없이 피고 진다.
사실 분홍바늘꽃은 유라시아뿐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의 비슷한 위도에도 광범위하게 분포해,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유일한 꽃이라 할 수 있다. 1.5m 안팎으로 키가 클 뿐더러 분홍의 꽃 색도 화사하다. 꽃이 진 뒤 맺는 씨방이 바늘처럼 길다 해서 ‘바늘꽃’이란 이름이 붙었다.
분홍바늘꽃이 스텝과 타이가 숲 곳곳에 분홍색 꽃물결을 만들고 지나가고 나면, 그다음엔 솔나물이 노란색 꽃의 바다를 만들고, 이어 터리풀이 솜을 풀어놓은 듯 흰색의 꽃구름을 수놓는다. 개구릿대와 궁궁이, 어수리로 추정되는 키 큰 산형과(繖形科) 식물들이 길게 늘어서 열병하듯 인사하고, 큰조뱅이·꽃쥐손이류 등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  

                             쑤이펀 강가에 핀 구릿대.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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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거나 살았던 건물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2>

애초에 동굴에서 살았던 때가 가장 편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비와 눈을 겨우 피하면서
빗살무늬토기에 음식을 담고
벽에 들소를 새기고...

이제 첨단 냉장고와
값비싼 그림으로 장식을 하는 시대이니
우리는 동굴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다.

불을 환하게 밝힌 바르샤바 구 시가지의 건물.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조명을 밝힌 듯싶다.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려 지은 멋진 교회,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아 쓸쓸하기 그지없다.
러시아의 기차역들. 그 어디를 가든 현대식이 아닌 19세기의 건물들이고 천장에는 혁명시대의 그림들이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기차역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사실이 살짝 부러워진다.

건축학도가 유럽에 갔다면 건축 사진만 찍어도 1만 장은 족히 넘을 것이다. 그 건물의 용도가 무엇이건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리라.

러시아의 기차역은 건물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역사마다 독창적이며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조명까지도 저마다 달랐고,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그의 이름을 불러다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꽃이었고
부른 후에도 꽃이었다.

야생화...
들판이나 강변, 숲속 어딘가에 피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고
조용히 짧은 시간을 살다가 조용히 시드는 것이 야생화의 운명.
그러기에 가녀리면서도 강하다.
이름 없는 들꽃이 아니요, 이름 모를 들꽃도 아니요, 자신의 외모에 맞는 이름을 지녔다.
박학(薄學)한 내가 그 이름을 모를 뿐.

유럽에서 만나는 야생화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꽃들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우랄산맥이라 하지만 어찌 꽃이 경계를 지을까?
땅이 있고 햇빛이 있고 공기만 있다면 야생화는 스스로를 피어 올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창 밖은 자작나무와 분홍바늘꽃을 비롯한 수많은 야생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는 거대한 화원이다. Ⓒ김인철

스스로가 행복하면 행복하다

환한 웃음 뒤에 어찌 아픔이 없을까?
아름다운 옷 뒤에 어찌 애달픈 그리움이 없을까?
분수를 바라보는 천진난만한 소년의 짧은 지난날에 어찌 상처가 없을까?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리따운 소녀에게 어찌 실연의 고통이 없을까?

그럼에도 인생은 살 만하다.
내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어깨가 드러나는 짧은 원피스에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아리따운 소녀들. 아무런 근심·걱정 없어 보이는 밝은 표정에 보는 이도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진다. 러시아 최고의 백화점으로,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편에 자리 잡은 굼백화점의 7월 한여름 모습이다. Ⓒ김인철
Ⓒ김인철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참상을 최초로 폭로한 전 폴란드 외교관 얀 카르스키(1914~2000). 그의 숭고한 의기 때문인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그의 동상에 엄마와 어린 딸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섰다. Ⓒ김인철
길거리서 칼잠을 자더라도 마음이 편하면 그곳이 천국이다.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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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하거나 숭상하거나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07>

한국의 대표 동상 이순신은 수도 광화문 앞에 칼을 들고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데, 한 외국인이 보고는 “제너럴 리는 왼손잡이였습니까?” 물었다 한다.
칼을 왼손에 들어야 하는데 오른손에 들고 있으니 왼손잡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그것이 옳은 지적이기는 해도 이순신은 오늘도 왼손잡이인 채로 서 있다.

러시아, 폴란드, 독일에도 엄청 많은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한국과 다른 점은 그 숫자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다가 전쟁 영웅(이순신, 김유신, 을지문덕, 맥아더 등)이 주류인 한국과 달리 다양한 동상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청동도 많지만 대리석 동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왜 동상을 세울까?
구국의 영웅이어서? 사회에 헌신했기에? 대학을 세웠기에? 착한 일을 했기에? 실존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에게 행복과 꿈을 안겨 주었기에?
어쩌면 그 모두일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멋을 위해서나,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나,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동상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그 아래에서 멋진 사진 한 장은 찍을 수 있기에........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욕망이라는 이름의 그래피티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의미가 분명해서는 안 되며
알쏭달쏭 해야 하고
“으떤 놈의 짜슥이 이곳에 낙서를 했담!”
어른들이 욕을 퍼부을 곳이어야 한다.
그것이 그래피티(graffiti art)의 생명이다.

스프레이로 벽에 그림(혹은 글자)을 그리는 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백과사전에서는 2차대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애초에는 걸음마 수준이었으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주택, 공장의 벽, 지하보도, 굴다리, 철거 예정 판자촌 등에 다양한 그래피티가 등장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이나 남미에 가면 다양하고 멋진 그래피티를 수없이 볼 수 있다. 그래피티의 성지라 불리는 뉴욕에서 워싱턴DC까지 가는 기차를 타면 이 세상의 온갖 그래피티가 넘쳐나고, 심지어 1km가 넘는 그래피티도 있다.

누가, 왜 그래피티를 만들까?
어쩌면 사회에 대한 반항, 욕망의 표출, 예술의 한 방법, 자신의 표현, 앙갚음의 하나일 것이며, 어쩌면 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온통 하얀 벽보다는 그림이 그려진 벽이 훨씬 낫고, 그것을 허용하는 국가가 그만큼 자유롭다는 뜻 아닐까?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차창 풍경이 어느 순간 때 묻지 않은 자연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그래피티로 바뀌었다. 그곳이 처음엔 베를린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모스크바 야로슬라브역이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예술의 여러 모습

벽을 사이에 두고
남자는 여자가 궁금해 늑대처럼 들여다보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 여우처럼 들여다본다.
현대인의 관음증을 묘사한 이 조각 작품은 러시아 어느 도시의 공연장 앞에 서 있다.

나는 ‘저런 늑대 같은 사내가 아니다’라고 방어벽을 칠 수 있는 남자는 몇이나 될 것이며,
나는 ‘문구멍으로 훔쳐보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가 아니다’라고 자신할 여자는 몇이나 될까?
만일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도덕 교과서대로만 산다면 세상은 정말 밥맛없는 곳이 될 것이다.

호텔 벽에 걸려 있는 무시무시한 벽화는 무자비한 침략자와 용맹한 방어자의 대결을 웅장하게 보여준다. 호랑이까지 덤벼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과연 침략자를 물리칠 수 있을까?
말을 타고 진군하는 저 병사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19박 20일 동안 러시아 여러 도시를 비롯해 벨라루스와 폴란드, 독일을 거쳤으니 많은 사람과 풍경, 건물 등을 만난 건 당연한 일. 그런데 스치듯 본 여러 장면 가운데 유독 기억나는 몇 개가 있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본 조각 작품. 남자와 여자의 속성을 단순 명료하게 형상화했다. Ⓒ김인철
모스크바 시립 박물관의 작은 벽 모퉁이에 그려진 새 벽화도 인상적이었다. Ⓒ김인철
어느 호텔 벽에 걸려 있던 전투 벽화도 그중 하나.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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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살까? 고민하지 말지어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05>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정도(1978년)까지만 해도 펜팔(Pen pal)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울의 남학생이 부산의 여학생과 편지로 사귄다는 것인데, 시야를 넓혀 해외에 친구를 만드는 국제펜팔을 하는 녀석도 간혹 있었다.

한 녀석이 미국 여학생과 한 달에 두어 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한번은 대나무로 만든 20cm 짜리 지게 모형을 학교로 가지고 왔다. 무어냐고 물으니 미국 여학생에게 보낼 선물이란다. 대나무 지게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19년에 한국의 상징은 무엇일까?

선물은 어느 곳에 갔다왔다는 증표이기도 하고, 그곳에서도 너를 잊지 않았다는 마음 씀씀이기도 하다. 아내의 선물은 사지 않아도(쓸데없이 돈 썼다고 구박 받기 십상이다) 아들과 딸의 선물은 꼭 사고, 애인의 선물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부모에게 줄 선물은 돈으로 대신한다.
러시아에 가면 마트료시카(Matryoshka)는 꼭 사야 하고, 바르샤바에 가면 인형을 사야 하고, 베를린에 가면 곰을 사야 한다.

선물은 나이와 비례한다. 어릴수록 더 많이 사주고, 나이가 들수록 숫자가 줄어든다. 곰 인형 1000개보다는 다이아몬드 하나, 명품 가방 하나가 더 좋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돈이 더 많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올 때 선물을 사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표시이다. 러시아에 가면 마트료시카를 사야 하고, 폴란드에 가면 인형을 사야 한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거리의 예술가들

그림을 보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렵다.
그림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창작의 고통은 가늠이 어렵다.

화가는 보이지 않고 그림만 즐비하다.
강의 한켠에 이름 모를 여인들의 그림이 진열되어 있다. 주인공은 지금도 아름답고 행복할까?
거리에 늘어선 풍경화는 1970년대 우리네 이발소에 걸린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 숲, 작은 집, 폭포와 새들... 그 풍경속의 모습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시간이 좀 남는다면 무명화가 앞에 모델이 되어 나를 새겨넣을 것이며
돈에 좀 여유가 있다면 풍경화 한 점은 살 것이다.
혹은 그대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거리의 화가가 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냥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

그림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려우며 모델이 되기도 쉽지 않다. 거리의 화가에게 한번쯤 내 얼굴을 맡기는 것은 어떨까?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열심히 일하다

우리는 간혹 단순한 진리를 까먹는다.
“인간은 일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진리다.

여행은 나에게 ‘쉼’이지만 그곳의 누군가는 어제처럼 오늘도 일을 해야 하는 날이다.
그러하기에 벽에 매달려 건물을 청소하고, 기초를 닦고, 전화선을 연결한다.
또 그러하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어른거린다.
잠시 ‘꺽정스러움’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또 그러하기에 그들이 쉼을 누릴 때 나는 열심히 일할 것이다.
또 또 또 그러하기에 여행은 “사람은 어디에 있건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준다.

어디에서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간다.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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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외치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02>

유관순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동상의 소녀는
맨발이다.


누구를 향해
무엇을
외치고 있는 것일까?

깃발도 없이
확성기도 없이
뒤따르는 사람도 없이
그 흔한 신발조차 없이
고독하게 홀로 서서
무엇을 외치는 것일까?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을 향해 도전하라, 그대의 온몸을 내던져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용기가 없다.
어쩌면 그대 또한 그러할 것이지만
그대 귀에 들려오는 외침을 모른 척하지는 못하리라.
그것만으로도 소녀는
그 누군가의 등대가 되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 큰길 중앙분리대에 작은 동상이 서 있다. 맨발의 소녀가 두 손을 모아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인류의 가장 큰 소망, “제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라”고. Ⓒ김인철
Ⓒ김인철

 

파괴되어 더욱 아름답다

어쩌면 여신이었을 것이다. 고대 신화 속에는 남신보다는 여신이 더 많고, 사연도 더 굴곡지다.
그러나 가슴이 밋밋하고, 건물 앞에 수호신처럼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신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돌은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검게 변했고
머리는 댕강 잘려 사라지고
군데군데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난무하다.
그래서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온전하게 보전되었으면 미술 교과서나 역사 교과서에 실려
우리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련만
몸뚱이만 남아서
역사의 속절없음을 보여주기에
더 애절하고....
더 아름답다.

파괴되어 몸통만 남은 조각상. 이 또한 세상을 향해 전쟁과 싸움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소리치는 듯싶다. Ⓒ김인철

그날들을 기억하자

기억하지 못하면 망각하고
망각하면 불행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어리석은 행위를 끝없이 되풀이 한다.

독일은 제3제국 시절 2차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5월 7일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패망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2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다.
두 국가는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했으며,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는 자유인들은 무참히 총살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화, 사랑, 화합은 끝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동독과 서독은 1990년 10월 3일 통일되었다. 갈라진 지 45년만이다.

베를린에는 분단시절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기념물로 세워져 있고 각각의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두 국가의 국기를 들고 퍼포먼스를 펼친다. 청년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관광객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로 삼지만 그 시절의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그들이 부러운 이유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망할 것은 없다. 우리도 곧 통일이 될 것이며 ‘분단시절을 잊지 말자’는 철책선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4,400km를 달려온 19박 20일의 여행이 ‘드디어’ 끝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베를린 시내에 작은 시멘트벽 몇 개가 서 있다. 새로 지은 대형 건물 앞에 과거 베를린 장벽이 세워져 있었음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리라. 이제 관광객들이 동·서독 제복을 입은 병사들의 퍼포먼스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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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가장 신성하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30>

땅을 파고
못을 박고
시멘트를 바르고
벽을 칠하고
전기선을 잇고
힘든 이 노동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

다들 책상에 앉아 펜만 굴리고, 키보드만 두드리고, 지시만 내리면
인간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원초적인 노동은 영원해야 하고
우리의 터전을 가꾸어 가는 것이기에
가장 신성하다.

*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벽에 붙은 사진을 찍은 것이다. 아마 건물을 짓는 노동자들의 면면을 소개하기 위해 붙여놓은 듯하다. 책임감과 신뢰를 주기 위해.

‘노동은 신성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러주려 함인가. 베를린 시내 공사 중인 건물 외벽에 ‘일하는 복장의 노동자’ 사진 여럿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벼룩시장은 삶의 징검다리

특별한 것일 수도 있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벼룩시장은 삶의 징검다리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밖으로 나가지 말고
안쪽으로 쭉 올라가면
아기자기한 시가지가 나온다. 근엄하고 고풍스러운 대학도 있고
강도 있고, 그 위에 유람선도 있고, 오래된 거대한 성당도 있고, 공원도 있다.
즐비한 조각상들을 지나
어느 고딕 건물 앞에 이르면 작은 벼룩시장이 있다.
오래된 책, LP 음반, 엽서, 사진, 손수건, 기념품....
만원만 투자하면 소중한 추억을 살 수 있다.
그래서 벼룩시장은 삶의 환희다.

* 베를린 장벽의 작은 조각이 들어있는 엽서. 1장에 2000원이다.

훔볼트대학교 앞에 펼쳐진 벼룩시장. 19세기 자연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동상 바로 옆에서 오래된 책, LP 음반, 기념품 등 소소한 물건을 팔고 있다. Ⓒ김인철
Ⓒ김인철
벼룩시장에서 팔고 있는 기념엽서. 베를린 장벽의 작은 조각이 들어 있다. 남과 북도 하루빨리 통일돼 155마일 휴전선 철조망도 기념품의 소품으로 활용되기를!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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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현란한 아우성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29>

처음에 붙인 놈이 제일 잘난 놈이다.
그걸 보고 옆에 놈이 따라서 붙였을 게고
세 번째부터는 너도나도 우르르 붙였을 게다.

술집 전단지인지, 공연 안내문인지, 사원모집 공고인지
의미없는 딱지인지 알 수 없으나
전봇대는 화려한 옷을 입었다.

그렇게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현란한 아우성이 되었고
붙인 사람의 바람과 상관없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란하되 쓸모없는 몸짓일 뿐이다.

현란한 광고전단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전봇대. 더 많이 더 널리 알리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광고전쟁이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인철

탈 것은 진화한다

옛날에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폰 훔볼트가 세운 대학이라 하는데
황태자의 여름별장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처음엔 베를린대학(Universität zu Berlin)이었다가 프리드리히빌헬름대학(Friedrich-Wilhelms-Uiversität)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베를린훔볼트대학(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이며, 운터덴린덴대학(Universität unter den Linden)으로 불리기도 한단다.
철학과가 유명한데 마르크스(대략 1836년 즈음), 헤겔, 아인슈타인, 그림형제(Jacob & Wilhelm Grimm) 등이 이 대학을 졸업했다고... 그러나 헤겔은 이 대학을 졸업한 것이 아니라 1818년에 철학 교수로 부임했다.
인터넷을 보면 멋진 교문이 있는데
지금은 없는 듯하다(어쩌면 반대편에 있을 수도).

회색 타일이 촘촘히 박힌 광장에 오래되고 육중한 시계탑이 있고
자전거를 탄 향도자를 따라
사내들이 전동바이크(?)를 타고 줄지어 어딘가로 가고 있다.

180년 전 마르크스는 이러한 풍경을 상상이나 했을까?

마차에서부터 자전거, 그리고 전동바이크까지. 200년 된 훔볼트대학 안팎에서 탈 것의 진화를 보았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공립 종합대학교 훔볼트대학(Humboldt Universität)의 메인 건물 정면, 그리고 자연과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동상. 1810년 설립된 훔볼트대학 입구에 당시 종무·교육국 장관으로 대학 설립을 제의한 카를 빌헬름 폰 훔볼트가 아니라, 19세기 최고의 학자였던 동생의 동상이 서 있는 게 이채롭다.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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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속박되었으나 영혼은 자유롭다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26>

베를린 교외의 어느 큰 호텔 (이름은 알지 못한다)
앞에 있는 박물관 (이름은 알지 못한다)
마당에 세워져 있는 청동 동상.
녹이 슬지 않아 더욱 선명한...

색출되어 붙잡힌 유대인으로 추정되며
아우슈비츠에서 독가스로 목숨을 달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면...
더 이상의 추정은 하지 않는 것이
이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늘 그렇듯
동상의 남자 꼬추는 너무 많은 사람이 만져서
윤이 반들반들 나면서도
눈에 담긴 깊은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모든 것에의 포기와 실낱같은 희망을
그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베를린 교외 한 작은 박물관 앞에 놓인 청동 동상. 텅 빈 공간에 달랑 홀로 선 벌거숭이 왜소한 사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어머니가 딸에게

나무 직조기를 가운데 두고 어머니는 딸에게 옷감 짜는 방법을 일러준다.
어머니의 눈은 깊고, 딸의 눈은 아련하다.
어쩌면 열 밤만 지나면 시집갈 딸의 옷을 마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름이 깊게 패인 할머니는 손녀에게 실 잣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라크네(Arachne)의 후손이 되어 물레에서 실을 뽑아내
질기고 가는 실을 길게 뽑아
옷을 만들고, 커튼을 만들고, 밧줄을 만들고, 그물을 만들고...

콧수염이 더부룩한 저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기술일 것이련만
아들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다.
“나는 아버지 같은 삶을 살지 않을래요!”
아무렴 어떠랴. 그렇게 삶은 실처럼 질기게 이어지는 것을.

또 다른 건물에서 만난 인물 부조. 어머니와 딸, 할머니와 손녀, 아버지와 아들 등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며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김인철
Ⓒ김인철
Ⓒ김인철

<글 김호경, 사진 김인철>

<논객닷컴  ( h t t p: / / w w w . n o ‘n g a e k.  c o m )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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